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바다와 우리의 미래 ⑤ 북극곰-지구 미래 아이콘의 탄생
-출몰하는 곰과 ‘공존’ 택한 813명의 사람들-
1960년대부터 쓰레기장 습격하자
곰 잡는 경찰·감옥 만들어
사살 않고 잡아서 먼 곳에 방사
과학자들-환경단체 협력하며
기후변화와 북극곰 멸종 밝혀내
관광객들에 지구의 위기 설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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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2일 오전 처칠 마을 동쪽에서 만난 북극곰. 북극곰은 11월 중순 허드슨만 바다얼음이 얼기에 앞서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처칠/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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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오전 10시 제프 처치머치는 총에 마취제를 장전하고 있었다. 캐나다 매니토바주 환경보전국에서 일하는 그에게 지금은 한 치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북극곰 경계 시기다.
이곳은 ‘세계 북극곰의 수도’를 자처하는 처칠. 사람(처칠 인구 813명)보다 북극곰(서부 허드슨만 계군 기준 1030마리)이 많은 북극권 허드슨만의 작은 마을이다. 이즈음 북극곰이 유난히 자주 눈에 띄는 이유는 북극곰이 허드슨만의 북극 바다로 나가기에 앞서 마을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기 때문이다. 11월 중순 바다가 얼면 북극곰은 바다에 나가 물범을 사냥하다 이듬해 7월께 다시 육지에 돌아온다. 처치머치는 마을로 들어온 북극곰을 쫓아내는 일명 ‘북극곰 보안경찰'이다.
원래 북극곰의 땅
사륜구동 트럭을 타고 제프와 함께 마을 주변을 순찰했다. 해안가와 늪지대 등 북극곰이 침투하는 길목에 차를 세우고 망원경으로 ‘말썽꾸러기 북극곰’을 찾는 방식이었다.
“엊그제는 새벽 5시에 신고전화가 와서 출동했어요. 저기쯤에 있었는데… 공포탄을 쏴서 쫓아냈지요.”
처칠은 철벽같은 ‘북극곰 경계 시스템'을 자랑한다. 혼자 나다니지 마라, 음식물쓰레기는 밖에 두지 마라, 해안가는 가지 마라 등의 행동지침으로 주민들은 무장되어 있다. 북극곰을 발견하면 신고를 하는 것도 습관이 됐다. 전화번호는 654-BEAR(전화번호의 영어표기·2327)다. 제프를 비롯한 6명의 ‘북극곰 보안경찰’이 24시간 대기하며 출동한다.
“마을에서 가까운 지역부터 1구역, 2구역, 3구역으로 나뉘어요. 1구역에서는 사이렌을 울리고 총을 쏴서 북쪽으로 몰아요. 그러면 북극곰은 처칠 강을 헤엄쳐서 사라져요. 2구역은 공포탄을 쏴서 접근을 차단하는 정도이고, 3구역은 이동 경로만 관찰해요. 위험한 상황일 때는 총을 쏴야 하는데, 마취제 5㏄면 230㎏짜리 북극곰을 세 시간 잠들게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북극곰은 인간들이 자신을 겁주면 주었지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공포탄을 쏴서 쫓아내도 며칠 뒤 마을에 접근한다. 이런 북극곰을 ‘문제 북극곰’이라고 부르는데, 보통 생포해서 ‘북극곰 감옥’이라고 불리는 북극곰 보호소에 30일 동안 가둬둔다. 먹이는 주지 않고 눈이나 물만 준다. 어차피 이때는 북극곰이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사냥하지 않는 시기다. 11월 말이 되면 ‘감금 일수’를 따지지 않고, 모두 헬리콥터를 태워 언 바다에 풀어 놓는다.
“그때가 되면 문제 북극곰은 마을을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얼음이 언 바다에는 먹을거리가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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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보안경찰’ 제프 처치머치가 북극곰 순찰을 위해 마취총을 준비하고 있다. 처칠/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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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은 어떻게 북극곰이 몰려드는 곳이 됐을까? 북극곰 연구의 권위자인 이언 스털링(75) 캐나다 앨버타대학교 교수는 1960년대부터 북극곰 목격 기록이 늘어났다는 점에 주목한다. 모피무역상인 허드슨베이 상사와 군 기지가 철수한 직후다. 상당수 사람이 떠난 뒤 북극곰은 맘 놓고 한산해진 마을을 활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북극곰의 관심을 끈 건 마을 동쪽의 쓰레기매립장이었다. 1968년 11월 북극곰 40마리가 한꺼번에 쓰레기장을 뒤덮은 것은 전설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쓰레기장이었다. 북극곰을 꼬이게 하면서 1968년 19살 소년이 숨지는 등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1971년 매니토바 주정부는 문제 북극곰 50마리를 사살하는 방침을 세웠다. 이 계획에 반대해 세계동물복지기금(IFAW)은 디시(DC)-3 항공기를 임대해 북극곰을 처칠에서 약 300㎞ 떨어진 곳에 방사하자고 제안했다. 동물보호 여론이 움직였고 1975년까지 40마리의 북극곰이 비행기를 타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1981년엔 북극곰 보호소가 문을 열었다. 이런 식으로 북극곰 경계 시스템이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고, 지금은 인간-동물의 충돌을 관리하는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떠올랐다. 북극곰 경계 시스템에는 세 가지 원칙이 통용된다. 첫째, 북극곰 사살은 피하고, 둘째, (인간을 무서워하지 않는) 문제 북극곰은 감옥에 가두고, 셋째, 헬리콥터에 태워 먼 곳에 떨어뜨린다.
이날 북극곰 보호소 앞에서 관광객 수십 명이 북극곰 경계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보호소에는 어미와 새끼가 함께 머무를 수 있는 가족실 2개를 포함해 총 28개 방이 있다. 내부는 공개되지 않는다. 처치머치는 “현재 가족 한 팀을 포함해 6마리가 수용되어 있다. 2~3주 뒤에는 가득 찰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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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동쪽에서 북극곰이 기자가 탄 차량에 올라섰다. 처칠/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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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북극곰’들은 이른바 ‘북극곰 감옥’이라고 불리는 북극곰 보호소에 수용됐다가 허드슨만 바다가 얼면 헬리콥터에 태워 야생방사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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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꾸러기들’ 연구한 과학자들
과학자들의 발걸음을 처칠에 이끈 것도 ‘쓰레기장’과 ‘문제 북극곰’이었다. 1967년 쓰레기장 북극곰에 전파송수신 장치를 부착한 연구가 시작됐고, 매년 같은 북극곰이 처칠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금은 북극권 전체에 19개 계군이 있고, 처칠의 북극곰은 그중 ‘서부 허드슨만 계군'이라는 사실은 상식이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대단한 발견이었다. 1970년대에는 처칠 동쪽이 매년 북극곰 100~150마리가 태어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번식지인 사실도 밝혀졌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산하 ‘북극곰전문가그룹'(PBSG)이 북극곰 보전의 중심 세력이 되어갔다. 이들은 초기 북극곰 밀렵에서 기후변화와 북극곰의 관계로 연구 주제를 옮겨갔다. 처칠은 과학자들이 가장 즐겨 찾는 지역이었다. 이언 스털링은 24일 <한겨레>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처칠에서는 북극곰이 (바다얼음이 얼기 전) 해안가 육지에 머무릅니다. 북극곰을 찾기도 쉽고 잠시 마취시킨 뒤 정보를 얻기도 좋지요. 북극해에서 흩어져 있는 북극곰을 찾는 것보다 처칠 주변에 모여 있는 북극곰을 연구하는 게 훨씬 비용이 덜 들지요.”
기후변화와 관련한 세계적인 논문이 처칠에서 나왔다. 1999년부터 출판된 논문은 갈수록 줄어드는 바다얼음 면적과 처칠에서 포획된 북극곰들(북극곰 감옥에 가는 그 북극곰들!)의 건강 상태의 상관관계를 추적하고 있었다. 북극곰의 체질량 지수(BMI)는 나빠지고 있었다. 2008년 통계 모델을 돌린 스티븐 암스트럽(66) 등 과학자들은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현 추세대로라면 이번 세기 중반까지 전세계 북극곰 3분의 2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2009년 암스트럽과 스털링 등의 연구에서는 이번 세기 말 북극곰의 여름 서식지 면적이 68% 감소한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2014년 현재 전세계 북극곰은 2만5000마리로 추정된다고 북극곰전문가그룹은 밝혔다.
처칠의 연구를 토대로 ‘기후변화 가속화=북극곰 멸종’이라는 등식이 성립됐다. 미국 정부는 2008년 북극곰을 기후변화에 따른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 당시 미국지질조사국(USGS)에서 기초작업을 벌인 스티븐 암스트럽 ‘북극곰인터내셔널’ 수석과학자는 인터뷰에서 “북극곰이 기후변화를 상징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집에 가면 태양열 패널 달겠다”
처치머치와 헤어진 이날 오후, 기자는 처칠 동쪽의 옛 쓰레기장에서 북극곰 가족을 만났다. 북극곰 접근을 막기 위해 지붕이 덮인 현대식 재활용센터가 생겼지만, 여전히 일부 북극곰은 먹을 게 없는데도 옛 쓰레기장을 찾는다.
이튿날 오전에는 처칠 동쪽 15㎞ 지점에서 북극곰 두 마리를 만났다. 이제 갓 독립한 암컷 새끼로 보이는 북극곰은 꽁꽁 언 툰드라 호수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고, 수컷 북극곰은 썰매 개 사육장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컷은 기자가 탄 차량이 신기했는지, 몸을 세우고 창문 안을 들여다봤다. 약 30분 뒤 북극곰 보안경찰이 출동해 개체를 확인했다.
기후변화의 증언자들은 처칠의 관광객들이다. 1979년 처칠의 한 주민이 녹슨 농기계와 차량을 개조해 ‘툰드라버기’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이 작은 마을이 세계적인 북극곰 생태관광지로 성장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바퀴 높이만 2m가 넘는 이 설상차는 움푹 패고 물이 고인 툰드라 대지를 이동하며 북극곰을 찾아다닐 수 있다. 초기에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에게 이용되다가 나중에는 대중 관광에 이용됐고, 지금은 처칠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과학자들은 북극곰을 보러 온 관광객들의 교사가 되어 주었다. 11년 전 기자가 처칠을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시청 강당에서 열린 과학자들의 무료 기후변화 강연이었다. 2002년 설립된 환경단체 ‘북극곰인터내셔널'은 그때나 지금이나 과학자와 대중을 연결해주고 있다. 툰드라버기에 전문가들이 동승해 관광객들에게 기후변화와 북극곰 생태를 설명한다. 지난 5일까지 열린 ‘북극곰 주간'에는 과학자들을 초청해 강연과 토론회를 벌였고, 재생에너지 캠페인, 북극곰 라이브캠 등의 행사도 진행했다. 매년 처칠에 오는 관광객은 1만~1만2000명이다. 처칠 경제의 60%가 관광산업이다. 처칠은 북극곰이 먹여 살린다.
처칠의 북극곰 관광이 환경보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정확히 추정하긴 힘들다. 굳이 먼 북극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 북극곰을 쫓아다니며 뿜어대는 이산화탄소량이 지구온난화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비판적인 연구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처칠의 주민들이 반세기 동안 북극곰과 공존하는 방법을 배워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 처칠은 세계인들에게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는 마을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연구 성과를 올렸고, 환경단체는 자신들의 주장을 대중적으로 전파했으며, 처칠 주민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의 코모동물원 사육사인 멜러니 호트는 매년 이맘때 북극곰인터내셔널 소속으로 툰드라버기에서 가이드를 하기 위해 처칠을 찾는다. 그는 “여행을 마친 관광객들은 집에 가서 태양열 패널을 달겠다고 한다. 처칠이야말로 인간과 북극곰이 어떻게 연결됐는지 보여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처칠(캐나다)/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인포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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