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철들면서부터 나고 자란 고향은 갈수록 움츠러들었다. 여느 군 단위 지역이 그렇듯 단지 인구가 줄고 늙어가는 것뿐 아니라 점점 닫힌 공동체로 굳어가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그래서 고향에서 새 단체를 꾸린다는 소식에 반가움이 앞섰다. 이름만 보고도 흔한 관변단체와 다를 거라 짐작했는데, 역시 그랬다. 인구 4만명이 채 되지 않는 경북 영덕에 처음으로 시민단체가 떴다. ‘영덕참여시민연대’. 지난 금요일 저녁, 군민회관에서 열린 창립총회는 설렘과 함께 결연함이 넘쳤다. 창립선언문을 읽으며 가슴이 뛰었다. “정치권력과 기득권의 횡포에 굴하지 않고 저항했던 시민운동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한다”며 활동 방향을 분명히 했다. 인근 봉화농민회, 울진사회정책연구소, 영양농민회, 민주노총 포항지부에서 찾아와 축하했다.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척박한 지역에서 공동체를 건강하게 변화시키려 애써온 이들의 고단함이 묻어났다. “촛불도 들었고, 막개발도 막고, 지역 권력도 감시하느라 힘들지만 연대할 이웃이 생겨 힘이 난다”며 기뻐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최근 발표를 보면, 전국 시·군·구 10곳 가운데 4곳이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가 줄어 지역 자체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경북에만 18곳이 위험 지역으로 꼽혔다. 굳이 ‘지방 소멸’이라는 섬뜩한 용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역은 다른 의미에서 시나브로 사그라들고 있다. 인구 감소보다 더한 위협은 활력 잃어 고인물이 되어가는 지역 현실이다. 토착 세력들이 오랜 세월 공고하게 짜놓은 틀은 ‘지역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공공연한 불법과 탈법마저 묵인하게 만든다. 선거를 거쳐 엇비슷한 인물로 지역 권력이 교체되면 앞서 저지른 온갖 비리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지만 결국 소리 없이 묻혀왔다. 용기를 내어 부조리를 고발하는 이들은 철저하게 지역사회에서 배제된다. 한 다리 건너면 친척이고 동창인 좁은 동네에서 알음알음 짬짜미는 일상으로 굳었다. 삶의 질은 낮아지고, 젊은이들은 떠난다. 국가 권력도 거대 정당들도 지역의 이런 폐해를 모를 리 없다. 그저 선거 때 적당히 단체장과 의회 자리만 차지하면 되지, 지역 혁신에는 관심이 없다. 지방선거만 끝나면 다음 선거 때까지 지역은 뒷전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주위에서 말리는데도 영덕에서 시민단체를 하겠다고 나선 이들의 절실함은 여기서 출발한다. “불의에 대해 뒷담화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지역 행정을 감시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활동들을 해나가자”며 28명이 모였다. 30여년 전부터 호시탐탐 이 지역에 들어서려던 핵폐기장, 핵발전소 건설에 맞선 경험이 밑돌이 됐다. “뭐, 단체 만든다꼬? 또 군에서 보조금 받아가 관광버스 타고 놀러 댕기고, 선거철 되면 운동 할라 카겠지.” 시민운동을 경험해본 적 없는 대다수 지역민들의 반응은 예상대로다. 그래도 같은 마음으로 지켜보는 이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지역신문에 난 창립선언문을 보고 “드러내놓고 말은 못했지만 나도 오래전부터 시민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회원으로 가입하고 싶다”는 이들의 전화를 받을 때 가장 힘이 난다고 했다. 덕분에 회원이 80여명으로 늘었다. 이들의 바람은 하나다. 상식이 통하는 삶의 터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예산 집행을 꼼꼼히 뜯어보며 행정을 감시하고, 환경문제 해결에 힘을 쏟겠다고 했다. 향토문화를 찾아 즐기고, 인문학 강좌와 시민 정치학교도 열 계획이다. 이날 창립총회를 시작으로 다른 목소리도 존중받는 열린 공동체를 향해 첫발을 뗐다. 어릴 때 반공웅변대회가 열리던 군민회관에서 함께 부른 ‘광야에서’는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 이 글에 세 가지 사심을 담았다. 하나는 기꺼이 모난 돌이 되겠다는 용기에 힘을 보태고픈 마음, 또 하나는 이렇게 동네방네 소문냈으니 처음 마음 변치 말고 지역에 단단히 뿌리내려달라는 압박이다. 그리고 작은 지역 곳곳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속앓이하는 이들에게 이 소식을 꼭 전해주고 싶었다.
칼럼 |
[지역이 중앙에게] 상식이 통하는 열린 공동체를 향해 / 박주희 |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철들면서부터 나고 자란 고향은 갈수록 움츠러들었다. 여느 군 단위 지역이 그렇듯 단지 인구가 줄고 늙어가는 것뿐 아니라 점점 닫힌 공동체로 굳어가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그래서 고향에서 새 단체를 꾸린다는 소식에 반가움이 앞섰다. 이름만 보고도 흔한 관변단체와 다를 거라 짐작했는데, 역시 그랬다. 인구 4만명이 채 되지 않는 경북 영덕에 처음으로 시민단체가 떴다. ‘영덕참여시민연대’. 지난 금요일 저녁, 군민회관에서 열린 창립총회는 설렘과 함께 결연함이 넘쳤다. 창립선언문을 읽으며 가슴이 뛰었다. “정치권력과 기득권의 횡포에 굴하지 않고 저항했던 시민운동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한다”며 활동 방향을 분명히 했다. 인근 봉화농민회, 울진사회정책연구소, 영양농민회, 민주노총 포항지부에서 찾아와 축하했다.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척박한 지역에서 공동체를 건강하게 변화시키려 애써온 이들의 고단함이 묻어났다. “촛불도 들었고, 막개발도 막고, 지역 권력도 감시하느라 힘들지만 연대할 이웃이 생겨 힘이 난다”며 기뻐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최근 발표를 보면, 전국 시·군·구 10곳 가운데 4곳이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가 줄어 지역 자체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경북에만 18곳이 위험 지역으로 꼽혔다. 굳이 ‘지방 소멸’이라는 섬뜩한 용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역은 다른 의미에서 시나브로 사그라들고 있다. 인구 감소보다 더한 위협은 활력 잃어 고인물이 되어가는 지역 현실이다. 토착 세력들이 오랜 세월 공고하게 짜놓은 틀은 ‘지역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공공연한 불법과 탈법마저 묵인하게 만든다. 선거를 거쳐 엇비슷한 인물로 지역 권력이 교체되면 앞서 저지른 온갖 비리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지만 결국 소리 없이 묻혀왔다. 용기를 내어 부조리를 고발하는 이들은 철저하게 지역사회에서 배제된다. 한 다리 건너면 친척이고 동창인 좁은 동네에서 알음알음 짬짜미는 일상으로 굳었다. 삶의 질은 낮아지고, 젊은이들은 떠난다. 국가 권력도 거대 정당들도 지역의 이런 폐해를 모를 리 없다. 그저 선거 때 적당히 단체장과 의회 자리만 차지하면 되지, 지역 혁신에는 관심이 없다. 지방선거만 끝나면 다음 선거 때까지 지역은 뒷전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주위에서 말리는데도 영덕에서 시민단체를 하겠다고 나선 이들의 절실함은 여기서 출발한다. “불의에 대해 뒷담화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지역 행정을 감시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활동들을 해나가자”며 28명이 모였다. 30여년 전부터 호시탐탐 이 지역에 들어서려던 핵폐기장, 핵발전소 건설에 맞선 경험이 밑돌이 됐다. “뭐, 단체 만든다꼬? 또 군에서 보조금 받아가 관광버스 타고 놀러 댕기고, 선거철 되면 운동 할라 카겠지.” 시민운동을 경험해본 적 없는 대다수 지역민들의 반응은 예상대로다. 그래도 같은 마음으로 지켜보는 이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지역신문에 난 창립선언문을 보고 “드러내놓고 말은 못했지만 나도 오래전부터 시민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회원으로 가입하고 싶다”는 이들의 전화를 받을 때 가장 힘이 난다고 했다. 덕분에 회원이 80여명으로 늘었다. 이들의 바람은 하나다. 상식이 통하는 삶의 터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예산 집행을 꼼꼼히 뜯어보며 행정을 감시하고, 환경문제 해결에 힘을 쏟겠다고 했다. 향토문화를 찾아 즐기고, 인문학 강좌와 시민 정치학교도 열 계획이다. 이날 창립총회를 시작으로 다른 목소리도 존중받는 열린 공동체를 향해 첫발을 뗐다. 어릴 때 반공웅변대회가 열리던 군민회관에서 함께 부른 ‘광야에서’는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 이 글에 세 가지 사심을 담았다. 하나는 기꺼이 모난 돌이 되겠다는 용기에 힘을 보태고픈 마음, 또 하나는 이렇게 동네방네 소문냈으니 처음 마음 변치 말고 지역에 단단히 뿌리내려달라는 압박이다. 그리고 작은 지역 곳곳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속앓이하는 이들에게 이 소식을 꼭 전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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