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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19 18:33 수정 : 2017.11.19 19:25

이승욱
닛부타의숲·정신분석클리닉 대표

우울에 대하여. 대체로 우울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정당하게 표현되어야 할 분노가 좌절되고, 그 분노의 좌절을 자신에게 책임지우면서 발생할 때가 많다. 즉 분노가 자신을 향할 때 우울로 변환된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정당한 분노를 표현하고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다. 예를 들어, 온갖 술수와 유치한 사내 정치로 동료가 승진한다면, 인간의 품위를 지키며 공정한 과정과 능력에 따라 평가받으려는 사람들은 좌절하게 된다. 비열하고 계산적인 처세로 출세하는 인간들은 자신을 결코 하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자긍심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이 결국 자신을 하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몸 바쳐 일했는데 어느 날 나가라고 하고, 일은 쥐뿔도 안 하고 뺀질거리며 높은 사람 비위만 맞춘 것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우울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울한 인간은 정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우울은 선함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성공에만 갈급하고 타인을 자기 출세의 재료로만 여기는 자는 쉽게 우울을 느끼지 않는다. 비열한 자들이 우울을 느낀다면 그 우울은 가짜다. 악어도 눈물을 흘리지만 그것은 먹이가 잘 잡히지 않아서이고, 히틀러도 고뇌했지만 그것은 자기 맘껏 유대인을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 우울한 사람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두려워 끝내 ‘자신’을 학대한다. 그래서 우울한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다만 타인에게만 선했을 뿐, 자신에게는 가혹했다. 이것이 우울이 주는 하나의 가르침이며, 삶의 불균형의 근원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타인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선함을 행했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고통으로 보상되면 그 가치는 상실된다. 문제는 그 선한 행위의 결과물에 자신을 수혜자로 상정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선함이란, 자신 역시 보호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자신의 선함이 자신과 타인에게 공정하게 이득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울은 선함의 에너지이며 그 의지라고 생각한다. 우울의 기제는 외부와 단절하고 자신 안으로 침잠하게 만든다. 관계를 통해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된다. 그래서 그 안에 갇혀 자신을 나약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자책하고 징벌한다. 이렇게 개인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이것이 우울의 어두운 면이다.

그렇다면 우울에 대한 공정한 응답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자명해진다. 자신을 선하게 대해야 한다. 모든 자신들은 자신부터 먼저 선하게 대해야 한다. 이것이 자신과의 연대의 첫걸음이다. 선한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 우울한 이가 자신을 존중해야 하는 결정적 근거다.

우울이 전하는 긍정적인 메시지는 외부로만 쏠렸던 에너지를 자신에게로 돌리라는 것이다. 우울할 때 인간은 예민하게 내부 자극에 반응하는 자신을 감각한다. 그래서 우울은 자신에게 집중할 때만 획득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감각, 표현의 방식이 일깨워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삶의 어떤 지점에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자신의 말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세상으로부터의 일시적 망명을 명령하는 내면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의미를 받아들일 때 회복의 전망이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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