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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7 17:48 수정 : 2019.10.07 19:33

권영란
진주 <단디뉴스> 전 대표

“내가 얼매 살것노. 몇년 있으모 죽을 낀데, 그때 하모는 안 되까?”

조상 대대로 살았고, 평생을 살아온 어르신들의 하소연은 안타깝지만 별도리가 없다. 경남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장시마을은 곧 없어질 것이다. 지난주 장시마을 회관에서는 마을 사진전이 열렸다. 장시마을 토지와 주택이 전원 수용됨으로써 얼마 있으면 마을 주민 모두 마을을 떠나야 한다. 장시마을은 정부가 2013년부터 가야사 복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문화재 발굴을 위한 보호구역으로 지정됐고 얼마 전에 보상·협의 작업이 끝났다. 소식을 전해 들은 이곳 출신 청년들이 ‘대동사람들’이라는 문화기획단을 만들어 곧 없어질 마을과 사람들을 기록하겠다고 나섰다. 집집마다 소장한 마을의 옛 사진들을 수집하고, 마을 어르신들 이야기를 채록하고 사진을 찍는 등 기록했다. 이번 사진전은 사라지는 장시마을과 곧 떠날 마을 사람들을 위한 기록전이었다.

비슷한 사례는 경남 진주에도 있다. 올해 초 점점 쇠퇴하는 진주중앙유등시장을 기록하는 작업이 있었다. 시장의 청년 상인과 지역 청년들이 시장의 역사와 현재를 되짚고 몇달 동안 시장 상인들을 인터뷰해서 작은 책으로 엮은 것이다. 청년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여 기록단을 만들었다. 120년 동안 지역사와 함께해온 진주중앙유등시장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알고 지역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라고 했다. 지방정부가 챙기지 못한 지역 기록 작업을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하고 있었다.

지역에 살다보면 안타까운 것들이 많다. 진주는 조선시대 거읍(큰 읍)의 읍치(관아가 있는 고을)로 비봉산을 진산(도읍, 집터, 무덤 따위의 뒤에 있는 산)으로 두고, 동헌과 향청, 객사 등 정치·행정·제사·군사 관련 읍치 공간이 제법 잘 배열된 도시였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진주에는 진주성과 촉석루를 제외하고는 역사 문화 장소가 대부분 남아 있지 않다. 국가에서 토지를 사들여 보전하고 있는 진주성조차도 1970년대 후반 성지 공원화 사업으로 옛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개발 탓이지요. 지역 정치인들이 문제였습니다.” 김중섭 진주문화연구소 이사장은 진주에서 근현대 역사적 모습이 파괴되고 흔적이 없어진 것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지배나 한국전쟁 탓만이 아니라 개발이 원인이라고 했다.(<문화고을 진주> 12호) 외세 침략이나 전쟁으로 부득이하게 잃었더라도 이후 가치를 따져 유적 복원을 앞세우거나 역사를 증명해줄 기록물을 챙겨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방정부와 정치인들이 한국전쟁 이후 도시계획과 개발을 앞세워 파괴하고 없앤 것이 더 많다는 얘기다.

진주는 1925년까지 경남 도청 소재지로 도청사인 선화당이 진주성 안에 있었지만, 지금은 발굴 조사를 거쳐 겨우 그 터를 확인한 정도다. 도시 연못이자 진주성 해자 구실을 하던 대사지는 일제가 진주성을 헐고 난 성곽 돌과 흙으로 메워버렸다. 대의기구였던 향청은 학교 터로 보전됐으나 1990년대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백화점이 들어섰고, 그 옆 진주객사 터에는 고층아파트가 들어섰다. 시 공관은 한국전쟁으로 공관이 불타버린 뒤 1958년 임시로 업무를 보기 위해 지은 것이었는데 진주성 외벽 정비사업으로 철거됐다. 모두 그 시절 사진 몇장과 몇몇 자료에서 띄엄띄엄 남아 있을 뿐이다.

짧게는 60년 정도 도시 개발이 진행됐지만 그사이 전통과 역사를 담은 오래된 것들이 사라졌다. ‘천년 도시 진주’라지만 남아 있는 역사적 공간이 많지 않고 딱히 지역 관련 기록물을 한데 모은 곳도 없다. 더러 주민들 사이에서 “우찌 된 게 ‘쿠더라’ ‘카더라’만 남았다”는 말도 들린다. 직접 눈으로 보거나 체감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지역에 살면서도 서울과 중앙의 역사가 ‘우리 역사’가 되다보니 지방정부는 정작 제 지역사 챙기는 데는 어둡다.

주민들은 소박하지만 스스로 ‘지역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 지방정부가 지역사 정립과 기록화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때다. 공공 기록물 보존만이 아니라 민간 기록물도 챙기고, 옛 유적과 자료만이 아니라 현재 지역 내 공간과 장소도 챙기고 기록해야겠다. 서울이나 중앙이 아니라 제 사는 곳이 ‘우리 역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은, 지역사는 흘러간 옛 노래도 아니고 추억거리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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