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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27 17:07 수정 : 2019.05.27 19:20

은어 방류 6일 오후 부산 강서구 진목 연안에서 부산시 수산자원연구소가 어린 은어를 방류하고 있다. 연구소는 7일까지 어린 은어 16만마리를 기장군 일광천과 좌광천 일원에 방류한다. 부산/연합뉴스

인생의 첫 10년의 기억은 서귀포에만 있다. 매년 여름이면 시원한 민물이 있는 강정천에서 놀았다. 민물은 무려 한라산에서 내려온 천연 암반수였다. 서귀포 식수의 70%를 공급한다는 맑은 물 위에 수박을 띄워두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놀았다. 강정천의 물이 얼마나 차가운가를 전해야 한다.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의 한가운데 정오에도 물속에 십분 이상 몸을 담그면 입술이 파래졌다. 시골의 작은 천 얘기가 장황하다 싶겠지만 강정은 전국적으로도 꽤 유명한 동네다. 미군 해군기지가 자리 잡으며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고, 여전히 있는 곳이다.

해군기지의 유명세가 압도적이라 다른 명물들이 차순으로 밀려나기 전에, 강정의 연관검색어 상위엔 은어가 있었다. 강정천은 제주 최대의 은어 서식지였다. 회귀성 어종인 은어는 먼 바다로 나갔다가 강을 거슬러 강정천에 돌아와 산란을 한다. 해군기지가 들어서기 전의 강정천에서 매년 올림은어축제가 열리곤 했다. 태어난 지 15일 만에 바다로 나갔다가 알을 낳기 위해 돌아오는 은어를 제주에서는 올라온다는 의미를 담아 ‘올림은어’라 불렀다. 은어가 돌아와야 마땅한 강정천은 이제 인근이 해군모함이 정착하기 좋아짐에 반비례해서 은어가 돌아와 살기 좋은 곳은 아니게 되었다. 수박 맛이 난다는 은빛의 신비로운 생선은 이제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 최근 몇년간 강정포구에서 대량으로 폐사한 은어를 발견한다는 기사도 보게 된다.

생선이나 사람이나 돌아갈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제주를 떠난 청년들도 돌아올 곳이 없어 고향으로 못 오고 있는 사정이 비슷하다. 대부분의 지역도시가 그렇듯이 제주 역시 젊은 친구들이 정착해 일을 할 여건이 부족하다. 우선 내가 그랬다. 미술을 전공하고 직업을 바꾸긴 했지만 계속 미술계통에서만 관련 일을 해오고 있는 내게 제주는 마땅히 일할 자리가 없는 고향이었다. 학교를 따라 직장을 따라 세계 여기저기를 떠돌다 보면 내가 대체 집을 떠나 뭘 하고 있나 싶었다.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은 아닌데, 돌아갈 수 없는 느낌이었다. 지역에서 태어난 사실 자체가 조금 억울하기도 하고 개선의 여지가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할 일이 없다는 건 핑계가 아니라 사실이다.

2000년을 전후해 제주가 대안적 삶을 위한 매력적인 장소로 떠오르면서 젊은 외지인의 유입이 늘었다. 2010년을 전후해선 그렇게 이주한 젊은 인력의 힘이 모여 문화활동이 늘었다. 정책적으로 문화기관이 많이 생겼고, 민간에서도 미술관과 문화공간이 지어지면서 운 좋게 직장이 생겨 5년 전 제주에 귀향했다. 1년 남짓 직장생활을 했다. 이후로는 딱히 남이 만들어 놓은 일터로 출퇴근하지 않고 내가 만든 출판사와 잡지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부족한 기반시설이나 문화예술에 대한 낮은 인식 탓에 터무니없는 일들이 생기긴 해도 역시 고향엔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어 좋다. 불편을 겪는 만큼 도움도 많이 받으면서 균형이 맞춰진다. 내가 일을 하려 해도 동료가 많이 필요하다. 지구 여기저기를 떠도는 고향 친구들이 은어처럼 제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강정천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은어처럼, 여건이 마련되지 못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니길 바랐다.

제주살이 5년 만에 지역에서 일하고 살며 필요하면 만들어버리는 데 익숙해진 모양이다. 올해 초부터 제주의 청년 기업과 단체들과 협력해 제주 맞춤형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제주를 떠난 은어 예술가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아늑한 공간을 마련해주는 프로젝트, 바로 ‘스윗스윗피시앤룸스’다. 은어의 영어 이름이 스위트피시다. 제주로 오고 싶은 은어에게 호텔의 스위트룸 같은 안락한 여건을 제공해주자는 프로젝트에 맞춤한 생선이었다. 4월 말에 입도한 은어 작가들은 제주 전역의 숙박공간에 흩어져 투숙하며 작업했다. 5월 말에 한달여간의 여정을 끝낸 은어들이 바다로 돌아갔다. 은어는 더러운 물에는 절대로 살지 않는다고 한다. 스윗스윗피시앤룸스 기획팀은 이 은어 귀환 프로젝트가 도루묵이 되지 않도록 지역에서 청년예술가들이 살며 작업할 만한 여건을 만드는 방법을 궁리한다. 도루묵은 은어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나연
제주 출판사 ‘켈파트프레스’ 대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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