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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17 18:39 수정 : 2017.05.17 20:23

황민호
<옥천신문> 제작국장

누군가 말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고. 그 힘은 사람을 추종하지 않는다. 공통의 지향으로 공동으로 숙의하며 우리의 미래를 위해 행동한다. 이에 부합하는 ‘주민자치 1번지’라 해도 손색없는 인구 1천명 남짓한 충북 옥천군 안남면을 소개한다.

작은 면이지만, 주민의 힘으로 정부 정책을 견인하고 농촌 대안을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금강수계 상류지역인 옥천은 대청댐 건설로 수몰지역과 개발제한구역이 많다. 하류지역 주민들이 내는 물이용부담금 일부가 보상 차원의 주민지원사업비로 지원된다. 이 사업비는 집집마다 마을마다 보탬도 됐지만 사실상 소모됐다. 안남면민들은 어렵게 얻은 돈인데 허투루 쓰면 안 되겠다 싶어 이 중 30%를 대단위사업비로 묶고 면 발전을 위해 쓰기로 2006년 합의했다. 자기 몫이 줄어드는데도 모두를 위해 ‘위대한 합의’를 했던 것이다.

위에서 내려온 ‘제도적 공공성’이 아니라 아래에서 길어 올린 ‘생활의 공공성’이 발현된 것. 이는 환경부의 정책을 끌어냈다. 안남면이 시작하면서 환경부는 상류지역 지원사업 방향을 일부 전환했다. 안남면의 대단위사업 예산은 해마다 1억5천만원가량 된다. 주민들은 먼저 논의기구를 만들었다. 12개 마을 이장, 12개 마을회에서 추천한 12명의 주민 등 24명이 지역구인 셈이다. 면에서 활동하는 단체, 말하자면 자율방범대장, 체육회장, 새마을부녀회장, 풍물단장, 생활개선회장, 주민자치위원장 등 15명 정도가 비례대표로 참여해 40명 내외의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라는 주민 평의회가 만들어졌다. 스스로 공론장을 만든 것이다.

읍면동 단위 의사결정 구조는 대부분 면장, 동장을 중심으로 좌지우지하는 게 현실이지만, 안남면은 주민 스스로 구심을 단단히 잡았다. 지역발전위원장은 위원들이 직접 선출을 했고 면장은 주민들의 논의를 들었다. 이는 기실 행정자치부가 추진하려는 읍면동 주민자치의 가장 강력한 모델이다. 전국 각지에서 견학을 왔다. 이는 그동안 수많은 지자체에서 만들어온 ‘들러리식’ 거버넌스 위원회라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도와준다’는 협치가 아닌 ‘스스로 한다’는 자치의 구심으로 움직거린 사례다. 매달 회의를 했고, 2주에 한 번씩 운영위를 했다. 지금은 ‘안남지역공동체’라는 사단법인으로 진화했다.

새 정부가 긴하게 참고할 만한 사례다. 지역발전위가 맨 처음 한 사업은 안남면의 10년, 20년 뒤 미래계획을 세우는 거였다. 농업과 농촌 두 분야로 나뉘어 설계했고 끊임없이 전문가 집단과 논의해 만들었다. 이 사업계획안으로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 응모해 50억원 가까운 공적 재원을 끌어와 스스로의 삶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스티커 붙이기를 하는 등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마을 무상버스를 만든 것도 참 중요한 일이다. 민이 스스로 운영하는 배바우작은도서관, 민이 직접 만든 한글문해학교인 어머니학교도 있다. 마을신문도 만들었다. 스스로 축제도 기획해 매해 가을 ‘작은 음악회’도 수년째 하고 있다.

안남면은 군의원도 없고 농협도 통폐합돼 조합장도 안남 출신이 아니다. 수많은 선거가 지나갔지만 어느 것 하나 이뤄놓은 게 없었다. 오히려 선거 때마다 패를 갈라쳤고 선거가 끝난 뒤 전리품을 챙기듯 자기 사람 챙기기로 면 안에 갈등과 분열이 노상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사라진 뒤 주민들의 수평적인 네트워크가 공고해졌다. 이 뿌리들이 든든하게 자라고 확장돼 농림부가 법제화하려는 농업회의소와 같은 군 농업발전위원회를 만들었다.

권력이 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스스로 각인하지 않는다면 늘 패배는 정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그를 만나 일희일비하기보다 서로를 간절하게 만나야 한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은 누구에 의해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적으로 연대하는 힘이다. 다시 뿌리를 생각한다.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여기 지금 우리는 각자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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