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12.27 18:35 수정 : 2017.12.27 19:38

명인(命人)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활동가

어쩌다 겨울에 서울에 갈 일이 생기면 식구마다 잔소리를 해댄다. 옷을 든든하게 챙겨 입으란 잔소리. 한겨울에도 부츠 신을 일이 없는 고흥은 평균 기온이 서울보다 훨씬 높아서 농작물을 심고 거두는 일도, 김장도 꽤 늦는 편이다. 그래서 겨울에 서울에 다니러 갈 때는 일기예보만 보고 겁을 잔뜩 집어먹고 내복도 껴입고 평소 잘 안 입던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까지 칭칭 감고 길을 나선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낭패를 본다. 장시간 거리에 서 있을 일이 없는 이상, 서울은 고흥보다 춥지 않다. 우선 버스터미널에서 지하철로 약속 장소까지 이동하다 보면 땀을 뻘뻘 흘리다가 목도리부터 풀어야 하고 외투가 거추장스러운데 벗어 들 손은 없는 난감한 상태가 된다. 고흥보다 실내에 있는 시간이 길고, 실내 난방온도가 높기 때문이다.

여름엔 그 반대다. 여름 기온 역시 고흥이 더 높아 훨씬 더울 것 같지만 체감온도는 오히려 서울이 훨씬 높은데, 그럼에도 여름에 서울에 갈 땐 반드시 긴팔 옷을 챙겨야 한다. 실내로 들어가면 에어컨 없는 곳이 흔치 않고 지하철만 타도 벌벌 떨게 되니까.

농사를 짓거나 바닷일을 하는 사람들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사시사철 밖에서 일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운 게 그냥 당연한 거다. 게다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하늘의 조화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실내 냉난방도 햇볕과 바람이 들고 나는 데 맞추는 게 자연스럽다. 요즘은 시골에도 보일러든 에어컨이든 빵빵 돌려대는 집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날씨가 예전과 달라지면 시골 사람들의 걱정은 피부로 느끼는 추위와 더위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잡히던 생선이 잡히질 않고, 잘만 자라주던 작물이 자라지 않는 건 농어촌 사람들에게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다.

그런데 핵발전소도 화력발전소도 무슨 무슨 발전소도 꼭 시골에 짓는단다. 내가 살고 있는 고흥만 해도 두번이나 핵발전소 건설을 막아내고 나니 다음은 화력발전소 건설을 막아야 했다. 핵의 위험이니 환경문제니 아무리 떠들어봤자 이곳 사람들에게 발전소는 하루아침에 느닷없이 일터와 삶터를 빼앗기는, 역시나 먹고사는 문제다.

몇년에 걸쳐 간신히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 건설을 막고 나니 이제는 폐기물발전소, 대규모 태양광발전소, 대규모 풍력발전소를 짓겠다고 난리다. 친환경 재생에너지라는 미명하에 대규모로 발전소를 짓겠다는 건, 산을 깎고 농지를 밀어버리고 바다를 못 쓰게 만들겠다는 짓이다. 허구한 날 발전소를 짓겠다는 건설 자본과 싸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악을 쓰고 싶어진다. “발전소란 발전소는 죄다 서울에 지어라아아아!” 자기가 생산하는 전력의 59배를 소비하는 서울을 위해 왜 누군가는 농사지을 터전을 잃고, 누군가는 고기 잡고 살던 바다를 잃어야 하냔 말이다.

그러나 한편 서울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따뜻하고 시원하게 살기만 할까. 집에서도 떨며 겨울을 나는 사람은 왜 없을 것이며,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마저 못 돌리고 여름을 나는 사람들은 또 왜 없을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땡볕이거나 강풍에도 밖으로 돌아치며 일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뿐 아니다. 단지 일터로 돌아가겠다고 몇년째 거리에 천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은 또 얼마며, 심지어 굴뚝이든 송전탑이든 허공에 매달려 겨울과 여름을 나는 사람들은 또 얼마인가. 게다가 전기요금 좀 아껴보겠다고 집에서는 저마다 동동거려도 가정용 전기보다 훨씬 싼 산업용 전기는 펑펑 돌아가고, 서울의 야경을 찬란하게 하는 건 언제나 오밤중까지 야근하는 노동자들이다.

그러니 어찌할 것인가? 싸워도 싸워도 끝나지 않을 싸움이라는 듯, ‘○○발전소 결사반대’ 현수막은 오늘도 고흥 하늘 곳곳에 펄럭인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지역에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