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런 소식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을 허하게 만든다. 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향토극장인 만경관이 다음달 말 문을 닫는단다. 만경관은 일제강점기였던 1922년 대구에서 처음으로 조선인 자본으로 세운 극장이다. 영남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으로, 개관 100주년을 4년 앞두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백년의 감동, 일등 극장’이라는 광고는 끝내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고, 짐작대로 그 자리에는 영화관 체인이 들어선다. 2000년대 들어 대기업 계열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체인이 지역 영화관들을 잇따라 인수하고, 거점마다 새 영화관을 열면서 만경관은 관객이 줄어 어려움을 겪어 왔다. 경영상 위기 때마다 대형 영화관 체인에 팔거나 문을 닫는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때마다 시대 흐름에 맞춰 새 단장을 하는 등 안간힘을 쓰며 오늘까지 버텨 왔다. 그러는 사이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한일극장, 아카데미극장 등 대구의 대표적인 향토극장들은 모두 간판을 내렸다. 만경관 폐관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이 극장에 얽힌 저마다의 추억을 꺼내며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컬러티브이조차 없던 1970년대 ‘문화교실’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단체 영화관람을 했던 중년들은 그 시절 영화 제목을 줄줄이 꿰면서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극장 앞 손수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오징어 굽는 냄새는 고소한 팝콘 냄새와는 결이 다른 추억이다. 보다 세련된 영화관이 그 자리에 새로 문을 연다는 것이 추억을 간직한 그 공간을 아쉬워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는 이유다. 지역에서 이런 공간들이 세월의 흐름에 밀려날 때, 때로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공간을 살려내기도 했다. 1946년 대구에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 클래식 음악감상실 ‘녹향’이 대표적이다. 60년도 더 된 음악감상실에 2000년대 들어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지만, 이제는 고인이 된 아흔의 주인장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그러다 공간 임대료조차 내지 못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지역 음악인들이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음악회를 열기 시작하면서 공간을 지켜냈다. 지금은 대구 중구가 운영하는 문화관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녹향은 살려냈지만, 음악감상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대규모 자본이 움직이는 대형 영화관을 시민들 의지만으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그래서 다들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아쉬워할 뿐이다. 지난여름 3대 멀티플렉스 체인들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상영을 거부했다. 스트리밍 서비스와 동시에 극장에서 상영한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만경관을 비롯한 전국의 옛 극장들이 당당하게 상영을 결정하면서 반짝 관심을 끌기도 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옛 극장을 찾아가 영화를 본 관객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2016년 현재 전국 영화관 417곳 가운데 90%가 이른바 ‘빅3’ 계열 영화관이라고 하니, 만경관이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좌석 점유율 20~30%로 더 이상 꾸려가기를 바라는 건 지나치게 감상적인 욕심이다. 수도권과 지역의 문화 인프라는 비교하기가 민망할 만큼 여전히 수준차가 심하다. 그러나 적어도 도시지역의 영화관 인프라만큼은 전국 평준화를 이룬 듯하다. 어느 동네에 살든 접근성 좋은 곳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대기업 계열의 영화관들이 문을 활짝 열어두고 반기니 말이다. 그나마 문화생활을 누리기 힘든 척박한 곳에 상업영화만이라도 수도권 사람들처럼 즐길 수 있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일제강점기부터 대구 사람들이 갖가지 공연과 영화를 보며 추억을 쌓았고, 한국전쟁 때 피난민 수용소, 이후에는 미 군정 신탁통치에 반대해 ‘여자국민당경북지부’가 결성된 그 역사적인 공간이 96년의 여정을 끝내고 간판을 내린다. 자본의 치열한 경쟁 논리로 보자면, 당연한 수순이지만 아쉬운 마음까지 논리적으로 정리가 되지는 않는다. 이 봄이 가면, 더는 들어가 앉아볼 수 없는 향토극장 만경관에서 영화 한 편 봐야겠다.
칼럼 |
[지역이 중앙에게] 만경관 너마저 / 박주희 |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런 소식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을 허하게 만든다. 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향토극장인 만경관이 다음달 말 문을 닫는단다. 만경관은 일제강점기였던 1922년 대구에서 처음으로 조선인 자본으로 세운 극장이다. 영남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으로, 개관 100주년을 4년 앞두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백년의 감동, 일등 극장’이라는 광고는 끝내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고, 짐작대로 그 자리에는 영화관 체인이 들어선다. 2000년대 들어 대기업 계열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체인이 지역 영화관들을 잇따라 인수하고, 거점마다 새 영화관을 열면서 만경관은 관객이 줄어 어려움을 겪어 왔다. 경영상 위기 때마다 대형 영화관 체인에 팔거나 문을 닫는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때마다 시대 흐름에 맞춰 새 단장을 하는 등 안간힘을 쓰며 오늘까지 버텨 왔다. 그러는 사이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한일극장, 아카데미극장 등 대구의 대표적인 향토극장들은 모두 간판을 내렸다. 만경관 폐관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이 극장에 얽힌 저마다의 추억을 꺼내며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컬러티브이조차 없던 1970년대 ‘문화교실’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단체 영화관람을 했던 중년들은 그 시절 영화 제목을 줄줄이 꿰면서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극장 앞 손수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오징어 굽는 냄새는 고소한 팝콘 냄새와는 결이 다른 추억이다. 보다 세련된 영화관이 그 자리에 새로 문을 연다는 것이 추억을 간직한 그 공간을 아쉬워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는 이유다. 지역에서 이런 공간들이 세월의 흐름에 밀려날 때, 때로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공간을 살려내기도 했다. 1946년 대구에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 클래식 음악감상실 ‘녹향’이 대표적이다. 60년도 더 된 음악감상실에 2000년대 들어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지만, 이제는 고인이 된 아흔의 주인장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그러다 공간 임대료조차 내지 못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지역 음악인들이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음악회를 열기 시작하면서 공간을 지켜냈다. 지금은 대구 중구가 운영하는 문화관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녹향은 살려냈지만, 음악감상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대규모 자본이 움직이는 대형 영화관을 시민들 의지만으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그래서 다들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아쉬워할 뿐이다. 지난여름 3대 멀티플렉스 체인들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상영을 거부했다. 스트리밍 서비스와 동시에 극장에서 상영한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만경관을 비롯한 전국의 옛 극장들이 당당하게 상영을 결정하면서 반짝 관심을 끌기도 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옛 극장을 찾아가 영화를 본 관객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2016년 현재 전국 영화관 417곳 가운데 90%가 이른바 ‘빅3’ 계열 영화관이라고 하니, 만경관이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좌석 점유율 20~30%로 더 이상 꾸려가기를 바라는 건 지나치게 감상적인 욕심이다. 수도권과 지역의 문화 인프라는 비교하기가 민망할 만큼 여전히 수준차가 심하다. 그러나 적어도 도시지역의 영화관 인프라만큼은 전국 평준화를 이룬 듯하다. 어느 동네에 살든 접근성 좋은 곳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대기업 계열의 영화관들이 문을 활짝 열어두고 반기니 말이다. 그나마 문화생활을 누리기 힘든 척박한 곳에 상업영화만이라도 수도권 사람들처럼 즐길 수 있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일제강점기부터 대구 사람들이 갖가지 공연과 영화를 보며 추억을 쌓았고, 한국전쟁 때 피난민 수용소, 이후에는 미 군정 신탁통치에 반대해 ‘여자국민당경북지부’가 결성된 그 역사적인 공간이 96년의 여정을 끝내고 간판을 내린다. 자본의 치열한 경쟁 논리로 보자면, 당연한 수순이지만 아쉬운 마음까지 논리적으로 정리가 되지는 않는다. 이 봄이 가면, 더는 들어가 앉아볼 수 없는 향토극장 만경관에서 영화 한 편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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