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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02 18:38 수정 : 2018.08.03 09:02

한국의 고시 제도는 한마디로, 과소한 민주주의 교육이 과도한 능력주의 신화와 결합할 때 어떤 괴물이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 거대한 사회 실험이었다. 그런 제도하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평범한 국민들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냉소하는 엘리트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박권일
사회비평가

대한민국 사법부는 사회 문제를 교정하기는커녕 스스로 사회 문제가 되었다. 어떤 이는 “사법부의 일탈”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라야 일탈이지 반복되면 그건 일상이다. ‘촛불재판 개입’ 사건을 일으킨 신영철 전 대법관은 반성은커녕 언론과 인터뷰에서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하겠다”고 당당히 말한 바 있다.

여론 따위 안중에도 없는 오만함은 이번 양승태 ‘재판 거래’ 사건에서도 유사하게 재연됐다. 행정처 문건에는 “국민은 이기적”이고 “법조인은 이성적”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하지만 방대한 문건에 빽빽이 들어찬 국민 기망 행위에 비하면 이 발언은 차라리 애교로 보일 지경이다. 양승태 ‘재판 개입’ 사태는 단순히 ‘상고법원 도입을 둘러싼 조직이기주의가 무리수를 부른 사건’이 아니다. 본질은 ‘헌정 파괴로 이어진 사법권력 남용’이다.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은 선거 등을 통해 권력 위임 절차를 반복한다. 그 절차가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원천으로, 또 권력을 규제하는 장치로도 기능한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일반 국민을 능가하는 권위를 획득하지만 그에 대해 직접적으로 평가받고 책임도 져야 한다. 속내야 어떻든 국민 눈치를 살피는 시늉이라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법관의 권력은 이들과 다른 방식으로 부여된다.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는 헌법 제101조가 권력을 보장하기에, 선거 등의 위임 절차가 필요 없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렇다 보니 사법권력은 입법·행정권력에 비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다는 인식이 희박하기 쉽다.

하지만 ‘희박하기 쉽다’는 것이 곧 ‘희박한 게 당연하다’는 뜻은 아니다. 민주공화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사법권력 역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다. 위임받은 권력이 선출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일종의 특권이며, 국민 입장에선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런 권력이 폭주하면 통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영철 전 대법관은 ‘촛불재판 개입’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판과 사법부 내부 비판에 직면하고도 사퇴하지 않고 임기를 끝까지 다 채웠다.

사법권력의 특권적 지위는 흔히 ‘법관의 독립성’으로 표현된다.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가 그것이다. 언론, 정치권력, 나아가 국민들로부터도 간섭받지 않을 법관의 고유 권한은 그러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사법권력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 수호에 있으며, 이를 위해 관철해야 할 핵심 가치가 ‘공정성’이다. 요컨대 독립성은 공정성을 전제로 사법부에 주어진 것이지, 그 자체에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다. 문제는 상당수 법관이 독립성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서 정작 공정성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왔다는 것이다.

사법부를 포함한 고시 합격자 집단은 체제를 끌어가는 지도층으로 불리지만, 사실 민주적 가치에 대한 불신이 가장 강한 ‘민주주의 인식 취약 집단’이다. 학위논문에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시 잡지인 <고시계>를 분석한 적이 있다. 창간 당시인 1956년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고시 합격 수기를 전부 읽어본 첫인상은, 고시 제도가 끼친 효과가 마치 집단 트라우마처럼 넓고 깊다는 점이었다.

합격자 대다수는 학교 외에 다른 이질적 집단이나 조직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시 준비에 돌입하며, 그 과정에서 인간을 우열화하는 관점과 선민의식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한다. 이들은 ‘내가 열심히 해서 고시에 합격했으니 마음대로 그 권력을 행사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그런 이들끼리 폐쇄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걸 당연시한다. 한국의 고시 제도는 한마디로, 과소한 민주주의 교육이 과도한 능력주의 신화와 결합할 때 어떤 괴물이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 거대한 사회 실험이었다. 그런 제도하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평범한 국민들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냉소하는 엘리트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사법부 내부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이미 판명됐다. 외부로부터의 개혁, 그것도 특단의 조치가 나와야 한다. ‘사법농단’ 재판을 담당할 특별재판부 도입이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은 이들 ‘민주주의 인식 취약 집단’에게 반드시 필요한 민주시민 교육이기도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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