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24 18:28
수정 : 2019.02.25 13:48
김곡의
똑똑똑
사랑은 무공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러나 작금의 강호는 혼돈일지니, 취업대란은 사랑의 내공보다는 가볍고 편리한 인스턴트 연애의 초식을 더 믿을 만한 생존법으로 만들었고, 결혼이라는 재래 정술은 백전백패의 아이콘이 되었다. 연애-취업-결혼이라는 틀에 박힌 수련법만을 강조해오던 종래의 문파들은 사분오열되어 자소서와 처세술만을 가르치는 사교로 전락하였고, 사랑의 도를 깨우치려는 대협보다는 쉽게 사귀고 쉽게 헤어지다가 결혼적령기가 다가오면 제각각의 여건에 맞는 짝과 협세하는 절충주의 소협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상대 협객의 등골만을 빼먹고 삼십육계 도주하는 협잡꾼들까지도 판을 치니, 아아 도탄이어라.
사랑의 내공보다는 초식을 더 중시하게 된 이 안타까운 중원에서, 결혼적령기가 다가오는 협객들을 유혹하는 세 가지 사이비 초식이 있으니 필히 멀리할 것을 일러둔다. 첫째, 스펙수집. 더 좋은 짝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스펙을 모으는 데 치중하다보면 스펙이 무공의 전부라고 착각하게 되어 나중엔 진정한 운명을 만나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요새는 스펙으로 성형도 한다는데, 성형은 자칫하면 혈맥을 막아 다시는 무공을 연마할 수 없게 된다. 둘째, 가상연애. 짝이 없다고 신데렐라 왕자님 기다리듯 허영만을 좇으면 그 또한 구음절맥이다. 이 시대의 많은 허영들은 미디어와 에스엔에스(SNS) 안에 있다. 이상형은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지는 외공에 불과함을 협객들은 기억하라. 셋째, 키보드 신공. 스펙도 공력도 미천한 몇몇 소협들은 인터넷에 모여들어 모든 것을 부패한 중원 탓으로 돌리며 혁명을 꿈꾸기도 한다. 일베나 워마드 같은 마교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손가락만으로 혁명이 된다면 알까기 거성 최양락 천존이 벌써 했을 것이다.
막상 결혼에 통달하게 되더라도 또 다른 사이비 초식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니, 이 또한 경계하라. 첫째, 허례부심. 결혼식의 규모, 웨딩드레스의 화려함 같은 허례허식만을 탐하다가는 또다시 혈이 막힌다. 진정한 무림고수는 연장에 연연하지 않는다. 둘째, 예단측비. 예단을 측정하고 비교하는 것에 탐하는 것도 절맥한다. 자칫하면 파혼이라는 천벌을 받기도 한다. 셋째, 후회통탄. 한번 사랑하면 결코 시시콜콜한 초식에 미련 두어 후회하지 마라. 어떤 초식의 부족도 너끈히 메우는 것이 내공의 합일이다.
물론 결혼은 초식일 뿐, 무림의 정답은 아닐 것이다. 초식의 덫을 멀리하면서도 의협심만은 잃지 않는 동거·파트너·딩크·싱글맘/대디 등 수많은 비책들이 알려지고 있다. 비혼과 졸혼을 감행하는 존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협객과 협객이, 무공과 무공이, 각 문파의 초식과 초식이 만나 합일을 이루어 ‘관계’와 ‘신뢰’라는 진정 더 큰 내공을 이루는 과정만은 만고불변이다. 그렇게 얻을 내공의 깊이에 비한다면, 상견례를 준비하고 결혼식장을 찾는 초식 따위는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그러니 협객들이여, 결혼을 두려워할 공력으로 결혼이 신뢰보다는 허명을 위한 것은 아닌지를 더 두려워하자. 신뢰만이 내공의 전부임을 믿으며, 결혼식장에 당당히 입장하여 다음 혼인서약서를 낭독하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강물이 휘몰아치고 흙먼지가 일어날 때에도, 서로의 눈 너머에 비치는 협의의 마음을 다그치며, 언제까지나 함께 무공을 수련하고 연마할 것을 약속합니다.”
(얼마 전 이 서약서를 읽었던 내 친구들, J와 Y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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