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신문> 제작국장 1990년대 초 지방자치가 부활할 때 참 말이 많았다. ‘아직은 시기상조다.’ 아무리 고매한 말로 논리를 세워도 ‘촌무지렁이들이 제대로 할 수 있겠나’ 하는 것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서울에 엘리트들이 초집중해 몰려 있으니 지역의 그들에게 작은 권력이라도 나눠주는 게 불안하고 못마땅했을 것이다. 또한 지역 졸부나 동네 양아치 정치인들한테 권력이 주어져 동네가 ‘개차반’되지 않았을까 심히 우려했을 것이다. 그런 걱정도 일부는 맞다.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이럴 거면 차라리 관선 때가 낫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낼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작금의 정치는 서울과 지역의 차이를 논할 때가 아니지 않은가? 조폭과 양아치의 차이일 뿐이지, 우리나라 정치의 바닥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보이지 않는가? 원래 만만한 놈이 더 씹기 쉬운 법이다. 지역의 일이면 한 단계 한 수 아래로 보는 ‘선민사상’이 적어도 일부 서울‘특별시민’한테는, 서울에 있는 지식인 세계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자치는 애매하게 부활됐다. 해방 이후 박정희 독재 전까지 이어졌던 읍면동 자치제가 아닌 한 단계 상향조정된 시군 자치로 시작된 것이다. 이는 읍면동 생활권을 반영치 못하고 읍면동 중심을 흩트려 놓아 근린자치를 오히려 퇴보시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작은 권력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정책적으로 만들지 않고 시작했다. 사실 알아둬야 할 게 하나 있다. 주민들의 자치에 대한 강한 열망은 지방자치가 시작되기 전인 1988년에 각 지역에서 물꼬가 이미 터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에,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은 자치로 조금씩 전이되기 시작했다. 88년 <홍성신문>이 지역신문 최초로 만들어졌고, 89년, 90년 전국에 들불처럼 지역신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는 작은 흐름이 아니었다. 요동치는 거대한 물결이었다. 89년 9월30일 창간한 <옥천신문>도 군민주 방식으로 222명의 주민이 모여서 그렇게 만들었다. ‘자치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지역 언론이다. 지역 언론이 얼마나 건강하게 뿌리내리느냐에 따라 지역의 건강성이 담보되기도 한다. 5만명 내외의 군 단위는 익명성이 희박하다. 연과 연으로 이어져 학연, 혈연, 지연 등이 사실 창궐한다. 그것은 공동체의 응결 정도를 높이나 권력에 줄 세우는 방식으로 자주 활용된다. 이런 판국에 자치권력이란 이것들의 최상의 모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의 어느 교회를 다니느냐, 지역에서 동문이 가장 많은 학교를 나왔느냐는 지방선거에서 표를 많이 확보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된다. 이런 연들은 사실 무섭다. 모든 옳고 그름을 희석시키고 관계의 유무로 판단하니 말이다. 폐쇄적인 공동체성은 그야말로 집단적인 거악으로 변이되기 쉽다. 이런 적폐의 벽돌들을 계속 두드려서 깨주는 것이 바로 건강한 지역 언론의 역할이다. 그래야 공공성이 구현된다.?건강한 지역 언론은 감히 말하건대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이자 ‘보루’이다. 언론이 썩으면 지역이 썩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래서 문화체육관광부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에 의한 사업들은 중요하다. 이 법이 지역에서 지역신문이 건강하게 그나마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책은 사실 ‘시늉내기’였다. 행정안전부와도 연계해 정말 지역신문이 지역의 공론장이 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지역신문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흔히 언론을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하는데 지역 언론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이다.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을 지지한다. 하지만 분권만 가지고는 어림없다. 그 쪼개진 권력을 견제, 비판, 감시할 수 있는 열악한 토양에서 뿌리내리고 살아남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지역언론 정책이 필요하다.
칼럼 |
[지역이 중앙에게] 건강한 ‘풀뿌리 언론’ 없는 분권, 자치는 허상이다 / 황민호 |
<옥천신문> 제작국장 1990년대 초 지방자치가 부활할 때 참 말이 많았다. ‘아직은 시기상조다.’ 아무리 고매한 말로 논리를 세워도 ‘촌무지렁이들이 제대로 할 수 있겠나’ 하는 것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서울에 엘리트들이 초집중해 몰려 있으니 지역의 그들에게 작은 권력이라도 나눠주는 게 불안하고 못마땅했을 것이다. 또한 지역 졸부나 동네 양아치 정치인들한테 권력이 주어져 동네가 ‘개차반’되지 않았을까 심히 우려했을 것이다. 그런 걱정도 일부는 맞다.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이럴 거면 차라리 관선 때가 낫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낼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작금의 정치는 서울과 지역의 차이를 논할 때가 아니지 않은가? 조폭과 양아치의 차이일 뿐이지, 우리나라 정치의 바닥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보이지 않는가? 원래 만만한 놈이 더 씹기 쉬운 법이다. 지역의 일이면 한 단계 한 수 아래로 보는 ‘선민사상’이 적어도 일부 서울‘특별시민’한테는, 서울에 있는 지식인 세계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자치는 애매하게 부활됐다. 해방 이후 박정희 독재 전까지 이어졌던 읍면동 자치제가 아닌 한 단계 상향조정된 시군 자치로 시작된 것이다. 이는 읍면동 생활권을 반영치 못하고 읍면동 중심을 흩트려 놓아 근린자치를 오히려 퇴보시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작은 권력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정책적으로 만들지 않고 시작했다. 사실 알아둬야 할 게 하나 있다. 주민들의 자치에 대한 강한 열망은 지방자치가 시작되기 전인 1988년에 각 지역에서 물꼬가 이미 터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에,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은 자치로 조금씩 전이되기 시작했다. 88년 <홍성신문>이 지역신문 최초로 만들어졌고, 89년, 90년 전국에 들불처럼 지역신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는 작은 흐름이 아니었다. 요동치는 거대한 물결이었다. 89년 9월30일 창간한 <옥천신문>도 군민주 방식으로 222명의 주민이 모여서 그렇게 만들었다. ‘자치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지역 언론이다. 지역 언론이 얼마나 건강하게 뿌리내리느냐에 따라 지역의 건강성이 담보되기도 한다. 5만명 내외의 군 단위는 익명성이 희박하다. 연과 연으로 이어져 학연, 혈연, 지연 등이 사실 창궐한다. 그것은 공동체의 응결 정도를 높이나 권력에 줄 세우는 방식으로 자주 활용된다. 이런 판국에 자치권력이란 이것들의 최상의 모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의 어느 교회를 다니느냐, 지역에서 동문이 가장 많은 학교를 나왔느냐는 지방선거에서 표를 많이 확보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된다. 이런 연들은 사실 무섭다. 모든 옳고 그름을 희석시키고 관계의 유무로 판단하니 말이다. 폐쇄적인 공동체성은 그야말로 집단적인 거악으로 변이되기 쉽다. 이런 적폐의 벽돌들을 계속 두드려서 깨주는 것이 바로 건강한 지역 언론의 역할이다. 그래야 공공성이 구현된다.?건강한 지역 언론은 감히 말하건대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이자 ‘보루’이다. 언론이 썩으면 지역이 썩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래서 문화체육관광부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에 의한 사업들은 중요하다. 이 법이 지역에서 지역신문이 건강하게 그나마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책은 사실 ‘시늉내기’였다. 행정안전부와도 연계해 정말 지역신문이 지역의 공론장이 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지역신문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흔히 언론을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하는데 지역 언론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이다.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을 지지한다. 하지만 분권만 가지고는 어림없다. 그 쪼개진 권력을 견제, 비판, 감시할 수 있는 열악한 토양에서 뿌리내리고 살아남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지역언론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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