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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10 18:18 수정 : 2017.05.10 21:25

김수민
전 구미시의원·녹색당

대선 출구조사 발표 당시 나는 대구의 어느 대학교 인근에 있었다. 대다수의 청년들이 촛불 민심과 함께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정권교체가 확정되었음에도 분위기는 그리 들뜨지 않았다. 기호 1번의 지지자들은 예상한 듯 덤덤했을 것이고, 3, 4, 5번 지지자들은 다소 낙담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 같이 홍준표 후보의 전국 2위와 지역 1위에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왜 또 이렇게 되는가.

홍준표 후보는 대선에 돌입하면서 “박근혜를 잊으라”고 공언했다. 홍 후보는 ‘태극기부대’를 자신에게 흡수해 질질 끄직고(끌고) 다니는 동시에, “영감탱이”, “민중혁명”, “동성애 엄벌” 따위의 마음에 있는 듯 없는 듯한 말로 한국 강경보수세력의 표를 재조립했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심지어 나는 절대 찬성할 수 없는 홍준표 후보를 지지한다 한들 방식과 내용이 낡긴 했는데. 정치력은 인정. 재밌고. 어쩌란 말이냐. 대화하고 설득할 수 있을 뿐”이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이것이 물론 홍 후보를 옹호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현란한 쇼에 홍준표를 박근혜나 친박과 동일시할 수만은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사는 나는 홍준표 후보의 지지세가 가면 갈수록 노년층으로 국한된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표가 확장되었다는 걸 나는 개표에 이르러서야 깨달았다.

성주와 김천에서 홍 후보에게 준 표가 화제다. 성주와 김천은 사드 배치 관련 지역이다. “문재인이 됐네”, “심상정은 왜 저것밖에 안 나왔노”, “홍준표 같은 인간이 어떻게 20%가 넘노”(성주·김천 주민들 “문재인, 사드 배치 철회해줄 것” 기대감, <한겨레>, 김일우 기자, 5월10일치). 그런데 이들을 두고 조롱과 불신이 쏟아지는 것을 목격한다. 성주군 유효표 가운데 홍 준 표는 56.2%이고 김천시에서는 48%다. 비난의 기조는 ‘이중적’이라는 것이다.

2012년 대선 당시 경북 전역에서 8할가량의 박근혜 몰표가 쏟아졌던 것이 저만큼이라도 변했다고도 한다. 또 자유한국당이 아무리 잘못을 해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지역에서 제구실을 못 하는 이상, 옛 새누리 지지표가 대안을 쉽게 찾지 못할 수밖에 없다는 날카로운 지적도 있다. 사드 반대 투쟁에 나선 정의당, 녹색당의 당원들이 있지만, 그들도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낼 겨를이 없거니와 그 작은 정당에 쉽사리 지지가 가기도 힘든 노릇이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을 뒤로 제쳐두더라도, 나는 저만큼의 홍준표가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칠곡으로 갈 뻔한 사드 부지가 성주로 결정난 이후 성주군민들은 열심히 싸웠다. 쉬지 않고 싸웠다. 이런 투쟁이 조만간에 끝장을 보지 못할 경우, 지치면서도 핏발이 서고, 이간책과 내분으로 점철된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만나는 온갖 딜레마를 그리고 있는 최규석씨의 만화 <송곳>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현실에서 이러한 투쟁을 만날 때는 만화에서 깨달은 것을 잊는 법이다. 한동안 성주군민들은 똘똘 뭉쳐 싸웠고, 사드 부지는 성주 읍내에서 김천혁신도시 부근의 성주골프장으로 튕겨 나갔다. 적잖은 주민들이 반대 투쟁을 내려놓았고, 그다음에도 남아 있는 사람들, 골프장 인근 성주 주민들과, 문재인 후보 지지율이 50%를 넘긴 김천혁신도시 주민들, 원불교 교도들은 성주 및 김천 전역의 여론과 다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드 반대 주민, 성주와 김천, 대구경북을 싸잡아 비웃는 소리가 들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에 진중권씨는 우리 사회는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고 원흉을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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