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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08 18:33 수정 : 2017.02.08 21:01

권영란
진주 <단디뉴스> 대표

소설가 김훈이 최근 신작 출간 기자회견장에서 ‘갑질의 역사’를 언급한 기사를 읽었다. 그는 “내가 산 70년 동안의 유구의 전통이랄 수 있는 건 ‘갑질’에 불과했다”며 “한없는 폭력과 억압, 야만성이 지금까지도 악의 유산으로 세습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처에 깔린 갑질 현장, 갑질의 역사. 내겐 우리 동네 지방정부의 작태를 보면 ‘여기가 갑질 세상이구나’ 싶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대의민주주의를 방패로 권력화된 갑질이다. 지난해 진주시의회에서 일어난 일 중에 ‘박수 사건’이 있다. 야권 의원이 지역현안 관련 5분 발언을 하자 한 시민 방청객이 ‘잘했다’는 뜻으로 짧은 박수를 친 게 다였다. 하지만 회의가 끝난 뒤 ‘박수 친 사람이 누구냐?’며 의회 사무국 직원이 득달같이 달려와 꼭 범인을 적발 처벌하겠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공무원은 ‘니 땜에 시장한테 욕먹었다’ ‘어디서 감히’라는 식이었다. 시의회 로비에서 시민과 공무원 간의 거친 말싸움이 까닥하다간 몸싸움으로 이어질 상황이었다. 다행히 일단락이 됐지만 지방권력의 눈치만 보고 시민 위에 군림하는 지방의회의 더러운 꼬락서니가 이미 다 드러난 뒤였다. 왜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박수를 치면 안 되는가. 이 작은 사건은 당시 현장에 있던 시민 방청객들에게 안타깝지만 주민참여의 한계를 깨닫게 했다.

지난 1년간 진주지역 시민단체인 생활정치시민네트워크 진주같이와 진주아이쿱, 녹색당이 의정지기단을 조직해 회기가 열릴 때마다 본회의는 물론 3개 상임위원회, 예결산특별위원회 등에 적극적으로 들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던 의회가 ‘이거 뭐지’라고 허둥지둥하는 모양새가 빤히 보였다. 거기에다 의회는 시민들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시민 방청객에게 방청 규칙 준수를 요구할 뿐 방청 지원에 대한 최소한의 규정이나 배려도 없었다. 시민들은 독학하듯 의회운영 조례와 규칙을 살펴보고, 의사일정과 안건을 뒤져보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의회 방청 규칙과 싸워야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들어가 좀비 같은 시민 방청객이 되고 싶진 않으니까.

최근 경남지역 18개 시·군 몇몇 지방의회 사례를 살펴보면 대의민주주의는 실종하고 갑질이 고질화되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하동군의회는 지난해 여러 차례 주민들의 의회 방청을 불허했다. 회의 장소가 협소하고 개인정보가 유출된다는 이유다. 주민들은 군의원 전원을 직권남용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데 이어 창원지방법원에 방청불허처분 취소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야 했고, 그제야 임시로 방청이 허용됐다. 사천시의회는 의장단 선출이 여·야당 파행으로 치달아 전국 기초의회 가운데 최장기 파행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원 구성이 되지 못한 3개월 동안 의정비와 수당은 꼬박꼬박 받아가 물의를 빚었다. 창녕군의회는 지난해 상반기 의장단 선거에서 금품 수수 사건으로 의장·부의장이 구속됐고, 오는 4월 재보궐선거를 치르게 된다.

대부분의 지방의회가 지방정부와의 협력과 견제에서 이미 힘의 균형을 잃고 지방정부 눈치나 살피고 있다. 여기에 더해 대의민주주의의 담벼락에 기대어 야합, 나눠먹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고 있다. 이것이 지방의회의 현주소이다. 지방의회는 지방자치의 사각지대이다. 의회가 지방정부 행정에 대한 비판과 견제, 대안 제시 등 본연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되레 시민 위에 군림한다. 지금까지 시민 스스로 권리를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방의회가 바뀌면 그 지역이 바뀐다. 지방의회의 갑질을 멈추게 하고 시민들 곁으로 내려앉힐 수 있는 이도 시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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