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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05 18:03 수정 : 2018.02.05 18:58

황민호
<옥천신문> 편집국장

사람이 없다. 면 소재지 마을은 이장 경선을 치를 정도로 치열한데, 웬만한 시골마을은 이장 할 사람이 없다. 18년~20년 장기집권이 수도 없이 나온다.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 이장도 한줌 권력이라고 오래 하다 보면 염증이 안 생길 수 없다. 시군에서 이장 활동비로 수십만원을 지급하고, 공무원의 일을 대행해주면서 쌓인 긴밀한 관계는 그것을 더 악화시킨다.

이장의 역할은 애매한 구석이 있다. 마을 주민들이 선출하는 자치권력이자, 행정에서 임명하는 선임권력의 교집합 사이에 있어서다. 실제 어떤 이장은 주민에 의해 선출됐으면서도 아직 읍면에서 임명장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장’이 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행정에 예속된 징후가 보인다. 연말연초만 되면 숱한 마을들이 이장 선거로 몸살을 앓는다. 이장 할 사람이 없는 마을은 없는 대로, 할 사람이 많은 마을은 많은 대로. 다 그렇지는 않지만, 할 사람이 없는 마을은 늘 ‘해먹던’ 사람이 ‘해먹으면서’ 장기독재의 기운이 감지된다.

초고령화되어 노인들만 있는 마을에 ‘망나니’나 ‘양아치’ 같은 이장이 당선되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행정정보를 차단하고, 모든 권익을 독식하며, 전횡을 휘두른다. 사실 ‘이끼’ 같은 마을은 영화 속만이 아니라 자세히 살펴보면 도처에 있다. 이장 하겠다는 사람 말릴 수도 없고, 일단 뽑으면 행정기관은 임명하지 않을 수 없으며, 마을 경계를 넘어 말하는 것은 읍면 지역사회에서 불문율처럼 금기시된다. 그러다 사달이 나면 마을은 황폐해진다. 형사사건이 되고 관계는 심하게 어그러져 복구되려면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각종 지원사업이 많은 마을일수록 그런 갈등은 심하다.

이장 할 사람이 많은 면 소재지 마을은 그대로 갈등과 내홍이 심하다. 군의원, 군수 선거 못지않다. 이미 국민권익위는 2008년 마을에서 걷는 이장 수고비 관행의 폐지를 권고했지만, 여전히 이장 수곡이 존재한다. 곡식이 아닌 돈으로 걷는 이장 수고비는 면 소재지 마을처럼 가구 수가 많은 데는 모이는 금액이 솔찮다. 각종 마을 지원사업, 하다못해 장학금 추천, 어려운 이웃 돕기 추천 등 이장 손을 거치는 것이 참으로 많아 한번 잘못 뽑으면 마을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부패한다.

보통 면 소재지 이장이 면 이장협의회장을 하고, 면 이장협의회장을 하면 군의원이나 농협 조합장도 넘볼 수 있는 자칭 ‘급’이 된다. 읍면장, 군수, 군의원을 독대하는 일이 많아지며 더 긴밀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상당한 이권이 있어서 선거에서 패가 갈라져서 팽팽할수록 그 휴유증이 깊고 넓다. 사실 대통령을 잘못 뽑아도 큰 고통이지만, 생활 속에서는 마을 이장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어떤 마을은 귀농인과 토박이들의 갈등이 두드러진다. 마을땅, 마을산 등 마을 재산이 있다 보니 마을회에 가입하려면 돈을 내라고 강권하기도 한다. 300만원 이상 내야 마을회 가입이 되고, 마을회에 가입이 돼야 이장 투표권이 있다는 이상한 마을도 보아왔다. 돈을 내야 투표권을 준다니, 마을은 소왕국이 되어 때로는 나라에서 정한 헌법도 간단히 벗어난다.

여기서 행정의 역할은 중요하다. 행정은 마을 갈등에 괜히 끼어봐야 본전도 못 찾을 거라고 생각해 대부분 방임한다. 방임의 이유도 그럴듯하다. 마을 자치를 함부로 침범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마을 갈등이 방임되면 상처는 깊어진다. 걸어서 3분도 채 안 되는 거리의 이웃끼리 법원의 내용증명이 수시로 오가고, 경찰서 고소고발이 난무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사실 이 나라 마을 민주주의는 엉망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로 고상한 말은 붙여놓았지만, 사실상 뿌리째 썩고 있다. 한 사람을 한 사람이라 인정치 않고, 가구별로 투표하는 마을이 여전히 즐비하다. ‘자치’라고 손 놓고 방임하기엔 상당히 곪아 있다. 어떤 식으로든 공론의 장으로 불러들여 개선책을 절실하게 논의해야 한다. 촛불은 광장에 나와 한철일 수 있지만, 방 안 형광등 불이나, 밥 짓는 불이나, 보일러 불은 생활에 늘 필요한 법이다. 뿌린 만큼 거두고, 뿌리내린 만큼 자란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썩으면 이 나라 민주주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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