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5.18 18:50
수정 : 2017.05.18 19:54
책거리
17일 국가보훈처장으로 임명된 피우진 육군 예비역 중령의 예전 항공 호출명은 피닉스. 불사조였습니다. 그가 쓴 책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삼인, 2006)를 한번 볼까요. “나는 힘든 훈련을 받을 때면 붕대로 가슴을 칭칭 동여매곤 했다. 훈련 받는 데 불편하기도 했고, 괜히 남자들의 시선을 끌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유방암 수술을 하고 완치했지만, 병력 탓에 전역 명령을 받았다가 법정 투쟁을 거쳐 복귀한 바 있습니다. 요즘 말로 ‘걸크러시’라고 하나요. 씩씩하고 굳센 투지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잘못 알려지거나 잊힌 역사가 종종 새로 발굴되곤 합니다. 최초의 여성 헬기 조종사 김복선 예비역 대위와 우리나라 첫 여성 장군 후보에 올랐지만 위암 발병 때문에 탈락한 고 엄옥순 대령을 기억하려는 까닭입니다. 잊어버리면 역사 속에서 ‘잃어버린 고리’가 되고 마니까요. 불사조처럼 돌아온 피우진 처장 또한 애초에 싸움을 포기했더라면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주에 읽은 <원더우먼 허스토리>(윌북)를 보니, 원더우먼의 탄생사 역시 ‘잃어버린 고리’ 가운데 하나였더군요. 전투 때문에 한쪽 가슴을 도려냈다는 아마존 여전사의 후예, 원더우먼의 원작을 보면 면면이 페미니즘의 계보와 정신이 살아 숨쉰다고 합니다. 단절된 것처럼 보일 때도 힘차게 역사의 물결을 일으켜온 이들이 있었다는 거죠.
인간의 언어로 말하지 못하는 돌고래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것, 동화작가 권정생 문학의 의미를 다시 찾아 읽는 것 모두 잃어버린 고리를 연결하는 노력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신의 영역까지 침범할 때 나타난다는 ‘호모 데우스’가 언제 거리를 쏘다니며 제 자유와 평등을 빼앗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단 열심히 기억하고 읽어 보겠습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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