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단디뉴스> 전 대표 기막힐 노릇이었다. 설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냈고, 밤늦게는 제사를 지냈다. 그것도 두서너 집이 아니었다. 경남 산청군과 함양군 경계에 있는 금서면 가현·방곡마을, 휴천면 동강 점촌, 유림면 서주마을 집집의 사정이 그러했다. 1951년 2월 설을 쇤 뒤 67년째다. “설은 무신. 내한테는 엄니랑 동상들 제삿날인디.” 경남 산청군 금서면 방곡마을. 노인의 탄식은 “요 동네가 설 명절 한날한시가 제삿날이구만”으로 이어졌다. 네 마을은 산청·함양 민간인 학살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1951년 2월7일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가 ‘견벽청야’라는 작전 아래 지리산 주변지역 민간인을 학살했다. 하필이면 설 뒷날이었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 모였던 친인척들이 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명절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지도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산을 넘어온 국군은 금서면 골짜기 끝인 가현마을 123명, 방곡 212명, 점촌 60명 등 차례차례로 주민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다시 엄천강을 건너 이날 오후 4시30분께 서주마을에 도착, 310명을 학살했다. 명절이라 모였던 온 가족이 몰살을 당했고, 아버지, 어머니, 형이거나 동생, 아들딸이 죽어갔다. 산청·함양 유족회에 따르면 이날 네 마을 희생자가 705명에 이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딱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이었다. 겹겹으로 쌓인 시신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이도 있었지만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이들은 산골에서 살다가 큰일 나겠다 싶어 서울, 부산 등 도시로 떠났거나 세월이 흘러도 한을 풀지 못한 채 병사했다. 더 이상 제를 지내줄 유족조차 없는 이들이 많았다. 다행히 추모공원이 세워졌고, 지금은 해마다 11월이면 합동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더러는 설날 자시가 되면 어느 집에선가는 따로 제를 지내기도 하고 향을 피워두기도 한다. 이들에겐 설이 더 이상 명절이 아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전쟁 전후 국가 공권력이 저지른 폭력은 너무나 참담하다. 노근리 사건이 그렇고 제주 4·3 사건이 그렇다. 가까이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곳곳이다. 언급한 네 마을 외에도 진주시 명석면, 산청군 시천면·삼장면, 거창군 신원면… 지리산 주변 경남 서부지역에서 밝혀진 학살 현장들이다.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학살 암매장 터는 2차 발굴을 마친 상태지만 안치소가 따로 없어 유골을 컨테이너에 안치해두고 있다. 이곳에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서 발굴된 유골도 안치돼 있다.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학살 암매장 터는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가 1차 발굴을 했지만 10년째 미발굴 상태로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공약에서 과거사 정리 기본법 정비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명백히,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폭력과 범죄였다. 지난 시절 노무현 정부가 과거사 진실규명 작업을 시작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해체되고 규명 작업은 중단됐다. 과거사의 진실규명과 책임도 국가의 몫이다. 바로 지금이, 문 정부가 의지를 내고 서둘러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현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및 보상 관련 법안이 수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 중에는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진실화해위 활동에 유족의 참여를 보장하는 내용도 있다. 하루빨리 이들 법안이 통과되기를 바란다.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꾸려져, 채 발굴을 끝내지 못한 산청 외공리 등 전국 곳곳의 암매장 터 발굴이 재개되고, 또 이미 발굴된 희생자 유골이 편히 잠들 수 있는 안치소가 마련되길 바란다. 또한 아직 이뤄지지 못한 진실규명과 배상·보상도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내 죽기 전에 우리 아배 좀 찾아주이소.” 오늘도 유족들의 한은 깊고, 한국전쟁이 남긴 변방의 역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산청·함양추모공원 구석,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합동묘소 옆에는 간절한 바람처럼 봄까치꽃이 피고 있더라.
칼럼 |
[지역이 중앙에게] ‘설날이 제삿날’, 국가 때문에 / 권영란 |
진주 <단디뉴스> 전 대표 기막힐 노릇이었다. 설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냈고, 밤늦게는 제사를 지냈다. 그것도 두서너 집이 아니었다. 경남 산청군과 함양군 경계에 있는 금서면 가현·방곡마을, 휴천면 동강 점촌, 유림면 서주마을 집집의 사정이 그러했다. 1951년 2월 설을 쇤 뒤 67년째다. “설은 무신. 내한테는 엄니랑 동상들 제삿날인디.” 경남 산청군 금서면 방곡마을. 노인의 탄식은 “요 동네가 설 명절 한날한시가 제삿날이구만”으로 이어졌다. 네 마을은 산청·함양 민간인 학살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1951년 2월7일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가 ‘견벽청야’라는 작전 아래 지리산 주변지역 민간인을 학살했다. 하필이면 설 뒷날이었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 모였던 친인척들이 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명절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지도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산을 넘어온 국군은 금서면 골짜기 끝인 가현마을 123명, 방곡 212명, 점촌 60명 등 차례차례로 주민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다시 엄천강을 건너 이날 오후 4시30분께 서주마을에 도착, 310명을 학살했다. 명절이라 모였던 온 가족이 몰살을 당했고, 아버지, 어머니, 형이거나 동생, 아들딸이 죽어갔다. 산청·함양 유족회에 따르면 이날 네 마을 희생자가 705명에 이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딱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이었다. 겹겹으로 쌓인 시신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이도 있었지만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이들은 산골에서 살다가 큰일 나겠다 싶어 서울, 부산 등 도시로 떠났거나 세월이 흘러도 한을 풀지 못한 채 병사했다. 더 이상 제를 지내줄 유족조차 없는 이들이 많았다. 다행히 추모공원이 세워졌고, 지금은 해마다 11월이면 합동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더러는 설날 자시가 되면 어느 집에선가는 따로 제를 지내기도 하고 향을 피워두기도 한다. 이들에겐 설이 더 이상 명절이 아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전쟁 전후 국가 공권력이 저지른 폭력은 너무나 참담하다. 노근리 사건이 그렇고 제주 4·3 사건이 그렇다. 가까이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곳곳이다. 언급한 네 마을 외에도 진주시 명석면, 산청군 시천면·삼장면, 거창군 신원면… 지리산 주변 경남 서부지역에서 밝혀진 학살 현장들이다.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학살 암매장 터는 2차 발굴을 마친 상태지만 안치소가 따로 없어 유골을 컨테이너에 안치해두고 있다. 이곳에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서 발굴된 유골도 안치돼 있다.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학살 암매장 터는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가 1차 발굴을 했지만 10년째 미발굴 상태로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공약에서 과거사 정리 기본법 정비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명백히,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폭력과 범죄였다. 지난 시절 노무현 정부가 과거사 진실규명 작업을 시작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해체되고 규명 작업은 중단됐다. 과거사의 진실규명과 책임도 국가의 몫이다. 바로 지금이, 문 정부가 의지를 내고 서둘러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현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및 보상 관련 법안이 수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 중에는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진실화해위 활동에 유족의 참여를 보장하는 내용도 있다. 하루빨리 이들 법안이 통과되기를 바란다.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꾸려져, 채 발굴을 끝내지 못한 산청 외공리 등 전국 곳곳의 암매장 터 발굴이 재개되고, 또 이미 발굴된 희생자 유골이 편히 잠들 수 있는 안치소가 마련되길 바란다. 또한 아직 이뤄지지 못한 진실규명과 배상·보상도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내 죽기 전에 우리 아배 좀 찾아주이소.” 오늘도 유족들의 한은 깊고, 한국전쟁이 남긴 변방의 역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산청·함양추모공원 구석,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합동묘소 옆에는 간절한 바람처럼 봄까치꽃이 피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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