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3.08 19:05
수정 : 2017.03.08 20:27
권영란
진주 <단디뉴스> 대표
위험하다! 커다란 굴착기가 학교 주변 논바닥을 갈아엎고 있었다. 급식소 가는 길에 이 모습을 본 관봉초등학교 6학년 민표와 친구들은 안절부절못했다. 며칠 전에 논 가장자리 물웅덩이에서 수많은 북방산개구리알과 갓 부화한 올챙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굴착기는 금방이라도 논을 메워버릴 것 같았다.
서둘러 점심을 먹은 아이들은 ‘개구리알과 올챙이 살리기 작전’에 돌입했다. 물웅덩이에 들어가기 위해 장화를 찾아 신고, 플라스틱 통을 구하고, 삽을 찾아 달려갔다. 웅덩이 물이 차가웠지만 맨손으로 개구리알 덩이를 하나하나 건졌다. 올챙이는 두 손을 모아 흘리지 않도록 다 건져서 플라스틱 통에 담았다. 그러고는 엎지르지 않도록 조심스레 통을 들고 가서 다른 논 물웅덩이로 옮겨주었다. 아이들은 한 마리라도 더 살리기 위해 서둘렀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아이들은 올챙이와 개구리알 덩이를 무사히 안전하게 다 옮길 수 있었다. 올챙이들이 물속에서 꼬물거리며 다니는 것을 본 민표와 친구들은 왠지 뿌듯해져 신이 났다. 전교생 80명 정도 되는 진주시 정촌면 관봉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은 벌써 무논에 가득 찰 개구리 울음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각, 관봉초등학교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버스 노동자 김영식씨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기존 도심과 진주혁신도시를 연결하는 다리 김시민대교 120미터 탑 꼭대기에 올라가 ‘부산교통 몰아주기 특혜 엉터리 노선 개편 중단하라’가 적힌 펼침막을 내걸었다. 그는 진주시가 특정 업체에다 몰아주는 버스 노선을 개편함으로써 자신이 종사하는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인 삼성교통이 기존 노선을 빼앗겨 사실상 경영이 어려워져 임금 삭감은 물론 구조조정으로 내몰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와 같은 일이 진주시의 ‘갑질 행정’ 때문이라고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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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단디뉴스> 대표 권영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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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봄에 이르는 길목이지만 바람은 여전히 매섭고 간혹 눈발이 날리기도 한다. 사방이 막힌 2평 정도의 공간은 바닥이 철망으로 돼 있고 그는 침낭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동료들이 올려다주는 최소한의 물과 음식으로 연명하며 하늘도 땅도 아닌 그곳에 고립돼 있다. 간간이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자신은 무사하다고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때로는 120미터 아래에서 동료들이 드나드는 것을 내려다보고, 때로는 “영식아 힘내라, 사랑한다” 아득하게 들리는 소리에 왈칵 눈물이 솟구치기도 한단다.
하지만 여전히 김영식씨는 단호하다. 진주시와 진주시장이 불합리한 시내버스 체제 개편을 멈추지 않는 한 내려올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삼성교통 230여명의 생존권이 진주시장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열 받은’ 민주노총경남본부가 나섰고, 진주지역 33개 시민사회단체·정당이 진주시가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인근 김해 지역의 더불어민주당 김경수·민홍철 국회의원이 소식을 듣고 고공농성장을 방문해 ‘당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겠다’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지역 시민사회는 진주시장이 김영식씨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라며 시장이 시민의 안전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시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거듭 촉구하고 있다.
진주시장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인구 36만명의 도시에서 생명을 건 절박한 싸움이 여러 날 계속되고 있지만 이 사태에 대해 공식적으로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할 테면 해봐라’ 식의 무시다. 심지어 지역에 있는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두 국회의원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자치단체장의 제왕적 횡포에 맞서 역설적으로 생명을 담보로 생존권을 지켜야 하는 현실이다. ‘1당 독재’로 전락한 지방자치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오늘로써 고공농성 8일째다. 삼성교통 노조원들과 지역 시민사회는 저녁이면 그가 있는 120미터 탑 아래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 진주시장과 진주시가 외면하는 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부디 그가 무사히 내려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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