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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13 16:38 수정 : 2019.05.13 19:02

생산·유통·연구 기능을 집적화한 스마트팜 혁신밸리의 조감도 농림축산식품부

집으로 오는 길에 현수막이 펄럭인다. ‘고흥군 스마트팜 혁신 밸리 1100억 사업 유치 확정!’ 전국에서 경쟁이 치열했다 하고 고흥군은 재수까지 해서 유치한 것인데다 고흥군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사업이라고 하니 아마 어딘가에선 쾌거를 이루었다며 축배를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현수막을 지나니 또 다른 현수막이 펄럭인다. ‘고흥군, 80억 규모 청년 농촌 보금자리 사업 공모 확정!’ 고흥군에 따르면 이번 사업은 귀농·귀촌 청년들의 주거·육아 부담을 완화하고 생활 여건 개선을 통해 안정적으로 농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추진된다고 한다. 30호 안팎의 공공 임대주택과 육아 나눔 활동을 위한 공동 육아시설, 문화, 여가, 체육활동이 가능한 커뮤니티 시설 등을 스마트팜 혁신 밸리 사업 대상지 인근에 마련한다고. 시골에 청년들이 올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고, 청년들이 깃들일 보금자리를 짓는다는데 이 현수막들을 지나며 나는 왜 자꾸 고개가 갸우뚱거려질까.

스마트팜에선 해외여행을 가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농장을 관리할 수 있단다. 농촌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심각하니 농사를 로봇이 대신할 수도 있고, 농사가 엄청 편리해지는데다 수확량 증가로 돈도 많이 벌 수 있으니 농촌에 젊은이들이 유입될 거란다. 농업과 전후방 농산업은 동반성장을 할 수 있고, 규격화된 농산물을 먹을 수 있으니 소비자들의 욕구도 충족된단다. 이를 위해 국비와 지방비를 포함해 1조원 이상이 투여되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고. 이런 때, 나는 왜 이렇게 심란해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질문들만 떠올리게 될까?

농사가 편리해지니 농민들은 모두 노동시간이 줄고 해외여행이든 여가든 즐길 수 있게 풍요로워질까? 온실 속에서 작물이 자라는 건 스마트폰이 다 알아서 할 수 있으니 농사로 아랫집 꼬부랑 할매처럼 허리가 굽을 필요도, 윗집 할배처럼 관절이 다 나갈 필요도 없이 작물은 쑥쑥 자라는 걸까?

수확량이 엄청 늘어나면 우리나라도 더는 외국에서 농산물을 수입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과잉생산으로 농산물 가격은 수시로 폭락하고 농민들은 멀쩡하게 풍년인 밭을 갈아엎는 일이 수두룩한데, 일조량이 많은 고흥군에선 주로 열대과일을 생산할 예정이라니 아무 상관이 없을까? 스마트팜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스마트폰이 농산물의 수요 공급도 알아서 관리해줄까?

나라에서 지원을 해줘도 자부담만 2억~3억원을 웃돈다는 스마트팜 사업은 과연 어떤 농민들이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대농 이상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농촌에서 이 사업에 뛰어들지 못하는 농민들은 어떻게 될까?

자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농가들은 크나큰 투자와 지원이란 이름의 빚더미 위에서 다 살아남을까? 정말로 이 사업의 미래가 창창하다면 이 정도 투자는 껌값으로 여길 만한 대기업들은 가만히 있을까? 또 이 사업주들은 어떤 사람들을 고용해서 농장을 유지 관리할까? 일자리가 간절한 젊은이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농장주들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있는 이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인권은 지켜줄까? 젊은이들이 농촌에 와서 농민이 아니라 농업노동자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도시노동자가 되는 일보다는 나은 일일까?

온도와 습도, 환기와 살균까지 똑똑한 스마트폰이 다 알아서 하니 이제 더 이상 사람은 햇볕과 바람과 비 같은 것에 민감하지 않아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이제 사람은 흙도 온갖 풀들도 이름조차 다 알 수 없는 벌레들까지 더불어 살 필요가 더는 없을까? 이제 농사를 짓는 농민마저도 하늘의 무늬를 읽을 수 없게 되니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똑똑한 기계에 맡겨도 괜찮은 걸까?

영국에서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은 울타리를 쳐 공유지를 없애고 사람들이 먹고 입고 쓸 것을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빼앗고서야 체제 이행을 완수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이 짓던 농사를 기계가 지으면서 노동요가 사라졌고,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멈추던 농사는 이제 밤낮이 없어졌는데 4차 산업혁명이라는 스마트팜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앗아가고 무엇을 더하게 될까? 우리는 아무 두려움 없이 이 변화를 마주해도 되는 걸까?

명인(命人)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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