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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28 18:23 수정 : 2018.05.28 19:42

황민호
<옥천신문> 편집국장

시골 노인들은 하루 종일 티브이를 켜놓고 사신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라디오 소리가 일하는 내내 들린다.

자주 듣다 보면 인이 박인다. 나는 여전히 8시, 9시 뉴스의 위계가 ‘지역은 식민지다’라는 인식을 가중시킨다고 믿는다. 8시, 9시 뉴스의 첫머리에 반복되는 청와대와 서울의 소식들에 비해 20여분 지난 뒤 나오는 광역 거점 도시들의 뉴스는 외려 초라하다. 그런데 그 초라함에도 끼지 못하는 지역 소식들은 사실 즐비하다. 일주일 내내 봐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수신료는 동등하게 내는데 이렇게 공고한 차별에 아무도 저항하지 않을 줄이야. 너무나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이 사고에 ‘꼴심’이 생겨 바득바득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미디어오늘>의 정필모 한국방송(KBS) 부사장 관련 기사(5월27일치 ‘KBS 부사장 “지금은 수신료 인상할 때 아니야”’)를 보면서 더 배배 꼬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기사에 언급된 한국언론정보학회 세션의 주제가 ‘공영방송의 저널리즘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이다. 여기서 부사장은 “지금 재원으로는 초고화질(UHD) 전환이 힘들기 때문에 전환을 늦춰야 한다”는 이야기와 “여기에 투자하면 디지털플랫폼 투자 지원이 줄어드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방송저널리즘의 공공성과 관련해 잘 알지도 못할 유에이치디와 디지털플랫폼이 언급되고 있는 반면에 도시 중심으로 편중된 뉴스공급 시스템은 왜 의제의 도마 위에도 오르지 못하는가? 지역 농촌이란 그냥 거점도시에서 더부살이하는 객식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지. 더 중요한 의제는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에 뉴스를 제작하고 송출할 시스템을 갖춘 소규모 방송국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공동체 방송’이라고 해서 한시적 선별적 공모사업을 하면서 시혜를 주는 것처럼 하지 말고. 나는 이것이 지역 균형 발전과 언론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경향성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면 계급성을 띠게 마련이다. 이미 방송은 ‘도시 미디어’로 전락해버렸고, ‘서울 미디어’가 되어버렸다. 다루는 분야별 의제를 보면, 노동 의제가 적지만 사실 농촌, 농업 의제와 비길 바가 아니다. 방송 언론인 중 지역 농촌에 사는 사람을 잘 보지 못했다. 나는 이 문제가 지역 농촌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며 알게 모르게 ‘식민지’의 눈으로 보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농민들 사이에서 ‘등외국민’이란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괜한 이야기가 아니다.

청주에 있는 방송기자들이 옥천에 오는 일은 드물다. 왜 그게 당연시되어야 하는가? 옥천에는 농촌에는 방송국이 생기면 안 되는가? 왜 똑같은 수신료를 내면서도 혁신 과제에도 끼지 못한 채 천덕꾸러기 의제 취급을 받는가? 소외받고 배제되는 사람들을 위해 공공성이 존재하는 것 아니던가? 왜 공영방송에 ‘공’ 자를 붙여주었는지 최소한의 성찰도 느껴지지 않는다.

기술의 진보를 쫓느라 정신없다 보니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챙기지 못하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옥천은 2011년에도 군내 67개 마을에 광대역가입자망이 깔리지 않아 정보 소외 지역으로 꼽혔다. 인터넷이 되긴 되는데 느려터졌다. 이들의 목소리는 <옥천신문> 말고는 뉴스가 되지 못했다. ‘꿈의 속도 초고속 인터넷(VDSL), 옥천에 오는가?’ 2003년 <옥천신문>에 실린 이런 제목의 뉴스는 참말로 애처롭기까지 하다.

우리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가자고 하지 않았던가? 8시, 9시 뉴스에 내가 사는 지역의 뉴스가 첫머리 기사로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지역에 소규모 방송국이 만들어져 미디어센터도 겸해서 지역 주민들이 직접 리포트도 해보는 꿈을 꿔본다. 그것은 지역 농촌에 사는 이들의 꿈이 아니라 공영방송을 운영하는 이들의 최소한의 의무여야 한다. 언론학자들 이제까지 뭐 했는가? 반드시 성찰할 문제다. 앞서가려 하지 말고 평등해라! 너무 앞서가려다 ‘공공성’을 까먹고 가는 그대들에게 죽비 소리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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