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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01 17:44 수정 : 2017.10.03 08:52

김곡
영화감독

야호. 추석이다. 온 민족의 명절. 한가위 대축제. 야야호. 그러나 축제 갔다가 소매치기 봉변 당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모든 축제에는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추석도 마찬가지다. 간만에 모인 친척들 반갑다고 하하호호 함박웃음으로도, 저 창연한 빛깔의 부침개들로도, 구수한 산적 냄새로도 가릴 수 없는 위기의 냄새가 있다. 예컨대 친척 중에 어색한 사람 한 명씩 꼭 있다. 돈을 꿔갔다거나, 어떤 문제로 얼굴 붉힌 적이 있다거나, 아니면 자신과 꼭 비교된다거나. 총체적으로 어색한 상황도 있다. 특히 청년 취업난의 절규가 하느님 엉덩이를 찌르는 요즘, 여전히 취준생인 당신에겐 모든 친척들의 질문 “그래, 취직은 했니?” 아아. 당신이 결혼을 못했다면, 혹은 최소한 미루고 있다면, 모든 친척들 다시 입을 모아 “그래, 결혼할 사람은 있니?” 아아아아.

난 이런 위기를 지뢰라고 부르고 싶다. 왜냐하면 그것은 웃음과 반가움으로 변장하고 숨을 죽인 채, 자신을 은폐 엄폐하고 있다가 당신이 한눈파는 사이 급습하기 때문이다. 대응을 잘해봤자 이미 늦었다. 이미 폭탄은 당신의 마음 깊숙이 뚫고 들어가 화염을 용트림하며 폭발하고 있다. 이건 지뢰도 아니다. 이것은 추석의 벙커버스터다. 고향의 냄새, 부침개의 향기를 뚫고 들어가 당신의 입맛을 작살내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대처는 예방이다. 어떻게 저 시한폭탄들을 피할 것인가. 첫 번째 대처법은 눈치다. 지뢰가 있을 만한 곳과 없을 만한 곳을 잘 분별해서 발을 디뎌야 한다. 어색한 친척이 있다면, 그와 커넥션이 있을 만한 그의 배우자, 아들딸, 모두 경계해야 한다. 넋 놓고 흘린 정보는 돌고 돌아 다시 지뢰로 돌아온다. 두 번째 대처법은 눈치가 없는 이들에게도 유용한 것이다. 항상 출구를 열어둬라. 상황이 일단 터지는 낌새가 올 때, 퇴각은 최선이다. 회식을 피하기 위해서 직장인들이 애용한다는 셀프전화 걸어 주는 앱을 강추한다. 혹은 자신이 신뢰할 만한 우군이 있다면 일종의 암호를 맞춰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장 좋은 우군은 엄마거나 배우자다. 암호1: 눈 밑을 긁는다-“나 좀 빼내 줘”, 암호2: 입술을 만지작거린다-“나 좀 살려줘” 등등. 세 번째 방법은 이전 방법들이 모두 여의치 않을 때 쓰는 것이다. 아예 예상되는 지뢰 지역에 발도 들이지 않는 것이다. 소극적 거리두기와 적극적 거리두기로 나뉘는데, 소극적 거리두기는 친척 무리로부터 아예 이탈해 위치하기 위해 겁나 전을 부치거나, 겁나 벌초를 하는 것이다. 심각한 체력소모를 요한다. 적극적 거리두기법은 친척 무리를 양분하여 추석과 관계없는 액티비티로 축제 분위기와 소통의 장에 물을 타는 것이다. 고스톱을 강추한다. 오고 가는 피박 속에 희석화되는 지뢰들. 데헷헷.

위 세 가지 대처법 중에 모든 것에 자신이 없다고 한다면, 당신에게 남은 것은 오직 꾀병뿐이다.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신체의 고통을 가정해서, 아예 지뢰밭에 들어가질 마라. 꾀병도 어렵다고 한다면, 진짜로 아픈 수밖에 없다. 여기서부턴 너무나 잔혹하고도 고어스러운 막장의 방법이니, 나머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각자의 상상력으로 자신을 구하길. 신의 가호가 있기를. 119.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저 모든 대처법들이 필요 없는 상황이다. 가장 좋은 상황은, 저 모든 지뢰들을 에라 모르겠다 어울리고 놀고 즐기는 것이다. 어차피 축제다. 즐거운 추석 되시길. 즐추하세요.

나는 그것을 지뢰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변장하고 숨을 죽인 채, 자신을 은폐 엄폐하고 있다가 엄습하는 위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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