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와아아, 봄이다. 집 앞 도랑에서 성급하게 점프하려던 개구리 녀석에게, 그리고 옆 산 동굴에서 성급하게 기지개 켜려던 반달곰 녀석에게 전국경칩행동본부에서 권장하는 일차적 행동요령은 봄맞이 대청소다. 점프 전엔 겨울잠 자던 요부터 개어야 할 터다. 기지개 전엔 겨울잠 내내 신세졌던 동굴 안 묵은 먼지부터 치워야 할 터다. 물론 목욕도 필수다. 때의 무게만큼 점프도 낮아진다. 먼지의 무게만큼 기지개도 덜 통쾌하다. 이러저러한 핑계를 더 대지 않아도, 이사할 땐 대청소를 하는 게,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왠지 당연한 예의인 것 같다.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할 때 대청소가 공간에 대한 예의인 것처럼,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이사할 때 대청소는 시간에 대한 예의가 된다. 겨울 내내 신세졌던 이들은 많다. 내 무르팍을 지져주던 삼단 난로, 내 체온을 지켜주던 핑크색 내복, 비록 무좀군에게 병참공급로를 제공했으나 최소한 발가락을 동상으로부터 사수해냈던 보온양말 등. 꼭 신체에 달라붙어 있던 친구들만 고생한 건 아니다. 싱크대와 찬장만 간신히 왔다 갔다 하면서 온몸으로 먼지와 사투를 벌여주었던 밥공기 예하 찬그릇 부대원들, 커튼이 열릴 때나 허용되던 볕으로 환기를 대신하면서도 한마디 군소리 없던 집안의 모든 구석빼기와 모퉁이들조차 한파의 파수꾼들이었다. 대청소는 그 묵은 먼지들을 닦아내서 다음 겨울까지 최적의 보관상태를 만드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다. 대청소가 그런 실용적 의미만을 가진다면, 우리는 보관해야 할 물건들만 잘 닦아내면 그만일 터이고, 물건들이 있던 장소들을 굳이 닦을 필요는 없을 터다. 모든 대청소엔 제의적 의미가 있다. 모든 이사에 제의적 의미가 있듯이. 가령 우리는 이사할 때 꼭 짜장면을 시켜서 먹지만, 거기엔 아직 그릇과 반찬통 정리가 덜 되었고 일도 바쁘니 식사를 간단히 해결하자는 실용적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이사할 때 짜장면은 떠나온 공간과 이제 도착한 공간 사이, 그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을 점령함으로써 그 빈틈을 증명해내는 의례적 행위다. 이 빈틈 없이 이사는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대청소 역시 바로 그 빈틈을 증명해내는 행위로서, 바로 이 때문에 전국경칩행동본부에선 대청소를 반드시 직접 할 것을, 절대로 다른 누군가를 시켜서 하지 말 것을, 무엇보다도 그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충분한 지속을 점령할 것을 권고한다. 대청소는 계절과 계절 사이의 빈틈을 증명해내는 그 자체 통과의례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대청소 대충 하지 않기. 대청소는 대청소지, 소청소가 아니올시다. 물론 이 통과의례를 견뎌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빈번히 소환되는 건 작별인사 하기다. 난로를 비닐에 싸서 광에 넣으며 다음 겨울까지 안녕. 보온양말 세탁해서 밑 서랍에 넣으며 다음 겨울까지 안녕. 창문을 열지 못해서 엄두를 못 내던 모퉁이마다 먼지를 닦아내며 다음 겨울까지 안녕.(응, 넌 여름에도 오지 마.) 대청소는 춘곤증이다. 피로한 일이지만, 지난 시간을 꿈으로 만들어서 새로운 시간에 깨어나는. 거기엔 반드시 안녕을 요한다. 와아아, 봄이다. 안녕 먼지들. 넌 여름에도 오지 마.
칼럼 |
[김곡의 똑똑똑] 대청소 |
영화감독 와아아, 봄이다. 집 앞 도랑에서 성급하게 점프하려던 개구리 녀석에게, 그리고 옆 산 동굴에서 성급하게 기지개 켜려던 반달곰 녀석에게 전국경칩행동본부에서 권장하는 일차적 행동요령은 봄맞이 대청소다. 점프 전엔 겨울잠 자던 요부터 개어야 할 터다. 기지개 전엔 겨울잠 내내 신세졌던 동굴 안 묵은 먼지부터 치워야 할 터다. 물론 목욕도 필수다. 때의 무게만큼 점프도 낮아진다. 먼지의 무게만큼 기지개도 덜 통쾌하다. 이러저러한 핑계를 더 대지 않아도, 이사할 땐 대청소를 하는 게,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왠지 당연한 예의인 것 같다.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할 때 대청소가 공간에 대한 예의인 것처럼,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이사할 때 대청소는 시간에 대한 예의가 된다. 겨울 내내 신세졌던 이들은 많다. 내 무르팍을 지져주던 삼단 난로, 내 체온을 지켜주던 핑크색 내복, 비록 무좀군에게 병참공급로를 제공했으나 최소한 발가락을 동상으로부터 사수해냈던 보온양말 등. 꼭 신체에 달라붙어 있던 친구들만 고생한 건 아니다. 싱크대와 찬장만 간신히 왔다 갔다 하면서 온몸으로 먼지와 사투를 벌여주었던 밥공기 예하 찬그릇 부대원들, 커튼이 열릴 때나 허용되던 볕으로 환기를 대신하면서도 한마디 군소리 없던 집안의 모든 구석빼기와 모퉁이들조차 한파의 파수꾼들이었다. 대청소는 그 묵은 먼지들을 닦아내서 다음 겨울까지 최적의 보관상태를 만드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다. 대청소가 그런 실용적 의미만을 가진다면, 우리는 보관해야 할 물건들만 잘 닦아내면 그만일 터이고, 물건들이 있던 장소들을 굳이 닦을 필요는 없을 터다. 모든 대청소엔 제의적 의미가 있다. 모든 이사에 제의적 의미가 있듯이. 가령 우리는 이사할 때 꼭 짜장면을 시켜서 먹지만, 거기엔 아직 그릇과 반찬통 정리가 덜 되었고 일도 바쁘니 식사를 간단히 해결하자는 실용적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이사할 때 짜장면은 떠나온 공간과 이제 도착한 공간 사이, 그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을 점령함으로써 그 빈틈을 증명해내는 의례적 행위다. 이 빈틈 없이 이사는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대청소 역시 바로 그 빈틈을 증명해내는 행위로서, 바로 이 때문에 전국경칩행동본부에선 대청소를 반드시 직접 할 것을, 절대로 다른 누군가를 시켜서 하지 말 것을, 무엇보다도 그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충분한 지속을 점령할 것을 권고한다. 대청소는 계절과 계절 사이의 빈틈을 증명해내는 그 자체 통과의례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대청소 대충 하지 않기. 대청소는 대청소지, 소청소가 아니올시다. 물론 이 통과의례를 견뎌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빈번히 소환되는 건 작별인사 하기다. 난로를 비닐에 싸서 광에 넣으며 다음 겨울까지 안녕. 보온양말 세탁해서 밑 서랍에 넣으며 다음 겨울까지 안녕. 창문을 열지 못해서 엄두를 못 내던 모퉁이마다 먼지를 닦아내며 다음 겨울까지 안녕.(응, 넌 여름에도 오지 마.) 대청소는 춘곤증이다. 피로한 일이지만, 지난 시간을 꿈으로 만들어서 새로운 시간에 깨어나는. 거기엔 반드시 안녕을 요한다. 와아아, 봄이다. 안녕 먼지들. 넌 여름에도 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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