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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30 18:16 수정 : 2019.12.31 13:51

황민호 ㅣ <옥천신문> 제작실장

코레일이 30일부터 서울에서 옥천으로 오는 막차를 아무런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폐지했다. 서울에서 물건 떼고 밤 9시50분 막차 타고 내려오던 사람도, 서울과 옥천을 오가면서 바삐 출퇴근하는 사람도 갑자기 길이 막혔다. 저녁 7시49분 이후 이제 끊어진 마지막 기차는 오지 않는다. 중요한 교통수단의 한 노선이 폐지되는데도 옥천군은 이를 몰랐다. 코레일이 자사 누리집에 11월29일자로 공지하고 옥천역사에 결정된 통지문을 붙여놓았으니 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따라야 하는 사안인 것이다.

2017년에는 박덕흠 국회의원이 직접 내려와서 없어진 새벽기차를 신설하고 또 지난해에는 국비 26억원으로 옥천역사를 새롭게 확 바꾸고 있는 사업을 확보했다고 이리저리 떠들고 다녔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하나, 노선 하나가 별안간 줄어들었는데 말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것도 아니고 새벽기차 신설 2년 만에 막차를 슬그머니 빼는 건 무엇인가? 그러면서 수십억원을 들여 옥천역을 단장하는 건 얼마나 비합리적인가?

가장 큰 이해관계자인 주민 의견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해졌으니 따르라 하는 방식이 곳곳에 은연중에 배어 있다. 일전에 이 지면에서 언급했지만 옥천역 전화번호를 한순간에 전국 일괄로 자동응답전화로 바꾼 것도 농촌에 사는 고령 노인들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인구가 많지 않으니 신경 쓸 이유가 별로 없다는 뜻이겠거니 이해한다.

속된 말로 ‘표’가 안 되니 무시해도 된다는 뜻 아닐까. 행정의 효율과 자본의 수익 관점으로 볼 때 너른 면적에 군데군데 띄엄띄엄 사는 농촌은 사실 답이 안 나오는 곳이다. 그렇게 슬그머니 없어지는 것이 어디 기차 노선뿐이랴. 파출소, 보건진료소, 농협 등은 통폐합되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학교를 통폐합하는 것도 이제 주민 눈치를 안 본다. ‘적정학교’라는 이상한 단어를 들이밀고서 교육하기에 적정한 인원 이하로 떨어지면 ‘통폐합학교’로 낙인을 찍어놓고 폐교하라고 고사를 지낸다. 예산을 제한하고 추가 시설 건축을 허가하지 않으면서 교육여건 향상을 멈춘다. 안내중학교에 실내강당이 하나 없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신도시 아파트단지에 신설 학교 하나 지으려면 농촌 학교 하나 없어져야 추진이 용이하기 때문에 ‘통폐합’하라는 것이다.

물끄러미 살펴보면 농촌 자체가 자연스레 도태되어 사라지길 바라는 것 같다. 이쯤 되면 ‘지역 소멸’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온해 보인다. 걱정하는 척하면서 헤어나올 수 없는 ‘이름표’ 하나를 붙여놓은 것 같다. 그러면서 지역 중소도시를 압축도시나 중핵도시로 만들어 지역 소멸의 물결을 막을 수 있는 댐을 만든다는 것을 해법으로 내놓고 있다.

도시는 농촌에 빚을 한참 지고 있다. 이 나라는 농촌을 착취하며 성장해왔다. 옥천만 놓고 보면 대전이란 도시는 옥천의 상당 부분을 수몰시켜놓고 수자원을 확보했으며 그런 바탕 위에서 성장했다. 상류지역 농촌은 대부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어놓고 농촌 인력들을 도시 노동자로 보냈다. 그렇게 보냈으면서도 그나마 남아 있는 것마저 착취한다. 상류지역 농촌은 물도 깨끗이 보존해야 할뿐더러 쾌적한 ‘어메니티’(amenity) 공간으로 도시 사람들이 찾아와 힐링하고 농촌체험도 하며 친환경 농산물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런 내용을 현란한 수식어만 달리하여 ‘복붙’하는 컨설팅이 즐비하다. 수식어와 사례들을 걷어내면 ‘돈 많은 도시 사람들이 돈을 쓰게 하려면 이렇게 준비해야 한다’는 식이다. 도시인을 주체로 상정하고 그들이 원하는 컨설팅을 짜면서 들이미니 농촌은 당연스레 타자화, 대상화, 사물화의 과정을 거친다. 세뇌시키듯이 역량강화 교육을 하고, 농촌 예산이라고 백날 쓰이는 것들이 다 도시인들의 컨설팅으로 이렇게 쓰인다. 당신들은 ‘물’만 바라보지만, 우리는 ‘삶’이다. 당신들은 ‘친환경 농산물’만 바라보지만, 우리는 ‘삶’이다.

통역이 필요할 정도로 갈수록 도시와 농촌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을 체감한다. 하도 답답해서 하소연해봤지만 언제까지 그러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허울 좋은 정책을 걷어내고 우리만의 대책을 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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