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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01 18:37 수정 : 2017.11.01 19:42

박주희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이렇게 대놓고 지적질을 해도 되나 싶지만, 이 글이 실릴 꼭지의 문패가 못내 거슬린다. 오래전부터 <한겨레> 지면에서 ‘중앙’이란 표현은 자취를 감췄다. 각 지역이 어우러져 ‘전국’을 이루는 것이지, ‘중앙’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는 시각을 유지해온 것으로 안다. 그런데 어째서 ‘지역이 중앙에게’란 문패를 붙였는지 궁금하다. 지역 감수성의 퇴행인지, 다른 고민에서 비롯된 것인지 묻고 싶다.

비영리 민간단체 ‘반갑다 친구야!’는 2012년부터 한겨레신문사와 공동으로 해외에 있는 학교에 책가방을 보내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쓰지 않는 유치원·학원 가방 등을 기부받아 책가방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보내는 활동이다. 전국 곳곳에 있는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캠페인이다 보니, 문의 전화가 줄을 잇는다.

“가방 보낼 주소 좀 불러주세요. 무슨 동이죠?” “왜 지부 주소만 나와 있어요?” “지하철 타려고 하는데 어디서 내리면 되나요?”

표현은 다르지만, 이 질문들의 전제는 하나다. ‘이 단체는 당연히 서울에 있다.’

단체 사무실이 대구에 있다고 하면, 놀란 목소리로 되묻는다. “왜요?”보다 적극적으로 조언하는 이들도 있다. “이 일은 지방보다는 서울에서 하시면 더 잘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지방이라고 하면….”(여기서 문장 완성형 문제 하나. 앞 문장에서 말줄임표 부분을 각자 완성해 보시오. 씁쓸한 일이지만, 답을 확인해보지 않더라도 부정적인 표현이 압도적일 것으로 짐작된다.)

다행히 이런 우려를 씻고 캠페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두 해 전 경북 영덕에 따로 창고를 마련했고, 한 해 5000~6000개씩 가방을 보낼 만큼 성장했다. 그럼에도 이런 유의 대화는 무한반복 중이다. 광역시도 아닌 읍 소재지로 가방을 보내는 건 더 불안한지 거듭 확인하는 이들이 많다.

운영 방식을 살펴보면, 전국 어디서든 캠페인을 진행하는 데 물리적으로 불리한 조건은 없다. 홍보는 인터넷 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하고, 택배 서비스를 활용해 수월하게 가방을 기증받고 필요한 곳으로 보낸다. 그런데도 단지 서울 아닌 곳에 있는 단체라는 이유만으로 우선은 못 미더워한다. 서울, 수도권 사람들뿐만 아니라 어디에 살건 마찬가지다. ‘서울 콤플렉스다.’

지난해 경주 지진 때, 대구의 아파트 14층에서 공포에 떨며 황급히 티브이를 틀었다. 딴 세상이었다. 여진을 피해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라디오 주파수를 다급하게 이리저리 맞춰봤지만 하나같이 딴 세상이긴 마찬가지였다. 언제 어떻게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서울에서 비슷한 규모의 지진이 났어도 미디어의 대응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에 분노했다. 지리적 거리를 감안하면 체감하는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지역을 소홀히 해서가 아니라 순발력 부족한 재난보도 역량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객관적인 판단은 마비되고,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피해의식이 확 올라왔다. 또 다른 ‘서울 콤플렉스’다.

이 콤플렉스는 개인의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사회 전체가 시달리고 있는 병폐다. 최신 시사용어로는 적폐다.

정부는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을 목표로 자치분권 실현을 국정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에서 “개헌에서 가장 중요한 게 지방분권 개헌이며 자치와 분권이야말로 국민의 명령이고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진정한 지역분권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탄탄한 법과 제도의 틀을 갖추는 일은 시급하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안의 ‘서울 콤플렉스’를 걷어내지 못하면 제대로 된 자치와 분권은 어렵다. 면밀히 진단하고 차근차근 바로잡아나가야 한다. 그런 뜻에서 이 꼭지 문패도 다시 고민해볼 것을 정중히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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