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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09 19:22 수정 : 2017.07.09 19:34

김곡
영화감독

이 보고서는 며칠 전 짧게 다녀온 타이 카오산로드에서, ?c얌꿍과 물아일체를 이루려다 실패하는 과정에서 신박하게 발견된 한국인 판별식에 대한 보고서다. 보고자도 한국 사람인 주제에 한국인을 대상화하는 이 모든 어조의 재수 없음을 인지과학과 문화사회학의 엄밀성으로 무마하려는 실례 중의 실례는 도대체 누구한테 용서받아야 하나.

초기조건은 카오산로드의 혼종적 다국적성이다. 기실 카오산로드에 모여드는 국적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러시아, 중국, 일본, 베트남, 미얀마 등 각양각색이며, 머리가 검고 동공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인으로 특정할 표지가 존재치 않는다(심지어 머리 염색으로도 초기조건은 변경되지 않는다). 최초 변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변수의 제한요건은 한국어와 한글이다. 즉 한국어를 하지 않고도, 한글의 어떤 표지 없이도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으로 바로 인지된다는 사실이다.

크게 두 가지 판별식이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첫 번째 한국인은 은근히 차려입는다. 여기서 차려입음이 사치와 화려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데에 유의할 것. 오히려 한국인 차려입음의 본질은 빈틈이 없다는 데에 있다. 기실 다른 카오산로드를 좀비처럼 배회하는 외국인들의 의상학적 문제점은, 너무 흐트러져 있어서 거지 같다는 데에 있다. 반면 한국인의 옷맵시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관광지라고 봐주지 않는다. 최대한 자유롭게 입되, 단정함을 잃지 않는 바로 그 선, 거기가 한국인의 옷맵시가 멈춰서는 곳이다. 이는 여성의 풀메에서도 드러나거니와, 본 보고자는 개량된 타이 전통의상을 입고 다니는 한국 여성들도 마주친 적이 있다(바꿔보면 외국인들이 개량한복을 입고 명동을 돌아다니는 셈이다). 남성들의 경우는 더욱 은근하나 그만큼 더욱 분명하다. 남성들의 옷맵시 역시 자유를 구가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폼과 박력을 잃지 않는 선에서만 허용되는, 스포티-댄디-자유 만세-그러나-젠틀 만만세-룩이다. 그건 흡사 남성잡지의 한구석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하거나, <뭉쳐야 뜬다>의 한 장면을 재연하는 듯한, 어디로-보나-연예인-룩이다.

바로 여기에 두 번째 판별식의 단초가 있다. 한국인들은 놀기보다는 사진 찍는 데에 열중한다. 놀고 먹기 바빴던 본 보고자에겐 경쟁자가 줄어들어 다행이었던 사실이긴 하나, 그들이 눈앞의 현장을 포기하고 왜 기록에 집착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셀카봉은 한국인의 가장 상징적 표지다. 심지어 타이까지 와서 먹방을 시도하는 이가 있다면, 그 또한 한국인이다. 그들의 패션은 셀카봉의 채널링이 구가하는 인터넷 시대의 하이퍼리얼리즘의 정신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들은 걸어 다니는 인스타그램이다. 그들은 어떤 각으로 들어가도 하나의 인생 컷을 내어주는, 살아 있는 페이스북 다면체다. 그들은 당장의 현재보단, 미래에 다시 도래할 아직 오지 않은 과거를 위해 존재하기를 선호한다. 취업난도 이걸 막을 순 없다. 그들은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각”으로 존재한다. (보고 끝)

(Q&A 시간) 질문자: 한국인 폄하 아닙니까? 대답: 바로 그게 내가 묻고 싶은 바다. 누구라도 대답해주시길. 이 모든 판별식이 한국인을 비웃은 건가요, 칭양한 건가요, 둘 다 아니라면 객관적 현상의 중립적 소묘인가요. 알 수 없으나, 아직까진 실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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