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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17 18:02 수정 : 2016.08.19 14:02

권영란

진주 <단디뉴스> 대표

문을 열자 훅, 열기가 덮친다. 낡은 벽걸이 에어컨이 덜덜거리고 마주앉은 긴 책상에 노트북을 앞에 두고 10여명의 시민들이 청구인서명부를 분류하고 전산입력 중이다.

홍준표 경남지사 주민소환진주운동본부 사무실이다. 지난 10일부터 경남 18개 시·군 지역에서 ‘홍준표 경남지사 주민소환투표’를 위한 청구인서명부 보완·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24일까지 최소 3만명을 보정해서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야 주민소환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다.

경상남도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8일 발표한 주민소환 청구인서명 심사 결과는 총 35만7801명 중 유효 24만1373명, 원천무효 또는 보정가능이 11만6428명이다. 경남도선관위는 2015년 12월31일 기준 경남 전체 유권자 10%인 27만1032명이 돼야 주민소환 투표 청구가 성립된다고 설명했다.

시민들은 펄쩍 뛰면서 항의했다. 경남도선관위는 서명 시작 당시 소환운동본부 쪽에 청구인 대상은 2014년도 경남도 내 거주 유권자임을 확인시켰다. 청구인서명은 소환청구인대표자가 증명서 교부 사실을 공표한 날인 2015년 7월20일 시작해 11월20일까지 진행됐다.

그런데 1년이 지나 청구서명부 심사 완료 시점에 청구인 기준일을 2015년 12월31일로 발표한 것이다. 그 결과, 1년 동안 증가한 경남도 내 3만명의 인구를 반영해 청구인 수도 약 3600여명 늘어났다. 경남도선관위는 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유권해석이 그렇다고 둘러댔다. 관련법 제7조 ①항에 따르면 주민소환투표청구권자는 전년도 12월31일 현재 주민등록표에 등록된 19살 이상의 주민으로서 당해 지방자치단체 관할구역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자를 말한다. 여기서 소환청구 최종일인 2016년 2월9일(고성군과 사천시가 기초 보궐선거로 중단됐다가 진행)이냐 아니면 소환청구 교부일인 2015년 7월20일이냐에 따라 ‘전년도’가 달라진 것이었다. 시민들로서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보정 작업 3일째인 13일 그 기간에 전입한 청구인이 ‘주민등록 조회 불가’로 분류돼 무효 처리된 사실을 발견했다. 경남도선관위는 인구 증가분만 반영하고 심사 과정에서 그 기간에 전입한 청구인은 무효 처리한 것이다. 다시 문제를 제기하고 재차 항의했다. 모두 3200여명이었다. 그제야 경남도선관위는 부랴부랴 사태를 파악하고 오류를 인정한 뒤, 서명부를 재확인했다. 그 결과 ‘무효’ 처리 3200여명 중 2800명이 ‘유효’로 판명됐다. 또 심사 근거가 엄연히 있는데도 주소 기재, 서명 등의 유·무효 처리가 검수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 심각함이 발견됐다. 검수자의 자격과 전문성 확보에 의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소환운동이 진행된 지난 1년여 동안 선관위는 안일했다. 선관위는 청구인에게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오’라는 식이었다. 해당 지역 선관위는 ‘답할 수가 없다’ ‘경남도선관위에 물어봐라’로 일관했고, 경남도선관위는 ‘해당 선관위에 물어봐라’ ‘중앙선관위 통보를 기다린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시민들은 주민소환법이 취지와는 달리 행정 편의적이라고 말한다. 시행에 있어 시민들의 권한을 오히려 규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007년 7월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그동안 경기도 하남시 등에서 몇 차례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됐지만 시·군 단위였고, 광역시도로는 2009년 김태환 제주지사 주민소환 부결 이후 ‘홍준표 경남지사 주민소환운동’이 첫 사례다. 사문화되었던 법률은 시민들에 의해서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꼭 10년 만이다. 시민들은 선관위에 전화해서 묻고, 시행령을 뒤지고, 고민하고, 항의하고… 닦달했다. 청구인 유효 1명을 더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단 하나라도 거저 얻어내는 것은 없었다. 덕분에 시민들은 성장했다. 싸우면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선관위여, 제발 공부 좀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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