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정신을 차리고 보니 3층 비상계단이었다. 숨 고를 틈도 없이 뛰어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아이가 방과 후 수업을 하고 있는 학교로 달려갔더니 학생과 교사들이 운동장으로 대피했다 교실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지난해 경주 지진 이후 익혀두었던 대피 요령이 도움이 된 모양이다. 아파트 14층에서 지진이라는 걸 알아챈 순간 바닥에 엎드렸다. 진동이 완전히 멈춘 후 아래로 뛰었다. 두려움에 떨며 엎드려 있던 찰나에 긴급 재난 문자가 왔다. 덕분에 진앙지와 지진 규모를 확인한 후 다음 행동을 취할 수 있었다. 전화로 가족과 친구들이 “괜찮냐”고 묻는 말에 두서없이 대답하는 동안 놀란 가슴이 차츰 진정되었다. 뉴스를 확인했다. 진앙지 부근 포항 피해 현장 사진들이 속속 올라왔다. 포항 시민들이 느낀 공포는 100㎞ 떨어진 대구에서 느낀 공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이다. 무너지고 갈라진 현장 사진을 보는 내내 인명피해가 없기를 바랐다. 각자가 경험한 지진과 여진에 대한 불안감, 안전을 기원하는 댓글이 잇따랐다. 이 가운데 보고도 믿기 힘든 댓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선거 때마다 ○○당만 찍더니 꼴 좋다.” “당해봐야 정신 차리지.” 비난하고 조롱하는 말들이다. 차마 옮기고 싶지 않은 저주에 가까운 말들도 눈에 띄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대구·경북과 지역민을 비판하는 기사 댓글이나 여론에는 무뎌진 지 오래다. 오히려 격하게 공감하고 동의할 때도 많다. 이 지역에서 ‘정치적 소수자’로 살면서 겪는 스트레스에 지쳐 냉소를 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다. 오늘까지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 여진으로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이런 말은 폭력이다. 저마다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에 어긋난 선택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 마땅히 해야 한다. 토론하고 통합해 가는 과정이 성숙한 민주 사회를 이끄는 동력이다. 그러나 최근 대구·경북을 향한 비판은 또 다른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나쁜 흐름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억눌린 분노가 그 정권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 대한 혐오로 변형돼 굳어가는 양상이다. 탈핵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에서도 그런 시선은 여실히 드러난다. 국내 핵발전소 절반이 몰려 있는 경북에 사는 다수의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핵 위험을 떠안고 살아간다. 핵발전으로 이익을 챙기는 핵 마피아와 정책결정권자들은 위험으로부터 멀리 있다. 애먼 지역 주민들만 상시적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면서 때로는 “핵발전소를 유치하지 못해 환장하는 대구·경북”으로 싸잡아 손가락질받는다. 사드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평화로운 마을에 사드라는 걸 배치하더니 마을은 싸움터가 되었다. 삶터를 지키려는 주민들은 일부의 무분별한 비판으로 상처받고 있다. ‘지지하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사드니까, 이 지역에 배치하는 건 당연하다’고 몰아세운다. 탈핵과 사드 반대는 모두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지 특정 지역을 위한 외침일 수 없다. 그래서 양심적인 시민들로부터 일상의 안전과 정치적 쏠림을 한데 엮어 비난받을 때 더 아프다. 지난 20일 제빵사 직접고용 문제를 놓고 분쟁 중인 제과업체 파리바게뜨의 일부 제빵사들이 직접고용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대구지역에 근무하는 제빵사들이었다. 관련 기사 댓글 150여건 가운데 30여건이 ‘대구’에 초점을 맞춘 비난으로 채워졌다. “대구일 줄 알았다.” “거기만 독립해라.”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입에 담기 힘든 비유로 조롱한 가해자에게 분노하고, 엄벌하도록 촉구했다. 표현의 자유는 지지하지만, 우리의 양심이 공유하고 있는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을 향한 건강한 정치적 비판이 힘을 얻으려면,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비난부터 걷어내야 한다. 지금 상처 입은 포항은 따뜻한 위로와 연대를 기다린다.
칼럼 |
[지역이 중앙에게] 티케이는 당해도 싸다? / 박주희 |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정신을 차리고 보니 3층 비상계단이었다. 숨 고를 틈도 없이 뛰어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아이가 방과 후 수업을 하고 있는 학교로 달려갔더니 학생과 교사들이 운동장으로 대피했다 교실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지난해 경주 지진 이후 익혀두었던 대피 요령이 도움이 된 모양이다. 아파트 14층에서 지진이라는 걸 알아챈 순간 바닥에 엎드렸다. 진동이 완전히 멈춘 후 아래로 뛰었다. 두려움에 떨며 엎드려 있던 찰나에 긴급 재난 문자가 왔다. 덕분에 진앙지와 지진 규모를 확인한 후 다음 행동을 취할 수 있었다. 전화로 가족과 친구들이 “괜찮냐”고 묻는 말에 두서없이 대답하는 동안 놀란 가슴이 차츰 진정되었다. 뉴스를 확인했다. 진앙지 부근 포항 피해 현장 사진들이 속속 올라왔다. 포항 시민들이 느낀 공포는 100㎞ 떨어진 대구에서 느낀 공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이다. 무너지고 갈라진 현장 사진을 보는 내내 인명피해가 없기를 바랐다. 각자가 경험한 지진과 여진에 대한 불안감, 안전을 기원하는 댓글이 잇따랐다. 이 가운데 보고도 믿기 힘든 댓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선거 때마다 ○○당만 찍더니 꼴 좋다.” “당해봐야 정신 차리지.” 비난하고 조롱하는 말들이다. 차마 옮기고 싶지 않은 저주에 가까운 말들도 눈에 띄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대구·경북과 지역민을 비판하는 기사 댓글이나 여론에는 무뎌진 지 오래다. 오히려 격하게 공감하고 동의할 때도 많다. 이 지역에서 ‘정치적 소수자’로 살면서 겪는 스트레스에 지쳐 냉소를 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다. 오늘까지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 여진으로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이런 말은 폭력이다. 저마다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에 어긋난 선택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 마땅히 해야 한다. 토론하고 통합해 가는 과정이 성숙한 민주 사회를 이끄는 동력이다. 그러나 최근 대구·경북을 향한 비판은 또 다른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나쁜 흐름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억눌린 분노가 그 정권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 대한 혐오로 변형돼 굳어가는 양상이다. 탈핵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에서도 그런 시선은 여실히 드러난다. 국내 핵발전소 절반이 몰려 있는 경북에 사는 다수의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핵 위험을 떠안고 살아간다. 핵발전으로 이익을 챙기는 핵 마피아와 정책결정권자들은 위험으로부터 멀리 있다. 애먼 지역 주민들만 상시적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면서 때로는 “핵발전소를 유치하지 못해 환장하는 대구·경북”으로 싸잡아 손가락질받는다. 사드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평화로운 마을에 사드라는 걸 배치하더니 마을은 싸움터가 되었다. 삶터를 지키려는 주민들은 일부의 무분별한 비판으로 상처받고 있다. ‘지지하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사드니까, 이 지역에 배치하는 건 당연하다’고 몰아세운다. 탈핵과 사드 반대는 모두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지 특정 지역을 위한 외침일 수 없다. 그래서 양심적인 시민들로부터 일상의 안전과 정치적 쏠림을 한데 엮어 비난받을 때 더 아프다. 지난 20일 제빵사 직접고용 문제를 놓고 분쟁 중인 제과업체 파리바게뜨의 일부 제빵사들이 직접고용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대구지역에 근무하는 제빵사들이었다. 관련 기사 댓글 150여건 가운데 30여건이 ‘대구’에 초점을 맞춘 비난으로 채워졌다. “대구일 줄 알았다.” “거기만 독립해라.”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입에 담기 힘든 비유로 조롱한 가해자에게 분노하고, 엄벌하도록 촉구했다. 표현의 자유는 지지하지만, 우리의 양심이 공유하고 있는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을 향한 건강한 정치적 비판이 힘을 얻으려면,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비난부터 걷어내야 한다. 지금 상처 입은 포항은 따뜻한 위로와 연대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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