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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1 18:28 수정 : 2019.11.12 15:52

권영란
진주 <단디뉴스> 전 대표

대부분 50대 여성들이다. 지난달 22일부터 매일 아침 시청 앞에서 출근길 피케팅을 하고 있다. 산재보험 가입, 고용 보장,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자신들은 진주시가 고용한 노동자라고 말한다. 이들은 진주시 수도 검침원들이다.

우리 생활과 관련해 아주 가까이 있지만 수도 검침원들의 노동 환경이나 업무 형태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다. 이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비로소 밝힌 노동 현실은 놀랍기만 하다. 현재 진주시에는 수도 검침원 30여명이 일하고 있으며 전원이 여성들이다. 진주시 수도 검침 가구 수는 5만6천가구. 이들은 매달 1인당 평균 1820가구의 수도 검침과 고지서 발부를 위해 집집마다 다닌다. 문이 닫혀 있는 등 한번에 되지 않아 두번, 세번 재방문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주민이 원하는 시간이면 새벽에도 달려가고 한밤중에도 찾아간다. 이외에도 민원 처리와 서류 작성 등 모두 이들이 집에 돌아와서도 해야 할 일이다.

노동 환경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형편없다. 집집마다 방문하는 일이니 차량 이용은 안 되고 걸어 다녀야 하는데, 오르막도 오르고 풀숲도 헤쳐야 하고 잘 뛰어내려야 한다. 오래된 동네나 노후화된 주택, 외곽 읍면 지역의 경우는 검침 작업 중 수도 계량기 안에서 바퀴벌레, 죽은 쥐를 발견하기도 하고 더러 뱀과 맞닥뜨리는 일도 있다. 사납게 짖어대는 동네 개들과도 상대해야 한다. 지난 7월에는 한 검침원이 개에게 쫓겨 도망가다가 척추를 다쳐 아직 치료 중이다. 검침원들 중 개한테 물려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임금은 어떨까. 가구당 검침료는 750원. 100가구를 방문해도 7만5천원이다. 검침 건당으로 급여를 받는다. 아파트는 여러 가구가 모여 있으니 돈도 되고 좀 편하지 않으냐고? 그렇지도 않다. 아파트의 경우 몇백가구가 있는 공동주택단지라도 중앙계량기 하나여서 검침 1건에 750원짜리일 뿐이다. 이들은 한달 임금으로 120만원에서 180만원 정도 받는다.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친다. 거기에다 4대 보험은커녕 산재보험조차 가입되지 않아 일을 하다 다쳐도 모두 ‘각자 알아서’ 자비 부담이다. 업무 집행 중의 사고지만 진주시에 아무런 책임을 요구할 수가 없다. 오히려 병실에 누워서도 일을 하지 못하면 계약 해지를 당할까 전전긍긍한다. 진주시는 개별적으로 계약을 했으니 이들이 개인사업자라고 말한다.

수도 검침원들의 주장은 다르다. 진주시로부터 직접 업무 지시를 받거나 업무 평가를 받아왔으므로 ‘고용 노동자’라는 것이다. 지난 7월 고용노동부는 일정한 근로시간과, 업무 지시 주체의 명확성을 근거로 수도 검침원들의 손을 들어줬고 진주시에 정규직 전환 권고를 내렸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부 방침은 그동안 1~3단계로 나뉘어 추진돼 왔다. 고용부는 이들 수도 검침원이 3단계 위탁업자가 아니라 1단계 용역노동자로 분류돼야 하며 정규직 전환 절차와 방법에 따라 추진하라고 했다.

현재 여러 지역에서 정규직 전환이 이뤄졌고 경상남도만 하더라도 이미 창원·김해·의령 등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지난 9월 진주시는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노사전문가협의회를 열었다. 고용부의 권고도 있었던지라 30명 수도 검침원들의 기대도 컸다. 하지만 진주시는 수도 검침원을 전환 대상에서 제외했다. ‘앞으로 하겠다’는 말뿐 지금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수도 검침원들이 매일 아침 출근길 피케팅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수도 검침은 원래 기능직 공무원이 하던 일이었다. 2000년대 초반 대부분 개인위탁 방식으로 전환했고, 진주시도 2003년 8월부터 그런 경로를 따랐다. 수도 검침 업무를 ‘행정권한의 위임 및 위탁에 관한 규정’에 따라 단순 행정 업무로 봤거나 공익성보다는 능률성을 우선으로 여겼던 걸까. 결과적으로 지방정부는 책임은 덜고 저임금으로 행정 업무를 해결하는 셈이 됐다. 민간 위탁이 생존권을 쥔 노동력 착취의 또 다른 말이었던가 싶다.

“청춘을 바쳐 일했어예. 먹고살 거라고 우짜든지 참았는데 인자는 제대로 대우하고, 산재보험도 들고, 제발 안전하게 일하도록 해주이소.” 진주시 수도 검침원 30명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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