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09 17:33
수정 : 2019.09.09 18:50
육지에서 건너와 섬에 정착해 시조가 된 사람을 ‘입도조’(入島祖)라 부른다. 제주도 사람은 삼성혈에서 나왔다는 토착 성씨인 고, 부, 양씨를 제외하면 모두 입도조를 가진 셈이다. 여러 시기에 걸쳐 다양한 이유로 제주에 정착해 입도조가 된 사람들이 있다. 지리학 박사 남수연은 조선시대에 제주로 유배 와서 귀양살이를 하던 이가 200명에 가까웠다는 점과 이들이 제주에 남아 입도조가 되었다는 사실에 입각해, 이 유배인들을 1세대 입도조로 본다. 2세대 입도조는 1960년대에 중앙정부 주도로 시작된 관광산업 개발로 일자리를 찾고자 유입된 이들이다. 3세대 입도조는 2007년 개장한 제주올레길과 2010년에 제주로 이주한 인기가수가 일으킨 제주 이주 열풍으로 촉발된다. 제주의 자연을 재발견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섬에서의 생활을 꿈꾸며 입도한 이들 덕에 2010년 57만명이던 제주인구는 2015년에 62만명, 2018년에 66만명에 육박하며 정점을 찍는다. 10여년간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던 입도 인구는 이제 정체기, 혹은 쇠퇴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한 시대가 생겨나고 소멸한다.
사진작가 박정근은 3세대 입도조이며 동료 입도조의 초상을 찍으며 지나가는 시대를 증언한다. 그는 신입도조의 특징을 불안계급에서 찾는다.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은 안정적 급여생활자에 대비되는 ‘불안계급’(precaria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 불안계급을 유인할 만한 자연환경과 문화 기반을 제주가 가지고 있었다. 제주에 입도한 이들은 불안계급에 속한 이방인이었다. 박정근의 사진에 기록된 입도조의 초상은 발을 땅에 딛고 있지만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연출됐다.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지만 동시에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신대륙으로 이주했던 청교도인처럼, 떠돌아야만 삶이 살아지는 집시처럼, 새로운 터를 찾아, 스스로 설계하는 삶을 찾아, 제주라는 곳에 입도한 이들은 아직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진 못했다. 개척자의 운명이고 입도조의 삶의 방식이다. 사람이 태어나기를 선택할 순 없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처럼, 입도조의 운명도 그러한 모양이다.
질 좋은 삶, 즐거움, 자연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사는 곳을 바꾼 이들이지만 살다 보면 고향도 아니고 직장도 없는 곳에 왜 왔는지 모르는 지경에 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주 이유를 증명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길에서 다시 길을 잃기도 한다. 불안한 상태의 지속이다. 사진 속 초상들은 모두 그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숲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꾼 한 입도조 가족의 사진이 있다. 4살과 6살 즈음의 두 딸과 30대 중후반의 젊은 부부가 숲에 서 있다. 숲 너머 배경에는 우주선처럼 보이는 석유공장이 있다. 자연에서의 삶을 기대했는데, 근처엔 공장지대가 있고, 사진 속의 공장은 우주선 같다. 이주민들이 제주에서 기대한 삶과 실제 살아가야 하는 삶의 괴리를 한장의 사진으로 보여준다. 아직은 숲속에 있는 입도조 부모의 품을 떠나 두 딸은 저 너머 석유공장 쪽으로 넘어가 살게 될까. 아니면 정말 숲속에서 부모가 꿈꾸던 이상을 실현하며 살아가게 될까.
정치적인 유배를 당한 1세대 입도조와 경제적인 이유로 제주에 온 2세대 입도조와는 다른 이유로 제주에 온 3세대 입도조의 초상은 불확실한 이주의 이유만큼이나 불안정하다. 불안정함을 각오하고 찾아온 이곳, 누군가는 아래로 내려와 점차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될 테고, 누군가는 훌쩍 날아 다른 곳으로 떠나리라. 정착하지도 떠나지도 않은 이 상태의 불안감은 어쩌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될지도 모른다. 제주는 지금도 여전히 부족한 문화적 인프라와 거칠기만 한 자연의 품에서 확실한 동력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입도조가 카페, 게스트하우스, 서점 등의 공간을 기반으로 펼쳐나가는 문화 활동은 제주의 특성과 입도조의 상황이 모두 반영되며 독특한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박정근이 포착한 입도조 시리즈의 초상들은 그들 가족의 입도조이기도 하지만, 제주의 새 문화를 만드는 조상 노릇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나연
제주 출판사 ‘켈파트프레스’ 대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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