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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30 17:02 수정 : 2019.10.01 14:41

명인(命人)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활동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특성화고’란 소질과 적성 및 능력이 유사한 학생을 대상으로 특정 분야의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또는 현장실습 등 체험 위주의 교육을 전문적으로 실시하는 학교라고 한다. 특수목적고인 마이스터고를 포함하여 ‘직업계고’라고도 부른다. 전라남도는 22개 시·군에 47개의 직업계고가 있고, 나는 2014년부터 이 학교들에서 학급별로 한 학년에 두 시간씩 ‘노동인권’을 주제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나는, 직업계고에 입학할 때 소질이나 적성 따위를 고려했다는 학생을 만나본 적이 없다. 또 전공에 따라 취업을 하는 학생은 극소수라고들 한다. 대개의 학생들 책상엔 자격증 시험 대비 문제집이 놓여 있는데, 자격증도 전공과 무관한 경우가 많고 심지어 취업에 쓸 일도 거의 없단다. 그런 자격증을 왜 따야 하느냐고 물으면, 그냥 직업계고에 왔으면 자격증 하나쯤은 기본이니 학교에서 무조건 따라고 했다고.

교육부는 학생들의 진로와 관련하여 교육과정으로 현장실습 제도를 두고 있는데 학생들은 현장실습이란 말 자체를 쓰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그 단어는 자동으로 ‘조기 취업’으로 번역될 뿐. 교육부는 산학일체형 도제교육과정도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독일·스위스에서 발전한 도제교육을 우리 현실에 맞게 도입한 것이라고 한다. 이태 전 도제교육을 받고 온 학생들과 노동인권 수업을 할 때다. 학생들에게 도제학교 경험을 묻자 한 학생이 대뜸 소매를 걷고 팔을 내밀었다. 심한 흉터가 있었다. 관리자가 말을 안 듣는다고 작업에 사용하던 인두로 학생의 팔을 지졌단다. 깜짝 놀란 나에게 학생들은 도제학교 성토대회를 시작했다. 노동인권 수업에서 듣게 된 이야기들을 계기로 올해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는 전라남도 교육청과 전라남도 도제교육 실태조사를 했는데, 학생들은 도제학교에서 주로 청소와 허드렛일, 직무와 관련 없는 잡무를 했다고 대답했고 안전 대책도 없이 일하는 등 조사 결과는 듣던 대로 참담했다.

이달 초에 갔던 특성화고 3학년 수업은 한달이 다 되었는데도 자꾸 생각난다. 열아홉살 인생에서 12년, 학창 시절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학생들에게 ‘나는 학교에서 ○○을 배웠다’를 적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포스트잇에 적힌 것들. ‘눈치 보는 법, 안 들키고 자는 법, 이기적이어야만 살아남는다는 것, 싫은데 웃는 법, 착한 척하는 법, 적당히 무시하는 법, 경멸하지만 존경하는 척하는 법, 왜 해야 되는지 모르는 일을 하는 법, 지루함을 견디는 법, 튀면 손해.’ 요약하면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라는데, 결국 권력관계하에서 통제에 익숙해지며 어떻게 경쟁의 논리를 내면화하면서 강제노동을 잘 수행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나는 이런 것들이 취업을 했을 때 노동 현장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구체적인 서사를 떠올려 그림을 그려보게 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노동인권’에 대한 고민을 같이했다.

너무 먹먹해지던 이야기도 있었다.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여러분이 포기한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학생들은 질세라 이야기를 쏟아냈다. ‘잠, 시간, 청춘, 행복, 자유, 인권, 꿈….’ 이쯤에서 한 학생이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쌤, 결국 우린 인생을 포기한 거네요.” 울컥, 목이 메어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울기엔 아직 일렀다. 그다음 포스트잇에 적힌 것은 ‘나는 학교에서 (내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배웠다’였으니까.

요즘 언론 기사를 보면 이 시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화두 중 하나는 ‘공정성’이 된 듯하다. 그런데 이런 학생들에게 공정성이란 과연 뭘까? 대학 입시나 취업 경쟁의 ‘룰’이 대체 어떻게 바뀌면 이 학생들에게도 공정해질 수 있을까? 교육부 장관은 11월 중 대입 공정성 방안을 발표한다는데, 10월2일 전남에는 현장실습으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오신다.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성을 말하는 고담준론이 날아다니는 시절, ‘다시는 아무도 죽이지 말라’고 전국을 누비는 부모들과 떠도는 원혼들의 사회에서 과연, 교육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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