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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14 17:57 수정 : 2016.12.14 20:31

권영란
진주 <단디뉴스> 대표

지방자치가 무색하다. 지방정부의 독선과 권위가 하늘을 찌른다. 시민은 안중에 없고 대의민주주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중앙권력이 시도 때도 없이 국민을 겁박하고, 편 갈라 싸움 붙이고, 여론을 조작하는 행태는 지방정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니 더욱 심각하다. 좁은 지역에서 인맥으로 얽힌 권력구조와 견제 세력이 없는 지방정부는 무소불위 제왕적 권력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안하무인 행태는 이미 유명하다. 그는 자신을 비판하는 도민에게 ‘좌파의 떼쓰기’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막말을 퍼붓고, 도의원을 ‘쓰레기’ ‘무뢰배’로 지칭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대통령 탄핵을 겪으면서 경남도민들은 전국 17개 시·도 중에서 경남이 가장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진주시민들은 ‘박근혜-홍준표-이창희 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진주시 전 국·소 과장단이 11월28일 ‘진주시 공무원이 개란 말인가’라는 펼침막을 걸고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진주시 제공

최근 진주에서 일어난 ‘이창희 진주시장 막말 사건’을 들여다보면 지방정부의 제왕적 태도를 실감하게 된다. 지난 11월21일 진주시의회 제2차 정례회가 열리는 본회의장 안이었다. 진주시장이 회의 시작 전 류재수(무소속) 의원에게 대뜸 “자식이 말이야, 까불고 있어” “밖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다니고 말이야”라고 내뱉었다. 이에 항의하는 강민아(무소속) 의원에게는 “니나 잘해” “(‘바닥을 보여주시는군요’라는 말에) 그래 보여줄까, 발바닥까지 보여줄까”라고 말했다. 순전히 해당 시의원이 진주 시정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다. 진주에서 열린 시국대회에서 류 의원이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하는 시민들 앞에서 진주시도 나라 꼴과 마찬가지로 ‘개판 행정’이며, 그 책임자인 진주시장이 물러날 때까지 싸우겠다고 말한 것. 그 말을 전해들은 이 시장이 의회 본회의장에서 그런 막말을 쏟아냈다.

‘시장 막말 사건’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분노했다. 진주시의회는 시장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고 지역 시민사회는 대시민 공개 사과를 촉구했다. 그러자 상식 밖의 일이 벌어졌다. 시민이 시청 홈페이지에 올린 ‘시장 막말 관련 항의성 글’이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고, 진주시 국장급 간부 공무원들이 나와 시민단체 요구에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진주시 전 국·소 과장단도 ‘진주시 공무원이 개란 말인가’라는 펼침막을 걸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해당 의원에게 “1600여명 진주시 공무원을 ‘개’ 취급했다” “진주시 행정이 전국에서 제일 개판인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곧 있을 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도 불응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공무원노동조합도 성명서를 내면서 가세했다. 거기에다 뜬금없이 관변단체로 대표되는 진주문화원이 해당 의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시장 막말 사건’이 되레 해당 시의원을 향한 규탄과 사과 촉구로 진행되는 동안 당사자인 진주시장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공무원들은 시민 편의와 권익보다 시장을 대변했고, 시장은 그들 뒤에 버티고 있었다. 대놓고 겁박하고, 말꼬리를 잡아 억지를 쓰고, 본질을 흐리는 물타기를 하고, 편을 갈라 싸움을 붙이고…. 진주시장과 공무원들은 스스로 사리에 맞지 않는 ‘개판 행정’임을 증명해 보였다. 이게 지방정부의 현주소이다. 우리는 촛불의 힘으로 국정농단 책임자인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뤄냈고, 국민이 권력의 주인임을 증명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적은 청와대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내가 발 딛고 사는 지역에도 널려 있다.

나는 지금 동네 시민으로서 반성문을 쓰고 있는 중이다. 일상의 저항이 된 촛불을 이제는 지방권력을 향해 들어야 한다고. 바로 내 곁의 ‘박근혜-최순실’에게로 향해야 한다고. 계속 ‘까불고 있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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