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오드리 헵번이다. 29년생. 나와 거의 50년 나이 차가 나는 배우로서, 그녀 전성기의 영화도 거의 내가 태어나기 전 작품들인데도 이리 사랑할 수 없다. 생전에 선행을 많이 하셨다는 개인사에 입각한 것도 아니다. 작품 속에서 매번 해맑은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럽다. 특히 보고 또 보게 되는 53년도 작 <로마의 휴일> 속 24살의 그녀는 마치 영원한 말괄량이로 남아 있다. 그러나 내 최애 작품은 67년도 작 <어두워질 때까지>(테런스 영 감독). 여기서 헵번은 20대 청초함은 온데간데없고 영락없는 30대 후반 아줌마의 모습이지만(자세히 보면 얼굴에 주름도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이 작품을 가장 사랑한다. 젊은 날 각광받았다가 시간이 흘러 세간의 시선에서 멀어짐에 따라 온갖 긴급조치(?)를 발버둥 치다가 스스로 망가지곤 하는 다른 여배우들에 비한다면, 시간의 흐름을 숨김없이 그대로 껴안고 있는 그녀의 당당한 쌩얼이 사랑스럽다. 이 작품을 계기로 해서 헵번은 은막에서 거의 은퇴를 하게 된다. 나이를 한살 두살 먹어감에 따라 절감하는 것은 시간은 내 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간은 흐르면 흐를수록 내가 가졌던 것을 빼앗아 간다. 그것이 힘이든, 의지든, 창의성이든, 기회든 내게 허용된 나의 재산을 하나둘씩 앗아가며, 또 어김없이 성공한다는 점에서, 시간 저 녀석이 내 강력한 적이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연말이 되면 간만에 친구들이 모여 떠들곤 하는데, 언젠가부터 이 수다가 미래에 대한 설계보다는, 올 한해 내가 무엇을 이루어냈는지, 그래서 지금 내가 얼마나 풍족하게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경쟁으로 변질되는 것이 서글프다. 언젠가부터 시간으로부터 무엇을 더 받을지보다, 시간에 무엇을 덜 빼앗겼나를 자랑하는 것이 상대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어가고 있음이 서글프다. 또 ‘아직 건재하노라’ 스스로 세뇌해 시간을 이겼다는 일시적 환각을 만들고 그 안에 숨어버리는 우리네 발버둥이 서글프다. 하지만 저 경쟁은 시간의 절대적인 약탈력을 공증하는 것과도 같다. 상대방을 관객으로 삼아 그 시선과 억지긍정으로부터 내가 덜 빼앗겼음을, 시간이라는 대도로부터 재산을 가장 덜 빼앗긴 자임을 인정받으려는 발버둥이다. 우리가 ‘아직도 건재하노라’고 되뇌는 만치 시간의 약탈하고 빼앗는 힘은 점점 더 강력하게 인증되는 셈이다. 잘 늙는다는 것은 시간 앞에서 내가 마냥 건재할 수 없음을 당당히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될 터다. 난 그래도 빼앗기지 않았다고 아등바등 부정해봤자 시간을 이길 순 없다. 여배우의 전재산일 젊음을 세월이 앗아가는 과정을 숨김없이, 부정치 않고 껴안는 헵번의 당당한 민낯이 사랑스러운 이유다. 그런데 하나 더. 오드리 헵번의 유작은 89년도 <영혼은 그대 곁에>다. 그야말로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모습인 그녀가 맡은 역은 천사. 그녀는 지상에 아직 지켜야 할 누군가를 남겨놓고 온 이를 시한부로 되돌려 보낸다. 허락된 시간은 끝났으나 그래도 남아 있을 내일에 희망을 걸어본 것이다. 이게 노년의 오드리가 이 영화에 출연을 결정함으로써 하려던 마지막 대사는 아닐까. 비록 시간은 모든 것을 앗아가나 내일을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시간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라고. 잘 늙는다는 것은 시간에 전재산을 빼앗겨도 꿈이라는 마지막 재산만은 빼앗기지 않는 것이라고. 다시 새해다. 2019년에도 숱하게 꿈꾸고 숱하게 시간에 승리하기를.
칼럼 |
[김곡의 똑똑똑] 잘 늙는다는 것 |
영화감독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오드리 헵번이다. 29년생. 나와 거의 50년 나이 차가 나는 배우로서, 그녀 전성기의 영화도 거의 내가 태어나기 전 작품들인데도 이리 사랑할 수 없다. 생전에 선행을 많이 하셨다는 개인사에 입각한 것도 아니다. 작품 속에서 매번 해맑은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럽다. 특히 보고 또 보게 되는 53년도 작 <로마의 휴일> 속 24살의 그녀는 마치 영원한 말괄량이로 남아 있다. 그러나 내 최애 작품은 67년도 작 <어두워질 때까지>(테런스 영 감독). 여기서 헵번은 20대 청초함은 온데간데없고 영락없는 30대 후반 아줌마의 모습이지만(자세히 보면 얼굴에 주름도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이 작품을 가장 사랑한다. 젊은 날 각광받았다가 시간이 흘러 세간의 시선에서 멀어짐에 따라 온갖 긴급조치(?)를 발버둥 치다가 스스로 망가지곤 하는 다른 여배우들에 비한다면, 시간의 흐름을 숨김없이 그대로 껴안고 있는 그녀의 당당한 쌩얼이 사랑스럽다. 이 작품을 계기로 해서 헵번은 은막에서 거의 은퇴를 하게 된다. 나이를 한살 두살 먹어감에 따라 절감하는 것은 시간은 내 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간은 흐르면 흐를수록 내가 가졌던 것을 빼앗아 간다. 그것이 힘이든, 의지든, 창의성이든, 기회든 내게 허용된 나의 재산을 하나둘씩 앗아가며, 또 어김없이 성공한다는 점에서, 시간 저 녀석이 내 강력한 적이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연말이 되면 간만에 친구들이 모여 떠들곤 하는데, 언젠가부터 이 수다가 미래에 대한 설계보다는, 올 한해 내가 무엇을 이루어냈는지, 그래서 지금 내가 얼마나 풍족하게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경쟁으로 변질되는 것이 서글프다. 언젠가부터 시간으로부터 무엇을 더 받을지보다, 시간에 무엇을 덜 빼앗겼나를 자랑하는 것이 상대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어가고 있음이 서글프다. 또 ‘아직 건재하노라’ 스스로 세뇌해 시간을 이겼다는 일시적 환각을 만들고 그 안에 숨어버리는 우리네 발버둥이 서글프다. 하지만 저 경쟁은 시간의 절대적인 약탈력을 공증하는 것과도 같다. 상대방을 관객으로 삼아 그 시선과 억지긍정으로부터 내가 덜 빼앗겼음을, 시간이라는 대도로부터 재산을 가장 덜 빼앗긴 자임을 인정받으려는 발버둥이다. 우리가 ‘아직도 건재하노라’고 되뇌는 만치 시간의 약탈하고 빼앗는 힘은 점점 더 강력하게 인증되는 셈이다. 잘 늙는다는 것은 시간 앞에서 내가 마냥 건재할 수 없음을 당당히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될 터다. 난 그래도 빼앗기지 않았다고 아등바등 부정해봤자 시간을 이길 순 없다. 여배우의 전재산일 젊음을 세월이 앗아가는 과정을 숨김없이, 부정치 않고 껴안는 헵번의 당당한 민낯이 사랑스러운 이유다. 그런데 하나 더. 오드리 헵번의 유작은 89년도 <영혼은 그대 곁에>다. 그야말로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모습인 그녀가 맡은 역은 천사. 그녀는 지상에 아직 지켜야 할 누군가를 남겨놓고 온 이를 시한부로 되돌려 보낸다. 허락된 시간은 끝났으나 그래도 남아 있을 내일에 희망을 걸어본 것이다. 이게 노년의 오드리가 이 영화에 출연을 결정함으로써 하려던 마지막 대사는 아닐까. 비록 시간은 모든 것을 앗아가나 내일을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시간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라고. 잘 늙는다는 것은 시간에 전재산을 빼앗겨도 꿈이라는 마지막 재산만은 빼앗기지 않는 것이라고. 다시 새해다. 2019년에도 숱하게 꿈꾸고 숱하게 시간에 승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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