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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1 16:50 수정 : 2019.04.10 16:41

박주희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힐 것 같은 좁은 골목 모퉁이에 그 집이 있었다. 무서운 속도로 고층 아파트 숲이 생기는데 나지막한 한옥이 용케도 살아남았다. 최근 새 단장을 한 듯 깔끔한 목재 담장이 둘러쳐져 있지만, 낡은 집채는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세월을 버티고 서 있다. 전태일 열사가 15살부터 2년 남짓 살았던 집이다. 서둘러 핀 벚꽃이 포근하게 드리운 날, 대구시 중구 남산동 그의 옛집 앞을 서성이다 <전태일 평전>을 떠올렸다.

집에 돌아와 책장을 뒤져봤지만, 대학 때 읽던 책은 찾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초등학생 아들 책장에서 아동문고판 <청년 노동자 전태일>을 꺼내 들었다. 이 집에 살던 시절 그는 아버지를 도와 옷 만드는 일을 하면서 청옥고등공민학교에 다녔다. 초등학교 교실을 몇 칸 빌려 쓰는 야간학교였다. 반장을 맡아 학급 일에 앞장섰고, 친구들과 어울려 배우는 기쁨에 푹 빠졌다. 늘 배를 곯던 가난한 어린 시절 그나마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좋은 한때였다. 생활이 어려워져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뒀지만, 짧은 그의 삶 가운데 가장 행복한 날들로 기록돼 있다. 이후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서울로 떠났다.

이 봄날 문득 전태일 열사를 기억해낸 건 ‘전태일의 친구들’ 소식 때문이다. 최근 대구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이 모여 그를 기리는 단체를 꾸렸다. 이들은 첫발을 떼며 이렇게 제안했다. “전태일의 죽음을 기억하고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평생 힘겨운 노동자들의 곁을 지키고 힘없는 이들의 인권을 변호한 이소선(전태일의 어머니)과 조영래처럼 이제 대구시민이 나서서 또 다른 전태일의 친구가 되자.”

이들은 전태일 열사가 살던 옛집을 사들여 원형을 보존하고 기념관을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민들과 함께 모금운동을 시작한다. 내년 11월 열사의 50주기를 맞아 기념관 문을 열고, 민주시민의식을 키워나가는 공간으로 꾸려가기로 했다. 더불어 노동자, 청년, 청소년을 위한 나눔 기금을 만들고, 노동인권 교육도 할 예정이다.

사실 대구 사람들조차 전태일 열사의 고향이 대구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1948년 그가 태어난 대구 남산동 집은 현재 오거리로 바뀌어 집터 흔적조차 없다. 몇년 전 생가터에 표지목을 세우고 공원을 만들려는 노력도 있었지만, 순조롭지 못했던 모양이다. 다행인 것은 짧게나마 머물렀던 집터가 온전히 남아 있으니, 그곳에 기념관을 짓기로 뜻을 모았다. 사람들이 집 앞을 오며가며 그를 기억하고, 기념관은 인권과 민주정신을 기리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꿈꾼다.

지역 노동계는 ‘전태일 정신을 특정 상징물에 가두는 것에 반대한다’며 기념관 사업에 반대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일부에선 대구시가 추진하고 있는 ‘노사평화의전당’ 안에 기념관을 만들자는 의견도 냈다. 이 안은 지역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모두 반대했다. 혹시라도 숭고한 죽음에 누가 되거나 뜻이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조심스러워하는 것이다.

제각각 방향은 다를 수 있어도 열사의 뜻을 올곧게 이어가려는 마음만은 하나라 믿는다. 이달 중순 서울에서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이 문을 연다. 그를 추모하고 뜻을 기리는 여러 움직임들이 반갑다. “어머니, 저에게 많이 배운 친구 한 명만 있다면….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다면 원이 없겠어요”라던 그였다. 이제 많이 배운 친구들이 이토록 많아졌지만, 그가 죽음으로 외쳤던 노동자의 권리를 온전히 지켜내는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점심값을 털어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던 따뜻함 대신 차가운 노동법이 또 다른 어린 여공들을 울린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마음의 빚을 안은 채 그를 기억한다.

스물두살 아름다운 청년의 친구가 되겠다고 나선 고향 친구들은 “대구의 소중한 정신적 유산, 전태일의 삶과 가치를 알리고 이어가는 마중물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반세기가 되는 날, 그의 옛집에서 오롯이 그의 참뜻을 되새긴다면 서로 다른 목소리도 둥글둥글 어우러지지 않을까. 많은 시민들이 기꺼이 힘을 보태야 가능한 일이다. 한 사람의 열 걸음으로는 어렵다. 열 사람의 뜻깊은 한 걸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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