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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31 18:18 수정 : 2017.05.31 21:07

김수민
전 구미시의원·녹색당

이 지면에 글을 쓰는 건 ‘영고라인’(영원한 고통라인)에 빠져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수구보수세력이 주도하는 사업에 대항하는 의견이나 경험을 풀어놓으면,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응원보다는 지역 현실에 대한 조롱이 압도적이다. 그리고 한편 그 현실에 관한 이해와 실재적인 변화에 필요한 마음가짐을 요청하면, 그때는 ‘수꼴의 변호사’쯤으로 몰려 비난을 받는다. 지난번 이 지면에서 성주·김천 지역 주민들을 변호했을 때가 대표적인 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한 심상정 후보와 김선동 후보의 지지자들이 성주·김천 지역 주민을 비난하는 사례는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 사드 배치 지역인 성주·김천 지역에서 홍준표 후보가 1위 득표를 한 것을 두고, 사드 반대파도 아닌 후보의 지지자들이 더 흥분한다. 이런 분들은 민주주의를 ‘한판의 승부’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더구나 어떤 원인을 만들어내 결과를 움직이기보다는 결과가 나오고 나서 거기에 반응하는 일에 더 열중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도 이런 이들을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유한국당의 지역 조직은 망해가고 있다. 한꺼번에 그리될 리는 없지만 서서히 그러고 있다. 이는 제법 오래된 일이다. 자신들끼리 쏘다니고 고무하고 찬양하면서 이웃 전반을 살피지 못했고, ‘이명박근혜’ 중앙정치에 의탁한 끝에 몰락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자유한국당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이 진보니 개혁이니 떠들었던 사람들도 지역사회에서 그에 못지않았다. 이명박근혜 욕을 비롯한 중앙정치담론에 의존했다. 그러면서 끼리끼리 어울렸다.

타인을 움직여 사회를 실제로 바꾸는 일에 몹시 무능한 대신, 자신이 무슨 파다, 무슨 성향이다, 자기소개에 여념이 없었다. 자기 마음먹은 대로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자신의 무변화나 무성찰은 정당화하면서 남 탓에 여념이 없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은 요즘 자신을 ‘참여민주파’라고 포장하는 모양이지만, 내가 시종 목격한 건 참여가 아니라 명백한 도피다. 그리고 자신들이 투표만큼은 제대로 했다고 자부하는 모양이지만, 이들에게 표를 받은 지방의원 꼴을 보면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보다 나을 것도 별로 없다.

이대로 가면 이 지역사회에서 내년 지방선거가 어떻게 치러질지 명약관화하다. 한쪽은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너절한 읍소 전략을, 다른 쪽은 ‘저 당은 망했고 이제 우리 쪽’이라는 거저먹기 캠페인을 펼칠 것이다. 선거만이 아니라 평상시 정치도 그렇게 흘러간다면 유의미한 변화는 없을 것이다. 중앙의 흐름에 따라 반동과 역행이 일어나기도 쉽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적대적 공생관계 속에서, 지역사회도 ‘영고라인’에 들어갈 것이다.

내가 대구·경북 지역 주민들을 변호할 때 “지역에서 정치를 계속해야 하니 저런다”고 비꼬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미안하지만 직업정치를 그만둔 내게 내뱉을 말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당파적 색깔이 약한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더 유능했고 사회적으로도 의미있는 일을 더 많이 하는 광경을 자주 보았다. 그들은 상대로부터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먼저 발견해내고 사람의 이념을 개조하기보다 사람의 행동과 상황을 바꾸도록 유도했다. 내가 시도했던 개혁정책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도 자신이 진보입네 개혁입네 떠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저런 분들이었다. 나는 그분들을 위해 알아서, 물러나 있어야 할 사람이다.

사수할 가치도 내세우지 못하는 언필칭 보수파와 ‘말로만 참여민주파’ 사이에서 오갈 권력이동. 지역 주민 입장에서 이만한 ‘영고라인’이 또 없다. 나는 이를 끊어낼 분들이 당파색은 약해 보이지만 정치적으로 유능한 사람들이라고 판단한다. 그들이 기만적 정치구도를 한번 밀어버려야, 비로소 정당정치나 좌파니 우파니 하는 구도도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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