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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17 18:14 수정 : 2018.09.17 19:33

황민호
<옥천신문> 편집국장

잊힐 만한데 괜한 이야기를 들추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다시 말하는 것조차 큰 부담이다. 동시대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만큼 큰 상처와 아픔이 있었다. 대상화, 타자화된다는 것이 어떤 건지 더 몸서리쳐지게 느꼈다.

슬픔을 나누고 아픔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언론의 뉴스는 구체적이고 선정적이었으며 그만큼 자극적이었다. ‘신속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앞다퉈 경쟁적으로 몇 가지 사실을 더 끼워 넣어 보도했다. 정작 수사의 주체인 충청북도 옥천경찰서는 아무것도 확인해주지 않았다는데 언론에서는 ‘경찰에 따르면’, ‘경찰 관계자에 의하면’으로 기사가 계속 나갔다.

아직 정식 조사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사실을 그렇게 빨리 타전하는 것이 중요했을까? 벌써 결론이 나 있었고 경찰 조사는 그것을 쫓아가기 바빴다. 사실 덜컥 겁이 났다. 만일 그렇게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그 뒷감당은 온전히 누구의 몫이던가?

가스불에 올라 막 타오르는 양은 냄비처럼 들끓었으며 검색어 1위에 오르고서 몇날 며칠을 그렇게 소비되다 사라졌다. 관심이 훅 꺼진 뒤에 후유증은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저세상으로 가버린 세 아이의 친구들이 돌아오는 월요일 다시 등교를 하고 그 아이들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지역 안에 큰 과제가 남았던 것이다.

다행히 언론의 카메라와 수첩은 그 이후까지 쫓아올 관심도 여력도 없는 듯했다. 만연한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지역 보건소와 교육지원청의 협력으로 발 빠르게 정신과 전문의와 전문상담사의 자문을 받아 대처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해당 학교와 유치원에 바로 이를 알리고 함께했다.

고통을 회피하는 법에 우린 익숙하다. 고개를 돌리고 빨리 잊으려 애를 쓴다. 마주하는 것이 너무 괴로워, 생각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멀리 떠나거나 스스로를 유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나마 대응 시스템은 아이들에게 진실 그대로를 알려주고, 조용히 추모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숨진 아이들 책상을 치우지 않고 며칠 동안 놓아두었으며 그곳에 하얀 국화와 아이들의 손편지와 선물 등을 놓아둘 수 있도록 했다.

곁에 있었던 친구를 보내는 법에 대해 아이들은 성숙하게 임했다. 어른들은 다소 서툴렀다. 몇몇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은 빨리 잊도록 해야지 저렇게 하는 것이 과연 좋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그래서 침묵하고 안으로 삭였다. 어느 쪽이든 사실 나무랄 것은 없다. 다 각자의 방법이 있는 것이니까.

집이 불과 10미터도 안 떨어진 이웃이었고 그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과 함께 등교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옥천신문>에 생전 아이 인터뷰는 물론 생활체육계에서 활동한 아버지 인터뷰도 곧잘 등장시켰던 나로서는 가슴이 먹먹하고 비통하고 참담했다. 스스로 펜을 들었지만, 더 많은 자료가 있음에도 철저하게 어떤 매체보다 익명성에 기댔다. 어떻게 보도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지만 언론의 기존 문법에 기대지 않았다.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고 그 결과를 덤덤하게 보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속멍과 속울음이 불현듯 새어나왔고 아팠다. 차라리 지역 차원에서 작은 추모라도 같이 했더라면 하는 마음이 솟구쳤다. 그날 옥천은 철저히 대상화되고 타자화되어 유린당했다. 슬픔을 나눌, 아픔을 치유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분노’보다는 ‘애도’할 시간이, ‘망각’보다는 ‘기억’의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했는지 모른다. 지역공동체 전체에 끼친 어떤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그 안의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실행하는 것들에 대해 존중하고 지켜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직도 포털사이트에서 ‘옥천 일가족 살해, 사망’, ‘옥천사건’ 같은 것이 옥천 연관검색어로 뜨는 것이 슬프다. 하지만 기억해 달라. 같은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조막만한 손으로 손편지를 쓰고, 아이와 함께 놀던 장난감을, 하얀 국화꽃을 아이들 책상 위에 놓으며 먼저 하늘로 떠난 아이들을 추모했다고. 부디 그 마음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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