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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19 18:00 수정 : 2018.03.19 19:10

명인(命人)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활동가

도시에 살 땐 ‘민들레처럼’이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 박노해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다. 민들레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민들레를 상상하며 노래를 부를까?

시골에서도 아주 흔하지는 않은 토종 흰민들레가 있다. 그 뿌리는 약성이 강하여 캐서 먹기도 하고 달이면 커피 맛이 난다. 시골에서도 흔하지 않다는 건, 잘 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토종 흰민들레는 토종 민들레 씨앗이 날아오기를 기다려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처녀임신을 해버린단다. 그런 경우 흩날리는 꽃가루는 마치 무정란과 같은 셈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일편단심 민들레’라고 할 때는 바로 이 녀석을 말하는 것.

반면 종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 씨를 맺기 때문에 거의 다 발아하여 널리 퍼지는 민들레는 귀화식물이 된 외래종이다. 시골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웃 어르신이 우리 텃밭 민들레를 발로 짓뭉개며 “서울 사람들은 이걸로 노랠 만들어 부르고 그런담서? 우린 아주 이거 미워 죽겄는디” 하실 때, 나는 당혹감에 쩔쩔매며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뽑아도 뽑아도 퍼져서, 풀이라면 지긋지긋한 농민들에게 미움받는 건 외래종 민들레다. 그렇다면 노래 속의 ‘거침없이 피어나는’ 민들레는 바로 이 외래종을 말하는 거겠지.

이제는 나도 밭에서 김을 매다가 흰민들레를 발견하면 잘 키울 수 있게 옮겨 심을 생각부터 하지만 외래종 민들레는 호미로 뿌리까지 박박 긁어 죽이곤 한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민들레처럼’이라는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다. 도시 사람들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감수성은 이렇게나 다르더라.

자연친화적인 삶이라 하면 사람들은 무엇부터 떠올릴까? 꽃? 나무? 푸른 들판? 싱싱한 먹거리?

시골에서 살아보니 자연친화적인 삶이란 내 손으로 직접 무수한 생명을 죽이는 일이더라. 작물을 심은 밭에서 온갖 풀을 뽑아 죽이고, 쐐기며 지네며 이름도 모를 온갖 벌레들을 시시때때로 죽이고, 때로는 쥐덫을 놓아 쥐를 죽인다. 닭이나 돼지를 키우는 선배들이 걔들을 키울 때 쏟는 정성과 애착을 보면 저걸 어떻게 잡아먹나 싶은데 선배들은 식구처럼 돌보던 동물을 손수 잡아 나눠도 주신다. 첨엔 그게 참 의아했는데 동물을 키울 때도 남을 먹이는 일이니 정성을 다하고, 그것을 잡을 때도 누군가를 먹이는 일이니 정성을 다한다 하신다.

나는 도시에서 자랐고 개나 고양이 한 번 키워본 적이 없다. 내가 가까이 접해본 사람 외 생명체라고는 기껏해야 파리나 모기였단 얘기다. 그랬던 나는 시골에 와서 수시로 동식물을 대하는 일이 여전히 혼란스럽다.

한편, ‘생명’ 운운하며 도시에서 온 티를 벗지 못한 사람들은 텃밭에 작물을 심어놓고 차마 다른 풀을 뽑지 못해 결국 풀밭을 만들어놓는다. 나도 첨엔 그랬다. 참깨씨를 흩어 뿌렸는데 싹이 나자 참깨 포기를 솎아줘야 한단다. 기껏 자라라고 씨를 뿌려놓고 어떤 건 뽑아 죽이고 어떤 건 살려두자니 솎아내는 포기를 고르기가 영 껄끄러운 거다. 하지만 자기가 심은 작물이 남의 밭작물에 비해 형편없이 자라는 걸 보면, 남의 집 제초제를 훔쳐다라도 뿌리고 싶은 심정이 들고서야 농사꾼이란 이런 건가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도시에서의 삶이란 내 손으론 아무것도 죽이지 않아도 되는 삶. 누가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잡았는지 몰라도 깔끔하게 손질되어 포장된 고기, 어떤 벌레들을 어떻게 죽였기에 그런지는 몰라도 흠집 하나 없는 싱싱한 채소…. 느닷없이 어느 날 300만 마리의 돼지들이 살처분이 되거나 말거나, 내 집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만 깨끗하고 안전하면 되는 삶.

예전엔 먹고 먹‘히’는 게 자연의 질서인 줄만 알고 살았다. 사람 사는 세상도 그렇다고 온통 떠들어댄다. 그러나 이제 생각한다. 무엇이 누구의 손을 거쳐 나를 먹이며, 나는 어떻게 남을 먹이고 살 것인가? 먹는 일엔 겸허를, 먹이는 일엔 정성을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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