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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10 17:30 수정 : 2017.12.10 19:11

이승욱
닛부타의숲·정신분석클리닉 대표

다음 세대를 위한 기여, 이것은 자신과의 연대와 병행되는 행위이다.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은 다음 세대를 위한 기여를 중년의 중요한 과업이라는 것을 단호하게 강조한다. 카를 융뿐만 아니라 정신분석학자이자 발달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은 “중년이 되면 또 다른 생산성이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자기 삶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게 아니고 자기가 여태껏 쌓아온 축적된 지적 경험, 경험으로부터 쌓은 지혜, 보유한 물적 토대 이런 것들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수할 것인가? 그 행위를 하지 않으면 중년의 삶은 아주 중요한 과제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학작품이 찰스 디킨스의 단편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주인공 스크루지는 오직 자기만을 위해서 돈을 모으고, 더 나쁘게는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돈을 모았다. 하지만 자신이 중년의 삶에서 빠뜨렸던 것이 무엇인지를 노년에야 통렬하게 깨닫고 뒤늦게나마 그 과제를 수행한다. 이 이야기를 지독한 자린고비 영감의 권선징악과 개과천선으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이해다.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시간을 넘나드는 유령과의 만남이다. 유령은 먼저 스크루지에게 현재의 모습처럼 차갑고 돈만 보는 속물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일깨운다. 그는 오히려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점차 욕망이 그의 마음속에 자라났고, 근심과 탐욕이라는 풍부한 양분을 받고 거대해지기 시작해 마침내 그를 집어삼키고 만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 따지기 시작하며 결국엔 사랑마저도 그러한 잣대로 따지게 된다.

스크루지는 과거에 지금과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의 그는 이렇게 묘사된다. ‘언제나 약한 아이였지, 불면 날아갈 것만 같았어. 하지만 마음만은 아주 넓었지!’ 가난했기에, 그는 늘 혼자였다. 그렇기에 돈을 버는 데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살아왔던 것이다. 결핍으로 가득한 그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 욕망이었다. ‘이런 것이 이른바 세상의 공평함이라는 건가! 세상에는 가난만큼 힘든 것도 없고, 부를 추구하는 것만큼 가혹하게 비난받는 일도 없으니!’라며 돈을 버는 데 목숨을 걸었다. 외로웠기에 돈을 벌었는데, 그 돈 때문에 그는 더욱더 외로워졌다. 그는 늘 ‘세상에 외따로 남겨진 사람’처럼 보였다.

여기서 현재의 유령이 스크루지에게 알려준 매우 의미심장한 비유가 있다. 유령은 자신이 데리고 사는 두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의 이름은 무지와 궁핍이라 했다. 그것은 우리의 불안을 불러일으키며, 불안으로 인해 자신의 상태나 상황에 대해 무지해질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신분석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들 중에는 중년이 많다. 그런 내담자들과 이야기하는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가 자신이 보유한 유무형의 자산을 이제부터 어떻게 다음 세대와 공유할 것인가에 대한 탐색이다. 여태껏 축적해온 지식과 경험과 물적 토대들을 자녀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들에게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전수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다음 세대에 대한 기여의 자세, 이것은 자신과의 연대이기도 하다. 그 행위가 자신을 더 가치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부처도 그리 말했다. ‘없는 자들에게 베풀지 않는다면 도둑질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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