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활동가 과연 봄이다. 남들은 피고 지는 꽃들로 봄을 아는 모양이지만 시골에 온 후 나에게 봄은, 심지도 가꾸지도 않았건만 넘쳐나는 먹거리들로 안다. 산취나물, 냉이, 쑥, 고사리, 엉겅퀴, 방가지똥, 별꽃나물, 두릅, 엄나무 순, 비비추, 세발나물….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갖가지 나물을 거저 얻어 묵나물을 만들어두고 일 년 먹을 먹거리를 장만하는 철. 우리 밭이 생기고 나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밭에만 가도 절로 나는 것이 많아 참 좋았다. 밭이 생긴 첫해, 밭에 갔더니 냉이가 막 올라오기 시작했더라. 더 자라길 기다려 캐려고 아껴두었는데 며칠 후 밭에 가니 냉이가 한 포기도 없다. 아니,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동네 할머니들이 홀랑 다 캐 가셨다고. 냉이만도 아니다. 내가 밭에 가지 못하는 사이, 쑥도 달래도 다 없어졌다. 부아가 났다. 아니, 어떻게 남의 밭에 들어와 주인 허락도 없이 홀랑 다 캐 간단 말인가? 아직, 시골 어르신들의 ‘상식’을 들어본 적도 없을 때였다. 나중에 지인들에게 투덜거리다 알게 된 것이지만, 시골 어르신들의 상식이란 이렇다. 사람이 직접 심고 가꾸지 않은 것은 어느 땅에서 나든 주인이 따로 없는 것. 어쩐지, 그래서 우리 밭에도 두릅이며 참나물이며 우리 부부가 심어 가꾼 것은 그대로였구나. 그렇지만 아까워 죽겠더라. 엄연히 내 땅에서 난 것들인데. 그러다 고흥에 와서 근 2년을, 땅을 사려고 틈만 나면 돌아다니던 때가 떠올랐다. 2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던 일. 맘에 드는 터는 몽땅 죽은 사람들이 차지하거나 외지인들 소유더라니. 소문으로 개발 기대가 있는 곳은 턱없이 비쌌고, 호가만 높고 거래가 안 되는 땅들도 너무 많았다. 투기를 목적으로 땅을 사는 도시 사람들에게 시골의 땅값은 시쳇말로 껌값이라 평당 몇천원 차이가 별것 아니겠지만, 그런 사람들 탓에 주변 땅의 시세는 높아지고 마을 인심은 사나워진다. 와서 살 생각도 없는 외지인들이 땅을 차지만 하고 방치해두는 탓에 땅을 보러 가는 마을마다 점점 흉가가 늘어난다. 그런 사람들 덕분에(?) 지금, 여기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고자 온 사람들은 빈집이 아무리 많아도 작은 집 한 채, 작은 땅 한 뼘을 갖기가 참 어렵더라니. 그 생각에 이르니 시골엔 아직도 아무도 가질 수 없는 땅이 있단 생각도 난다. 점유는 해도 소유는 할 수 없는 땅, 근처 바닷가 마을 사람이 아니면 점유조차 할 수 없는 땅. 바지락 같은 어패류를 주는 갯벌 얘기다. 어쨌거나 우리 가족은 이제 작은 집터를 사서 손수 집을 짓고 있다. 우리 땅이어도 이웃집에서 모를 키우는 하우스에 해를 가릴까봐 멀리 축대를 쌓고 마당이 좁아져 아쉬웠는데, 하우스 주인인 형님은 집터로 차가 쉽게 올라가도록 길을 양보했고 당신 땅의 황토를 넉넉히 내주셔서 우리는 공짜 흙으로 집을 짓는다. 바닷가 마을이 아니니 우리 갯벌은 없지만, 철마다 바닷가에 사는 이웃을 따라다니며 바지락이며 온갖 해물도 넉넉히 얻어먹고 산다. 우리가 고흥에 온 첫해라서 농사가 전혀 없던 때, 가을에 수확을 했다고 집주인 어르신이 쌀 한 가마니를 주셨던 생각도 난다. 쌀 한 가마니를 선물받은 기분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쌀값만큼의 돈 봉투를 받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분이랄까. 쌀 한 가마니의 무게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이제 얼마나 될까? 어쩌면 우리 부부는 그 마지막 세대일지도. 한편 여전히 땅이라면 살거나 농사짓는 곳인 줄만 아는 사람들은 자기 땅 한 뼘을 갖지 못하고, 시골에 사는 덕에 땅뙈기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발전소에 송전탑에 혹은 그 무엇에 조상 대대로 살고 있던 땅을 아주 쉽게 빼앗기기도 한다. 사적 소유가 종교인 시대에도 말이다. 도무지 뭐가 뭔지 헷갈리는 세상에서 나는 자꾸만 궁금해진다. 우리는 무엇을 소유할 수 있고, 무엇을 소유해서는 안 되는 걸까?
칼럼 |
[지역이 중앙에게] 소유할 수 없는 것들 / 명인(命人) |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활동가 과연 봄이다. 남들은 피고 지는 꽃들로 봄을 아는 모양이지만 시골에 온 후 나에게 봄은, 심지도 가꾸지도 않았건만 넘쳐나는 먹거리들로 안다. 산취나물, 냉이, 쑥, 고사리, 엉겅퀴, 방가지똥, 별꽃나물, 두릅, 엄나무 순, 비비추, 세발나물….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갖가지 나물을 거저 얻어 묵나물을 만들어두고 일 년 먹을 먹거리를 장만하는 철. 우리 밭이 생기고 나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밭에만 가도 절로 나는 것이 많아 참 좋았다. 밭이 생긴 첫해, 밭에 갔더니 냉이가 막 올라오기 시작했더라. 더 자라길 기다려 캐려고 아껴두었는데 며칠 후 밭에 가니 냉이가 한 포기도 없다. 아니,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동네 할머니들이 홀랑 다 캐 가셨다고. 냉이만도 아니다. 내가 밭에 가지 못하는 사이, 쑥도 달래도 다 없어졌다. 부아가 났다. 아니, 어떻게 남의 밭에 들어와 주인 허락도 없이 홀랑 다 캐 간단 말인가? 아직, 시골 어르신들의 ‘상식’을 들어본 적도 없을 때였다. 나중에 지인들에게 투덜거리다 알게 된 것이지만, 시골 어르신들의 상식이란 이렇다. 사람이 직접 심고 가꾸지 않은 것은 어느 땅에서 나든 주인이 따로 없는 것. 어쩐지, 그래서 우리 밭에도 두릅이며 참나물이며 우리 부부가 심어 가꾼 것은 그대로였구나. 그렇지만 아까워 죽겠더라. 엄연히 내 땅에서 난 것들인데. 그러다 고흥에 와서 근 2년을, 땅을 사려고 틈만 나면 돌아다니던 때가 떠올랐다. 2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던 일. 맘에 드는 터는 몽땅 죽은 사람들이 차지하거나 외지인들 소유더라니. 소문으로 개발 기대가 있는 곳은 턱없이 비쌌고, 호가만 높고 거래가 안 되는 땅들도 너무 많았다. 투기를 목적으로 땅을 사는 도시 사람들에게 시골의 땅값은 시쳇말로 껌값이라 평당 몇천원 차이가 별것 아니겠지만, 그런 사람들 탓에 주변 땅의 시세는 높아지고 마을 인심은 사나워진다. 와서 살 생각도 없는 외지인들이 땅을 차지만 하고 방치해두는 탓에 땅을 보러 가는 마을마다 점점 흉가가 늘어난다. 그런 사람들 덕분에(?) 지금, 여기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고자 온 사람들은 빈집이 아무리 많아도 작은 집 한 채, 작은 땅 한 뼘을 갖기가 참 어렵더라니. 그 생각에 이르니 시골엔 아직도 아무도 가질 수 없는 땅이 있단 생각도 난다. 점유는 해도 소유는 할 수 없는 땅, 근처 바닷가 마을 사람이 아니면 점유조차 할 수 없는 땅. 바지락 같은 어패류를 주는 갯벌 얘기다. 어쨌거나 우리 가족은 이제 작은 집터를 사서 손수 집을 짓고 있다. 우리 땅이어도 이웃집에서 모를 키우는 하우스에 해를 가릴까봐 멀리 축대를 쌓고 마당이 좁아져 아쉬웠는데, 하우스 주인인 형님은 집터로 차가 쉽게 올라가도록 길을 양보했고 당신 땅의 황토를 넉넉히 내주셔서 우리는 공짜 흙으로 집을 짓는다. 바닷가 마을이 아니니 우리 갯벌은 없지만, 철마다 바닷가에 사는 이웃을 따라다니며 바지락이며 온갖 해물도 넉넉히 얻어먹고 산다. 우리가 고흥에 온 첫해라서 농사가 전혀 없던 때, 가을에 수확을 했다고 집주인 어르신이 쌀 한 가마니를 주셨던 생각도 난다. 쌀 한 가마니를 선물받은 기분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쌀값만큼의 돈 봉투를 받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분이랄까. 쌀 한 가마니의 무게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이제 얼마나 될까? 어쩌면 우리 부부는 그 마지막 세대일지도. 한편 여전히 땅이라면 살거나 농사짓는 곳인 줄만 아는 사람들은 자기 땅 한 뼘을 갖지 못하고, 시골에 사는 덕에 땅뙈기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발전소에 송전탑에 혹은 그 무엇에 조상 대대로 살고 있던 땅을 아주 쉽게 빼앗기기도 한다. 사적 소유가 종교인 시대에도 말이다. 도무지 뭐가 뭔지 헷갈리는 세상에서 나는 자꾸만 궁금해진다. 우리는 무엇을 소유할 수 있고, 무엇을 소유해서는 안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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