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활동가 설이 다가온다. 명절 앞뒤로 어김없이 찾아오는 명절증후군이 시작되고 있다. 여성들의 명절 스트레스엔 선심이라도 쓰듯 꼭 나오는 말이 있다. 간소하게 차례 음식의 가짓수를 줄여라.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속이 터진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명절을 내 맘대로 지낼 양이면 내가 식혜만 할 줄 아나? 수정과도 할 거다. 시가에선 생전 안 해 먹던 수수부꾸미도 해 먹을 거다. 들깨강정도 하고 다식도 찍어 만든다 할라. 내가 어릴 적에 명절에만 맛보았던 음식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삼 새록새록 떠오르는 풍요의 추억이다. 나는 그 추억을 내 자식들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다. 게다가 이른바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평등명절 캠페인’을 벌이는 것을 보면 아주 속이 뒤집어진다. 설거지라도 같이 하고 음식 장만을 같이 하면 과연 평등한 명절인가? 오히려 그 캠페인은 명절에 극명하게 집약되어 있는 가부장체제의 모순을 은폐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동은 몽땅 여성이 하고 의례는 몽땅 남성이 주도하는 명절 풍경도 몹시 기괴하고, 명절에 친족들이 모이면 온갖 차별적인 언사가 난무하는 문화도 큰 문제지만 그것은 외려 현상에 불과하다. 왜 나는 얼굴도 모르는 시조부모의 차례를 내 손으로 장만해서 모셔야 하고, 사무치는 내 아버지가 받을 명절상은 역시 그의 얼굴도 본 적 없는 내 올케가 모셔야 하느냐고 하면 설에는 시가에 먼저, 추석엔 친정에 먼저 가자고 하는 게 매우 진보적인 타협일 거다. 그러나 명절이 새해를 맞거나 한해의 추수를 마치고 함께 지내는 축제라면, 보다 근본적인 건 명절 음식을 누구랑 해서 누구랑 먹느냐가 정작 중요한 문제다. 모든 사람에게 그것이 가족일 수도 없고, 가족일 필요 또한 없다. 해마다 옆지기와 토론하며 새로운 시도도 해보고 어느 해인가는 명절 파업도 해보았지만 양가 어른들에 대한 연민을 떨치지 못해서 나는 여전히 별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는데, 나이를 먹어가니 언제부터일진 모르겠지만 나도 이젠 내가 꿈꾸는 명절을 지내고 싶다. 그뿐만 아니라 가족 중심의 명절문화가 족쇄일 내 자식들에게도 알려둘 필요를 느낀다. 그래서 이 지면을 빌려 적는다. 차례는 지내지 않을 것이고, 시부모든 친부모든 형제든 자식이든 가족은 평소에 관계 맺은 딱 그만큼, 평소에 챙기고 기릴 것이다. 명절에는 한해 동안 농사로 얻은 것들, 그 시기에 고흥에서 나는 가장 좋은 식재료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풍성하게 갖가지 음식을 장만할 것이다. 한해를 나 아닌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온 것에, 내가 누리고 살아온 것에 감사하며 평소에는 잘 해 먹지 않는 음식들을 찌고 지지고 볶고 무치고 부쳐서 장만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음식들을 장만할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 풍성하게 나눌 것이다. 엄마는 너희들에게도 명절은 그런 날이라고 가르쳐주고 싶지만, 너에게 명절이 어떤 의미일지는 네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혈연 역시 네가 관계 맺고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관계 중 하나이니 네가 거기에 최우선의 의미를 두진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엄마나 아빠 이상으로 네가 돌보고 또 너를 돌보는 관계가 엄마처럼 너에게도 훨씬 더 많았으면 좋겠고, 그 관계에 부여되는 의미엔 어떤 사회적 압력도 작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명절이라고 무조건 엄마 아빠를 찾아오기보다 너는 엄마한테 배운 대로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음식을 장만하여 또 네가 있어 더 좋을 사람들과 나누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혹시라도 너에게 파트너가 생긴다면 그 사람은 그런 너의 동지였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명절마다 끔찍한 저항감에 시달리며 명절 음식을 장만하고 명절빔을 장만하는 수고가 너에겐,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정말 나누고 싶은 사람들과 그것을 나누고자 할 때에 본보기가 될 수 있다면, 엄마가 불행하게 보내온 명절에도 아주 조금은 보람이 생길 것 같다.
칼럼 |
[지역이 중앙에게] 명절증후군 단상 / 명인(命人) |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활동가 설이 다가온다. 명절 앞뒤로 어김없이 찾아오는 명절증후군이 시작되고 있다. 여성들의 명절 스트레스엔 선심이라도 쓰듯 꼭 나오는 말이 있다. 간소하게 차례 음식의 가짓수를 줄여라.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속이 터진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명절을 내 맘대로 지낼 양이면 내가 식혜만 할 줄 아나? 수정과도 할 거다. 시가에선 생전 안 해 먹던 수수부꾸미도 해 먹을 거다. 들깨강정도 하고 다식도 찍어 만든다 할라. 내가 어릴 적에 명절에만 맛보았던 음식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삼 새록새록 떠오르는 풍요의 추억이다. 나는 그 추억을 내 자식들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다. 게다가 이른바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평등명절 캠페인’을 벌이는 것을 보면 아주 속이 뒤집어진다. 설거지라도 같이 하고 음식 장만을 같이 하면 과연 평등한 명절인가? 오히려 그 캠페인은 명절에 극명하게 집약되어 있는 가부장체제의 모순을 은폐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동은 몽땅 여성이 하고 의례는 몽땅 남성이 주도하는 명절 풍경도 몹시 기괴하고, 명절에 친족들이 모이면 온갖 차별적인 언사가 난무하는 문화도 큰 문제지만 그것은 외려 현상에 불과하다. 왜 나는 얼굴도 모르는 시조부모의 차례를 내 손으로 장만해서 모셔야 하고, 사무치는 내 아버지가 받을 명절상은 역시 그의 얼굴도 본 적 없는 내 올케가 모셔야 하느냐고 하면 설에는 시가에 먼저, 추석엔 친정에 먼저 가자고 하는 게 매우 진보적인 타협일 거다. 그러나 명절이 새해를 맞거나 한해의 추수를 마치고 함께 지내는 축제라면, 보다 근본적인 건 명절 음식을 누구랑 해서 누구랑 먹느냐가 정작 중요한 문제다. 모든 사람에게 그것이 가족일 수도 없고, 가족일 필요 또한 없다. 해마다 옆지기와 토론하며 새로운 시도도 해보고 어느 해인가는 명절 파업도 해보았지만 양가 어른들에 대한 연민을 떨치지 못해서 나는 여전히 별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는데, 나이를 먹어가니 언제부터일진 모르겠지만 나도 이젠 내가 꿈꾸는 명절을 지내고 싶다. 그뿐만 아니라 가족 중심의 명절문화가 족쇄일 내 자식들에게도 알려둘 필요를 느낀다. 그래서 이 지면을 빌려 적는다. 차례는 지내지 않을 것이고, 시부모든 친부모든 형제든 자식이든 가족은 평소에 관계 맺은 딱 그만큼, 평소에 챙기고 기릴 것이다. 명절에는 한해 동안 농사로 얻은 것들, 그 시기에 고흥에서 나는 가장 좋은 식재료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풍성하게 갖가지 음식을 장만할 것이다. 한해를 나 아닌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온 것에, 내가 누리고 살아온 것에 감사하며 평소에는 잘 해 먹지 않는 음식들을 찌고 지지고 볶고 무치고 부쳐서 장만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음식들을 장만할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 풍성하게 나눌 것이다. 엄마는 너희들에게도 명절은 그런 날이라고 가르쳐주고 싶지만, 너에게 명절이 어떤 의미일지는 네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혈연 역시 네가 관계 맺고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관계 중 하나이니 네가 거기에 최우선의 의미를 두진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엄마나 아빠 이상으로 네가 돌보고 또 너를 돌보는 관계가 엄마처럼 너에게도 훨씬 더 많았으면 좋겠고, 그 관계에 부여되는 의미엔 어떤 사회적 압력도 작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명절이라고 무조건 엄마 아빠를 찾아오기보다 너는 엄마한테 배운 대로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음식을 장만하여 또 네가 있어 더 좋을 사람들과 나누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혹시라도 너에게 파트너가 생긴다면 그 사람은 그런 너의 동지였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명절마다 끔찍한 저항감에 시달리며 명절 음식을 장만하고 명절빔을 장만하는 수고가 너에겐,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정말 나누고 싶은 사람들과 그것을 나누고자 할 때에 본보기가 될 수 있다면, 엄마가 불행하게 보내온 명절에도 아주 조금은 보람이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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