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22 17:54
수정 : 2019.04.2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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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에 휩싸인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파리의 상징으로 최대 관광명소의 하나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15일(현지시간) 발생한 화재로 불길과 연기에 휩싸여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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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촬영된 영화, 혹은 합성사진들이라고 여겼다. 아침 일찍 스마트폰 속 정방형의 이미지 공유 소셜네트워크에 접속해 노트르담 성당의 첨탑이 불에 타는 걸 보면서 꽤 자극적인 작품이거니 했다. 믿을 수 없는 장면, 혹은 믿기 힘든 장면을 볼 때 처음엔 그런 불신의 감정이 생긴다. 아름다운 건축과 수많은 예술품이 불길 속에서 사라져갔다. 이 장면을 보고 있지만, 나는 이 장면을 믿을 수 없다. 유난히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많이 보게 되는 4월의 기억에 화마에 싸인 노트르담의 모습이 추가된다. 게다가 화재가 시작된 파리 시각 15일 저녁은 한국 시각으로는 이미 4월16일이었다.
2019년 4월16일이 노트르담 성당이 불길에 휩싸인 이미지로 전세계 사람들을 상심에 빠트렸다면, 대한민국의 4월16일은 304명의 사람을 품은 배가 바닷속으로 서서히 침몰하는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2014년의 4월16일에 침몰하는 배를 텔레비전에서 생중계하는 동안에도 세월호에는 분명 산 사람들이 있었다. 헬리콥터가 배 주변을 배회하고 그 영상을 찍고 있던 방송용 배를 포함해 수많은 배가 세월호를 둘러싸고 떠 있었는데 사람을 적극적으로 구하는 장면은 볼 수 없었다. 그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던 장면이다. 그리고 그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이유에 대한 해명, 그 사건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근거는 아직도 미진하다. 사건이 일어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바다로 가라앉는 배의 이미지는 믿을 수 없다.
엘리엇의 문장이 4월에 저주를 내린 걸까. 그래서 4월은 잔인한 달이 돼버렸던가. 정말로 잔혹한 일들은 꼭 4월에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제주에서의 4월은 1948년 4월3일의 그늘 아래 존재한다. 3만명에 가까운 제주도민이 희생된 4·3 사건은 아직도 진상규명이 진행 중이다. 70여년이 지난 사건이라 노트르담과 세월호처럼 선명한 사진 이미지로 기억되진 않는다. 개인적으로 새겨두는 4·3의 이미지는 강요배 작가가 그린 죽은 엄마의 젖을 빠는 아기의 모습이 담긴 처절한 드로잉, 오멸 감독이 <지슬>이라는 영화에서 묘사한 산속으로 피한 사람들이 어둡고 낮은 굴속에 모여 감자를 먹는 모습이다. 이미지로조차 역사에 선명히 남지 못한 이 사건은 예술가들의 재현으로나마 인상적인 이미지를 남겼다. 예술가들이 재현한 이미지는 왜인지 믿을 수 있다. 가짜일 수가 없다는 신뢰가 있다. 진짜 영상을 볼 때는 의심스러웠던 감정이 지어낸 이미지를 볼 때는 오히려 의심을 거둬내게 되는 이유가 뭘까?
보이는 것이 곧 믿는 것이라는 굳건한 문장은 특수효과와 각종 합성기술의 발달로 의심받기 시작했다. 조작과 합성이 쉬운 우리 시대엔 무엇을 보든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는 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곤 한다. 하지만 예술은, 특히 역사를 증언하고자 제작된 예술품은 예술로서 늘 진짜다. ‘불신의 유예’(suspension of disbelief)는 영화나 소설 같은 지어낸 이야기에 몰입하기 위해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한 의심을 잠시 멈추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아마 예술작품으로 해석된 이미지에는 불신의 유예가 작용하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믿을 수 없는 이미지들이 실제 장면이 아니라 2차로 가공된 이미지라는 데에 안심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불신의 유예는 허구적인 이야기에 몰입해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한 심리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불타는 노트르담을 보면서 믿지 못하는 마음, 가라앉는 배를 보면서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불신의 유예와 상반되는 마음은 ‘믿음의 유예’라고 불러볼 수 있을까. 사실은 노트르담 성당이 불타지 않았다고, 세월호가 가라앉지 않았다고 믿는 일을 유예해보는 건 별것 아닌 거 같지만 위로가 된다. 비록 현실에서 마주해야 할 무거움은 평생 지고 갈지언정, 상상력은 현실의 짐을 잠시 내려놓도록 돕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잔인한 4월이 지나간다. 하늘은 맑고 벚꽃과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예쁘기만 한데 마음은 무겁고 힘들기만 한 4월의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견뎌낼 힘이 간절하다. 빛나고 찬란한 5월이 곧 올 것이라는 낙관적 믿음이 작용해야 하는 때다.
이나연
제주 출판사 ‘켈파트프레스’ 대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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