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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05 18:42 수정 : 2017.07.05 20:51

김수민
전 구미시의원·녹색당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18 기념식에서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수록하겠다고 천명했고, 이튿날 여야 5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개헌 논의를 공식화했다. 국회도 내년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 일정을 짜는 태세다. 이미 예정된 선거에 개헌 국민투표를 포갬으로써 비용과 부담을 줄인다는 점은 일견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 방안은 의도야 어떻든 ‘지방 무시’에 가깝다. ‘압권’(壓卷)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시험에서 가장 뛰어난 답안지를 다른 모든 답안지 위에 얹어 놓은 것에서 유래한 단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는 압권이 될 것이다.

1995년 기초의원,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의원, 광역자치단체장 등 네 명을 한꺼번에 선출하는 동시지방선거가 도입되었다. 당시 언론은 ‘시민들이 지지 후보의 기호를 딴 네 가지 숫자를 외우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2002년에는 광역의원 비례대표가, 2006년에는 기초의원 비례대표가 추가되었다. 2010년에는 교육감과 교육의원 선거가 도입되었고, 2014년 교육의원 선거가 없어지면서 동시지방선거에 받아드는 투표지는 일곱 장이 되었다.

이 가운데 기초의원 선거구 상당수가 ‘안 봐도 비디오’가 되었다. 기초의원 선거는 한 선거구에서 2~4인을 선출하고 거대 정당은 복수의 후보를 내는 경향이 강한데, ‘1-가’, ‘2-가’ 같은 기호를 단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매우 유력하다. 기호순번제도뿐 아니라 7장의 투표지도 이런 결과를 강력히 유도한다. 더미로 쌓인 공보물을 두고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정책을 따지기보다는 분야를 망라하고 자신의 지지 정당에 속한 후보들을 지지하는 ‘줄투표’에 익숙해져 있고, 같은 정당의 여러 후보 가운데는 ‘가’번에 쉽게 손이 가는 것이다. 지방자치는 고이고 썩어가는데 투표지 한 장 한 장이 이리 가볍게 날려간다.

개헌 국민투표 용지는 단순히 일곱에 하나를 더하는 수준이 아니라 나머지 일곱 개 투표에 대한 숙지와 숙고를 가로막는 지경으로 나아갈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어떤 개헌안에 합의한다고 해도 몇 가지 쟁점이 남아 있다면, 국민투표에서의 찬반 태도가 지방선거판을 온통 덮어버릴 수도 있다. 국회에서 개헌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각 정당의 방안이 지방선거를 좌지우지할 개연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현행 동시지방선거를 의원 선거와 단체장 선거로 분리하거나, 광역지방선거와 기초지방선거로 나누는 방안부터 시급히 논의해야 할 상황이다(내 개인적으로는 의원 선거와 단체장 선거가 서로에게 중간평가가 되는 전자를 선호한다). 그리고 이것은 임기 조정이 불가피하다. 차기에 어렵다면 차차기부터라도 분리 실시할 수 있도록 논의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정과 쇄신을 놔두고 이뤄지는 개헌은, 그것이 세간의 논의대로 ‘지방분권 개헌’의 성격을 띠더라도 반지방적이다. 아니, 그 ‘지방분권 개헌’은 한 편의 부조리극이다.

정녕 지방선거에 개헌 국민투표안을 같이 처리하겠다면, 조속히 합의하기 매우 난망할 정부형태(대통령제/이원정부제/의원내각제)는 ‘2020년 총선 이전’이라는 단서를 붙여 뒷날로 미루고, 국민과 국회 대다수 사이에서 넓은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사안부터 다루는 것이 내년 6·13 지방선거를 배려하는 길이다.

또한 이 같은 수준의 개헌이라면 꼭 내년 지방선거에 올려야 할 이유도 없다. 선거일과 개헌 일정의 연동은 선거와 국민투표를 낭비라고 여기는 편견만 양산할 우려도 있다. 우리는 선거든 국민투표든 자주 해왔던 것도 아니다. 동시지방선거 도입 이후 전국 규모 선거가 없었던 해가 여덟 해이고, 1988년부터 지금껏 국민투표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지방선거일 개헌’이라는 고집을 버리고, 제1차 개헌 국민투표는 연내나 2018년 초에, 제2차 개헌 국민투표는 2019년 중에 치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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