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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9 18:12 수정 : 2019.12.10 13:16

명인(命人) ㅣ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활동가

내가 얼마 전까지 살던 집은 담장 너머가 초등학교였다. 그 집으로 이사하고 며칠 동안은 아무래도 이사를 잘못 왔다 싶었다. 새벽부터 창밖이 시끄러워 단잠을 깨기 일쑤이니. 학교 운동장에서 운동하는 사람들 탓이다. 낮에도 시간마다 와글와글 떠드는 어린이들 소리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사한 지 한달쯤 지나자 아침잠을 설치는 일이 없어졌고, 집에서 일하면서도 별 지장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어느새 익숙해진 것이다. 그 뒤론 담장 너머가 초등학교라는 사실도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운동을 시작했다. 담장 너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날마다 트랙을 걷기 시작한 것. 초저녁엔 운동장에서 어린이들이 축구를 하거나 뛰어논다. 아마도 낮에 다 놀지 못한 걸 마저 노는 것이려니. 운동장을 둘러싼 트랙엔 걷거나 뛰는 마을 주민들이 있다. 미끄럼틀과 그네가 있는 모래놀이터, 철봉, 도시 아파트에서나 봤던 몇가지 운동기구, 벤치와 나무들이 그 트랙을 둘러싸고 있는데 운동기구들은 그 학교 학생들보다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시설로 보인다.

어스름 해가 지면 어느새 사라진 어린이들 대신 운동장에서 뛰노는 건 청소년들이다. 트랙을 걷거나 뛰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난다. 간혹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주민들도 보인다. 한참 걷다가 주차장 옆을 지나다 보면 어느새 차들이 바뀌어 있다. 학교에 근무하던 교직원들의 차는 하나둘씩 사라지고 꽤 넓은 주차장은 동네 주민들의 차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간혹 꽤 늦은 밤에 운동하러 나갈 때가 있는데, 밤에는 학교 전체를 비추는 중앙등이 켜져 있다. 모래놀이터의 시소나 그네에는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청소년들이 앉아 있고, 운동장 구령대엔 청소년들의 것으로 보이는 가방만 늘어서 있어서 주인들은 어디 있나 찾게 된다. 하지만 금세 나무들로 가려진 스탠드 쪽에서 까르르 수다를 떠는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철봉에도, 갖가지 운동기구에도, 트랙에도, 운동장에도 지역 주민들이 있다. 어김없이 매일 한번쯤은 순찰차가 천천히 운동장을 돈다. 그리고 순찰차에서 내린 경찰이 학교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다시 순찰차를 타고 떠난다.

운동장을 환히 비추던 중앙등은 밤 10시40분에 꺼진다. 주변 불빛이 많아 아주 어둡진 않지만 중앙등이 꺼지면 나는 와락 무서움증이 든다. 내가 트랙을 걷는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던 사람들은 어느새 다 가고 없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멀리 사람이 보인다. 철봉에 매달려 있는 남성 한명, 트랙을 뛰고 있는 또 한명의 남성. ‘휴~.’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러다가 내가 나에게 놀란다. 이 넓은 학교 운동장에 모르는 남성 둘에 나 혼자인데 그들의 존재가 무서운 게 아니라 안심이 되다니. 수인사조차 없던 사이지만 나는 왠지 그들이 아는 사람 같다. 매일 이 운동장에서 봤던 것이다. 한 사람은 언제나 철봉을 이용한 운동을 오래 했고, 한 사람은 뛰는 사람보다 걷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트랙에서 언제나 헐떡거리며 뛰고 있었다. 심지어 그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도 익숙하다. 나는 트랙을 걸으며 그 사람들이 아직 있는지 자꾸만 두리번거린다.

생각해보면 불 꺼진 운동장에 남자 두어 사람만 운동 중인데 그 남자들이 안 무섭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좁은 지역사회에서 평소 남녀노소가 조화롭고 평화롭게 어울리는 운동장, 그리고 늘 거기서 본 이웃들이라는 인상이 확연하니까 어렸을 때 들은 학교 귀신들 생각은 나도 사람이 젤 무섭다는 사실을 잊게 되더라는 것. 어떤 장소의 공공성이 안착되면 안전감도 따라서 창출된다는 걸 알게 된 신기한 경험이었다.

얼마 전 강제 개방 주차장 대상에 학교를 포함한 ‘주차장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발의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학교의 자율권과 학생의 안전을 염려하는 교육계의 반발로 개정 법률안에서 학교는 제외됐지만, 나는 궁금했다. 서로 어울려 더불어 살면서도 무엇이 우리를 안전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지. 우리는 개방이냐 안전이냐의 이분법을 넘어 안전감을 창출해내는 공공성의 조건에 대해 이제라도 열렬히 토론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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