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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03 18:58 수정 : 2017.05.03 21:23

권영란
진주 <단디뉴스> 대표

‘제1회 한국지역도서전’이 5월25일부터 29일까지 제주 한라도서관 등에서 열린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 출판사들이 모여 자신들이 펴낸 책들을 끌어모아 전시한다.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한지연·회장 황풍년)가 새로운 출판문화의 장을 열어보겠다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하는 지역도서전이다.

한지연은 2016년 9월 서울을 제외한 지역 출판사들이 모여 결성했다. 한지연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제주, 진주, 창원, 부산, 대구, 광주, 고창, 전주, 대전, 청주, 춘천… 전국 팔도 방방곡곡 구석진 동네에 퍼질러 앉아, 자기 동네 얘기를 뚝심 있게 책이라는 그릇에 담아온 책쟁이들의 연대”라는 것.

‘서울 중심’ ‘서울 집중화’는 정치만이 아니다. 출판 및 유통 시스템이 ‘서울’ ‘중앙’으로 편중된 시장에서 지역 이야기는 돈이 안 되고 지역출판은 찬밥이다. 배본사나 총판은 수도권 일대에 몰려 있고, 물량이 많으니 인쇄·제본 비용도 서울이 훨씬 싸다. 책 소비자도 60~70%가 서울·경기 등 이른바 수도권에 있다. 그래서 도서출판 피플파워 김주완 편집이사는 “사실 지역에서 지역 저자의 지역 콘텐츠를 갖고 출판을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이라고 말한다.

수십년 전에도 그랬다. 1980년대 후반 대학을 갓 졸업하고 지역 출판사에서 일했다. 지역에 살고 있는 청춘들이 지역 역사와 문화를 캐고, 지역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자는 소박한 문화운동으로 시작했다. 6월항쟁 이후 지역문화, 지역출판 분위기가 한창 달아오를 때였다. 하지만 녹록지 않았다. 몇 권의 책이 나왔지만 서울 중심의 유명 출판사나 유명 작가에게 밀려 눈에 띄지도 않았다. 유통망이 없어 알음알음 팔거나 고작해야 지역단체에 떠안기는 수준이었다. 자금은 금세 바닥났고 출판사는 인쇄소로 전락한 채 명맥을 유지하고 일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마산, 광주, 부산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 30여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출판사들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했다. 그동안 정부의 지역출판 정책은 언감생심이었다.

서울 집중화는 왕조정치 이래 수백년 된 일이지만 한국전쟁 이후 매스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더욱 심각해져 지역출판은 ‘지역성’을 거부하고 서울을 흉내 내고 서울 따라잡기에 급급했다. 서울 외 지역 출판사들의 연대는 이러한 시스템에서 독립하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서울 중심의 출판문화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울만 해바라기하고 있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각성으로 보인다. ‘지역’ 스스로의 존재 가치와 품격을 되찾겠다는 의지로도 보인다.

한지연은 이번 지역도서전을 앞두고 행사 비용 마련을 위해 온라인에서 ‘온 나라 지역 책들의 한마당’이란 큰 제목으로 전국에 있는 지역 출판사의 고군분투기를 털어놓는 스토리펀딩을 진행하기도 했다. 정부나 지자체의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해 생각해낸 자구책이다. 스토리펀딩 목표액은 3천만원이었지만 모금액은 1천만원에 머물렀다. 새로운 출판문화의 물꼬를 트고 물길을 내는 작업은 즐겁지만 힘겨운 일이다.

지금 한창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막판 열을 달구고 있지만 지역 선거 분위기는 차갑다. 후보 토론회가 수차례 진행됐지만 ‘서울 중앙 권력’을 분배해 지역을 살리겠다는 제대로 된 정책 제시는 없었다. 하물며 지역문화·지역출판 진흥을 말하는 후보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지금까지 쭉 그래 왔다. 정부는 물론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방자치단체조차 지역 이야기와 지역 사람들의 삶을 콘텐츠로 만드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는 제주에서 열릴 ‘제1회 한국지역도서전’을 더욱 기대하고 있다. ‘서울 중앙’을 벗어나겠다는 지역 출판사들의 독립과 연대에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수백개 수천개의 잔뿌리들이 땅속 수분과 양분을 끌어들여야 비로소 한 그루 나무가 자라고 새잎이 나고 꽃이 핀다. ‘지역’이라는 딱지를 달고 묻힌 또는 사라지고 있는 수많은 지역 콘텐츠가 우리를 더욱 풍요롭게 할지니 흥해라, 지역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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