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신문> 제작국장 오래전에 자치제가 시작됐지만, 아직도 ‘행정’구역이다. ‘지방’이라는 말이 횡행하는 것은 서울의 변방이라는 ‘식민지의 언어’를 현실로 받아들여서다. 제대로 된 분권화가 되지 않았다. 실질적인 자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가 연방제에 준하는 지역자치로 개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내놓은 것을 보면 알맹이가 없다. 생활권과 자치구역을 일치시키려는 대대적인 변화가 한번 일어야 한다. 그렇게 새판을 짜야 한다. 그리고 연방제에 준하는 자치를 하지 말고, 뜸 들이지 말고, 확실히 연방제를 하라. 도시의 욕망이 그득해 지역 농촌인구를 갉아먹는 광역시 체제를 폐지하고 인근 도를 묶어 연방제로 전환하고 그 안에 도농 간, 지역 간 균형발전을 꾀해야 할 것이다. 자치의 무게중심은 생활권역인 읍·면·동으로 한껏 내려야 한다. 그 옛날 잠깐 맛보았던 동학농민혁명 때 집강소처럼 민이 중심이 되고 주인이 되어 생활세계를 운용해야 한다. 그렇게 탄탄하게 모인 힘들이 상향식으로 위로 올라가야 한다. 분권과 자치를 이리도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다양성 때문이다. 정권의 획일적인 정책에 의해 전국이 들썩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나눠진 몫과 그에 응당한 책임으로 다른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지근거리에서 보여준다면 이 나라의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일어날 것이다. 경험은 상상을 증폭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로 작은 커뮤니티가 재구성되면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주체성, 자발성, 적극성으로 삶이 달라지는 경험들은 사람들에게 더이상 대의제의 ‘스타놀이’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나서게 할 것이다. 팬덤 정치가 아니라 우리들의 정치를 원한다. 적어도 옥천의 경험치들은 이런 것이 결코 이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해주었다. 인구 1천명대로 옥천에서도 가장 작은 면인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는 주민이 직접 설계하고 함께 만들어서 10년 넘게 운영해왔다. 주민 40여명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매달 지역의 일을 논의하며 지역기금을 스스로 집행하는 구조다. 금강 하류지역에서 모아 전달된 수계기금의 일부인 주민지원사업비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아 기금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면 지역의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집행하는 사례를 보면서 뿌리 민주주의를 배웠다. 옥천 농민들이 5년을 투쟁해 만든 지역 농정 협치기구인 농업발전위원회를 통해 군 단위 위원회가 어떻게 진정으로 효용성을 가지는가를 배웠다. 들러리, 거수기 위원회가 아닌 절반 이상의 농민위원 확보, 위원회를 열기 전에 민의를 따로 모아 합의된 안으로 위원회에 임하는 자세, 출무수당 자체를 한 통장에 모아 견학 비용으로 쓰는 그런 자세를 통해 참다운 위원회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배웠다. 물론 제도가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지는 못한다. 제도는 제도일 뿐, 그것이 박제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매만지고 고쳐쓰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분권과 자치가 이뤄져야 한다. 에너지, 물, 먹을거리 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스스로 쓰는 에너지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라. 핵발전소가 서울 지근거리에 있다면 그들의 의견은 또 달라질 것이다. 스스로 쓰는 물도 스스로 만들어 쓰게 하라. 굳이 애먼 데 댐을 만들어 상류지역에 피해를 고스란히 주면서 하류지역은 당연한 듯 물을 쓰는 것도 큰 문제다. 수원 다변화가 필요하다. 이제 ‘후진적인’ 중앙집권적 행태에서 벗어나 선진적인 ‘분권과 자치’로 한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지금까지는 낙수효과라 해서 ‘일단 잘되는 놈 키우자’는 말로 현혹해 가장 약한 지역, 약한 사람의 피해와 희생을 담보로 이 나라가 발전해왔다.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인 나라가 아직도 그렇게 유지되는 이유는 불감증과 무감각 때문이다. 스스로 느끼게 해야 한다. 전기와 물과 먹을거리가 당연히 주어지고 나오는 게 아니라 어떤 이들의 피해와 희생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껴야 한다. 그러려면 이제 모든 분야에서 분권과 자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낙수효과에 대항해 이제 지하수처럼 그동안 잠들어 있던 우리들의 목소리를 분출할 때가 되었다.
칼럼 |
[지역이 중앙에게] 행정구역을 자치구역으로 개편하라 / 황민호 |
<옥천신문> 제작국장 오래전에 자치제가 시작됐지만, 아직도 ‘행정’구역이다. ‘지방’이라는 말이 횡행하는 것은 서울의 변방이라는 ‘식민지의 언어’를 현실로 받아들여서다. 제대로 된 분권화가 되지 않았다. 실질적인 자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가 연방제에 준하는 지역자치로 개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내놓은 것을 보면 알맹이가 없다. 생활권과 자치구역을 일치시키려는 대대적인 변화가 한번 일어야 한다. 그렇게 새판을 짜야 한다. 그리고 연방제에 준하는 자치를 하지 말고, 뜸 들이지 말고, 확실히 연방제를 하라. 도시의 욕망이 그득해 지역 농촌인구를 갉아먹는 광역시 체제를 폐지하고 인근 도를 묶어 연방제로 전환하고 그 안에 도농 간, 지역 간 균형발전을 꾀해야 할 것이다. 자치의 무게중심은 생활권역인 읍·면·동으로 한껏 내려야 한다. 그 옛날 잠깐 맛보았던 동학농민혁명 때 집강소처럼 민이 중심이 되고 주인이 되어 생활세계를 운용해야 한다. 그렇게 탄탄하게 모인 힘들이 상향식으로 위로 올라가야 한다. 분권과 자치를 이리도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다양성 때문이다. 정권의 획일적인 정책에 의해 전국이 들썩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나눠진 몫과 그에 응당한 책임으로 다른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지근거리에서 보여준다면 이 나라의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일어날 것이다. 경험은 상상을 증폭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로 작은 커뮤니티가 재구성되면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주체성, 자발성, 적극성으로 삶이 달라지는 경험들은 사람들에게 더이상 대의제의 ‘스타놀이’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나서게 할 것이다. 팬덤 정치가 아니라 우리들의 정치를 원한다. 적어도 옥천의 경험치들은 이런 것이 결코 이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해주었다. 인구 1천명대로 옥천에서도 가장 작은 면인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는 주민이 직접 설계하고 함께 만들어서 10년 넘게 운영해왔다. 주민 40여명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매달 지역의 일을 논의하며 지역기금을 스스로 집행하는 구조다. 금강 하류지역에서 모아 전달된 수계기금의 일부인 주민지원사업비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아 기금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면 지역의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집행하는 사례를 보면서 뿌리 민주주의를 배웠다. 옥천 농민들이 5년을 투쟁해 만든 지역 농정 협치기구인 농업발전위원회를 통해 군 단위 위원회가 어떻게 진정으로 효용성을 가지는가를 배웠다. 들러리, 거수기 위원회가 아닌 절반 이상의 농민위원 확보, 위원회를 열기 전에 민의를 따로 모아 합의된 안으로 위원회에 임하는 자세, 출무수당 자체를 한 통장에 모아 견학 비용으로 쓰는 그런 자세를 통해 참다운 위원회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배웠다. 물론 제도가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지는 못한다. 제도는 제도일 뿐, 그것이 박제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매만지고 고쳐쓰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분권과 자치가 이뤄져야 한다. 에너지, 물, 먹을거리 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스스로 쓰는 에너지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라. 핵발전소가 서울 지근거리에 있다면 그들의 의견은 또 달라질 것이다. 스스로 쓰는 물도 스스로 만들어 쓰게 하라. 굳이 애먼 데 댐을 만들어 상류지역에 피해를 고스란히 주면서 하류지역은 당연한 듯 물을 쓰는 것도 큰 문제다. 수원 다변화가 필요하다. 이제 ‘후진적인’ 중앙집권적 행태에서 벗어나 선진적인 ‘분권과 자치’로 한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지금까지는 낙수효과라 해서 ‘일단 잘되는 놈 키우자’는 말로 현혹해 가장 약한 지역, 약한 사람의 피해와 희생을 담보로 이 나라가 발전해왔다.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인 나라가 아직도 그렇게 유지되는 이유는 불감증과 무감각 때문이다. 스스로 느끼게 해야 한다. 전기와 물과 먹을거리가 당연히 주어지고 나오는 게 아니라 어떤 이들의 피해와 희생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껴야 한다. 그러려면 이제 모든 분야에서 분권과 자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낙수효과에 대항해 이제 지하수처럼 그동안 잠들어 있던 우리들의 목소리를 분출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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