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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8 18:05 수정 : 2019.04.08 19:04

건물주가 인부들을 데려와 쇠망치로 방과 벽을 깼다. 동자동 9-20의 4층이 폐허로 변했다.

옆지기가 지금 짓고 있는 우리 집 건축신고서엔 떡하니 내 이름이 있다. 무려 건축주. 그거면 나도 곧 건물주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처음 시골에 와서 살 집을 구하는 일은 서울에서보다 더 힘들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부동산 중개업소인 서울과 시골은 다르다. 생활정보지는 4면짜리 달랑 한장. 멋모르고 중개업소나 귀농 사이트에 올라온 걸 보고 덜컥 집을 샀다간 바가지를 쓸 각오를 해야 한다. 시골에선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결국 알음알음으로 집을 구해야 한다는 건데, 시골 물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귀농·귀촌 초보들에겐 막막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우리가 지인부터 그 사돈의 팔촌까지 몇다리를 건너 집을 구한 건 천운이었다.

애초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을 요량이었다. 서울에 살았다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지만 고흥은 아직, 서울에서 원룸을 구할 월세 보증금이면 집 한채 지을 땅을 살 수도 있다. 그러자니 집터를 구할 때까지 살 집이 필요했다. 귀인을 만난 덕분에 시골 마을에 무상으로 집을 빌려 살면서 틈만 나면 땅을 보러 다녔다.

아직 살 곳을 정하지 못했으니 농지를 사거나 빌리기도 난망했고 마을 사람인 것도 아닌 것도 아닌 채로 어정쩡하게 지내자니 마음은 급한데, 지금 집을 짓고 있는 터를 구하기까지 2년이나 걸리더라. 땅을 보러 다니는 동안 수시로 이글이글 분노가 끓어올랐다. 첫째, 조선 천지 명당자리는 대개 죽은 사람이 차지하고 있더라니.

둘째, 때로는 마을마다 사람이 사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다 싶은데도 우리에게 마땅한 집은 여간해서 팔지를 않는다. 대개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도시에 살고 있는 자식들이 소유한 집들이 그렇다. 집이나 땅값이 비싸면 무슨 이유를 대든 진즉에 팔아치웠을 텐데, 팔아봐야 몇푼 안 되니 마음의 보루로라도 지키고 싶은 걸까? 팔지는 않으면서 관리도 하지 않아 점점 흉가가 되어가는 빈집들은 마을마저 을씨년스러운 폐허로 만들고 있다.

셋째, 땅은 대개 도시에 살고 있는 외지인 소유더라. 그나마 이곳이 고향인 사람이 소유자인 경우 언젠가 돌아올 희망으로 안 팔 수도 있다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대개 투기용이다. 그런 경우 그 주변 땅은 대개 호가만 높고 거래는 안 된다. 지역 물정을 전혀 모르는 외지인과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지역 주민들이 거래하는 가격보다 훨씬 높게 거래를 해놓으니 시세가 널을 뛰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대도시에 살면서 투기용으로 땅을 사려는 사람들 눈엔 고흥의 땅값이 껌값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당 5천원, 1만원의 차이가 마을 인심마저 사납게 만들고 마는 것이다.

집터를 구하는 데만 2년, 간신히 마음에 드는 터를 사고도 망자 명의의 땅이라 소유권 이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또 2년, 경험도 없는 옆지기가 책이나 인터넷을 의지해가며 집을 짓게 된 지 햇수로 3년째. 아들이 군복무 중이라 옆지기 혼자 짓고 있는 집에 올봄에는 입주가 가능할 거라더니 봄이 되니 올 연말에도 어려울 것 같단다.

그 와중에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의 계약 기간이 끝나간다. 집주인은 보증금을 올려주든지 집을 비워달라고 통보해왔다. 전세 매물이 거의 없는 고흥에 전세로 나온 집은 대개 담보 설정이 많이 되어 있는 집이다. 지금도 불안한데 보증금을 올려주고 나면 속된 말로 깡통인 집. 갖은 이유로 귀하디귀한 전셋집을 구하는 것도 이삿짐을 쌌다 푸는 것도 2년마다 반복된다. 그래도 그동안은 큰 사고 없이, 2년마다 간신히 살 집을 구했다. 이번에도 운이 따라줄지는 알 수 없는 일. 매일 초과근무 하는 와중에 나는 간신히 짬을 내어 이사 갈 집도 알아보고 또 짐을 싼다.

전국에서 땅값·집값이 제일 싼 편이라는 전남 고흥에서도 소박하게 농사짓고 살 집 한채를 갖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금싸라기 땅이라는 대도시에선 오죽할까? 그런데 여야 막론하고 이 나라 높으신 양반들에겐 그 금싸라기 땅도 껌값인가 보더라. 서민들의 사정과는 이렇게나 거리가 먼 사람들이 내놓는 부동산 정책을 대체 어떻게 믿어드려야 할까?

명인(命人)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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