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단디뉴스> 전 대표 태어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말을 토박이말이라고 한다. 20년여 ‘새로운 우리말 사전 짓기’를 하며 33권의 책을 펴낸 최종규님은 태어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말을 ‘텃말’이라고 한다. 살고 있는 터에서 쓰는 말이니 텃새, 텃밭처럼 ‘텃말’이라고 함이 더 마땅하다는 것이다. 조심스레 이 의견에 손을 들어주며 이 글에서는 토박이말보다는 ‘텃말’로 이름하겠다. 나는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고 100리 밖 이웃한 진주에서 자랐고 줄곧 살았다. 말하자면 ‘갱남 토배기’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쓰는 말은 텃말이 아닌가 보다. 어쩌다가 이웃 동네 할매 할배들과 얘기 나누다 보면, 요기 사는 사람이 아닌갑네, 고향이 어덴데? 서울이가? 이렇게 건네 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제야 부끄러움에, 퍼뜩 아닌데예. 요기 사람 맞심미더, ‘갱상도말’로 답한다. 그렇다고 나의 말하기가 서울 수도권 지역에서 먹히는 것도 아니다. 그쪽 동네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금세 ‘갱상도말’ 티가 나는지 자잘한 웃음을 사는 게 예사이다. 특히 거지, 거울 등 ‘ㅓ’ 발음이나 그것이, 스스로 등 ‘ㅡ’ 발음에서 꼬투리 잡히기가 일쑤이다. 경남에 탯줄을 묻고 50년 넘게 살고 있지만 나는 ‘갱상도말’도 그렇다고 표준말, 서울말도 아닌 말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오래전 ‘국어순화운동’이란 게 있었다. ‘국어를 순수하고 바른 언어로 가꾸는 일’이라고 했다. 처음 국어순화운동이 불붙은 것은 해방 이후 일본어를 쫓아내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48년 ‘우리말 도로 찾기’가 그것이다. 두 번째 국어순화운동이 불붙은 것은 1970년대 중반이었다. 1976년 교육부(당시 문교부)는 ‘국어순화운동협의회’를 구성했고, 학교 현장에서는 외래어나 비속어 사용 금지에서 표준어·표준발음·경어법 사용으로 이어졌다. 이때 정한 표준어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다. 기억하건대, 정체를 알 수 없는 나의 말하기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이 무렵에 시작됐다.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서는 말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고운 말 바른말을 쓰고, 표준어를 사용하라고 했다. 표준어 사용 실천일기를 쓰라 했고 일 년에 두 번 교내 국어순화운동 글짓기대회를 열었다. 우리는 어설프게 서울말인지 표준말인지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골목에서 놀 때는 동네에서 저절로 익힌 ‘갱상도말’을 쓰다가도 수업 시간 표준어를 익힌다며 서울말을 흉내 내며 소리 내어 책을 읽기도 했다. 우리들에게는 서울말이 곧 표준어였던 것이다. 서울말 흉내 내기 놀이가 생겼고 깔깔거리며 ‘서울내기’가 됐다. 그러는 사이 우리들은 태어나 자라며 사는 동네에서 저절로 익힌 ‘텃말’을 잊었고, 수십 년이 지나 ‘텃말’을 고스란히 잃어버렸다. 당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어떤 국어순화 지침이 있었는지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표준어 사용으로 서울말 흉내 내기 같은 억지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1970년대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만 겪었을 법한 일이다. 표준어가 뭔가. 국가권력이 통제 수단으로 권력에 맞춤한 새 질서 재편을 위한 것이지 않은가. 하나의 틀에 많은 사람들의 의식과 생각을 가두어 기계적으로 통일시키겠다는 권력 의지이지 않은가. 40년이 지난 지금도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 표준어인 게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수준인 것 같다. 나는 표준어가 부끄럽다. 국립국어원이 있듯 지역마다 텃말을 캐고 살리고 알리는 ‘텃말연구소’가 있고 국어교과 과정에 텃말을 배우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외국어 배우듯이 경상도 학교에서 전라도말 충청도말 배우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지역마다 ‘텃말 도로 찾기’ 정책이 생겼으면 참 좋겠다. 태어나 저절로 익힌 텃말이 귀하다는 것을 배우고 어느 곳에서나 내 텃말을 자연스레 사용한다면, 텃말에 아래위가 없다면 요샛말로 지역분권, 지방자치에도 한몫할 것 같다. 말이 곧 정치니까. 말이 곧 삶이니까.
칼럼 |
[지역이 중앙에게] 표준어는 ‘서울권력’이다- 나는 왜 ‘텃말’을 버려야 했을까 / 권영란 |
진주 <단디뉴스> 전 대표 태어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말을 토박이말이라고 한다. 20년여 ‘새로운 우리말 사전 짓기’를 하며 33권의 책을 펴낸 최종규님은 태어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말을 ‘텃말’이라고 한다. 살고 있는 터에서 쓰는 말이니 텃새, 텃밭처럼 ‘텃말’이라고 함이 더 마땅하다는 것이다. 조심스레 이 의견에 손을 들어주며 이 글에서는 토박이말보다는 ‘텃말’로 이름하겠다. 나는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고 100리 밖 이웃한 진주에서 자랐고 줄곧 살았다. 말하자면 ‘갱남 토배기’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쓰는 말은 텃말이 아닌가 보다. 어쩌다가 이웃 동네 할매 할배들과 얘기 나누다 보면, 요기 사는 사람이 아닌갑네, 고향이 어덴데? 서울이가? 이렇게 건네 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제야 부끄러움에, 퍼뜩 아닌데예. 요기 사람 맞심미더, ‘갱상도말’로 답한다. 그렇다고 나의 말하기가 서울 수도권 지역에서 먹히는 것도 아니다. 그쪽 동네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금세 ‘갱상도말’ 티가 나는지 자잘한 웃음을 사는 게 예사이다. 특히 거지, 거울 등 ‘ㅓ’ 발음이나 그것이, 스스로 등 ‘ㅡ’ 발음에서 꼬투리 잡히기가 일쑤이다. 경남에 탯줄을 묻고 50년 넘게 살고 있지만 나는 ‘갱상도말’도 그렇다고 표준말, 서울말도 아닌 말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오래전 ‘국어순화운동’이란 게 있었다. ‘국어를 순수하고 바른 언어로 가꾸는 일’이라고 했다. 처음 국어순화운동이 불붙은 것은 해방 이후 일본어를 쫓아내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48년 ‘우리말 도로 찾기’가 그것이다. 두 번째 국어순화운동이 불붙은 것은 1970년대 중반이었다. 1976년 교육부(당시 문교부)는 ‘국어순화운동협의회’를 구성했고, 학교 현장에서는 외래어나 비속어 사용 금지에서 표준어·표준발음·경어법 사용으로 이어졌다. 이때 정한 표준어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다. 기억하건대, 정체를 알 수 없는 나의 말하기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이 무렵에 시작됐다.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서는 말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고운 말 바른말을 쓰고, 표준어를 사용하라고 했다. 표준어 사용 실천일기를 쓰라 했고 일 년에 두 번 교내 국어순화운동 글짓기대회를 열었다. 우리는 어설프게 서울말인지 표준말인지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골목에서 놀 때는 동네에서 저절로 익힌 ‘갱상도말’을 쓰다가도 수업 시간 표준어를 익힌다며 서울말을 흉내 내며 소리 내어 책을 읽기도 했다. 우리들에게는 서울말이 곧 표준어였던 것이다. 서울말 흉내 내기 놀이가 생겼고 깔깔거리며 ‘서울내기’가 됐다. 그러는 사이 우리들은 태어나 자라며 사는 동네에서 저절로 익힌 ‘텃말’을 잊었고, 수십 년이 지나 ‘텃말’을 고스란히 잃어버렸다. 당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어떤 국어순화 지침이 있었는지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표준어 사용으로 서울말 흉내 내기 같은 억지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1970년대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만 겪었을 법한 일이다. 표준어가 뭔가. 국가권력이 통제 수단으로 권력에 맞춤한 새 질서 재편을 위한 것이지 않은가. 하나의 틀에 많은 사람들의 의식과 생각을 가두어 기계적으로 통일시키겠다는 권력 의지이지 않은가. 40년이 지난 지금도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 표준어인 게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수준인 것 같다. 나는 표준어가 부끄럽다. 국립국어원이 있듯 지역마다 텃말을 캐고 살리고 알리는 ‘텃말연구소’가 있고 국어교과 과정에 텃말을 배우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외국어 배우듯이 경상도 학교에서 전라도말 충청도말 배우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지역마다 ‘텃말 도로 찾기’ 정책이 생겼으면 참 좋겠다. 태어나 저절로 익힌 텃말이 귀하다는 것을 배우고 어느 곳에서나 내 텃말을 자연스레 사용한다면, 텃말에 아래위가 없다면 요샛말로 지역분권, 지방자치에도 한몫할 것 같다. 말이 곧 정치니까. 말이 곧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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