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얼음이 무너지듯 한국에서는 4대강이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도 변화의 조짐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짙은 녹색의 강물 사진은 익숙해졌고, 식수원 오염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스쳐지나갈 뿐이다. 이것이 4대강 사업 때문은 아니라는 일부 정치인들의 주장도 여전하다. 말 못하는 강들을 누가 대신해서 말할 것인가?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지난 6월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는 북극해에 작은 판 하나를 띄워 피아노를 설치하고 그 앞에 앉았다. 뒤로는 노르웨이의 빙하가 무대 장치처럼 펼쳐져 있었다. 예순살의 피아니스트는 자신이 작곡한 “북극을 위한 엘레지(애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맑고 슬픈 피아노 소리 사이로 북극의 바람소리가 들리더니 피아노 뒤편에서 얼음벽 일부가 스르르 무너지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영상 마지막에는 “북극을 지켜주세요”라는 자막이 지나갔다. 에이나우디는 북극해 일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의제를 다루는 오스파 위원회 개최에 맞추어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함께 이 연주를 기획했다. 8월에는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과학 프로그램 해설자로 유명한 브라이언 콕스가 오스트레일리아의 텔레비전 방송에서 한 정치인과 나란히 앉았다. 그 정치인은 인간활동에 의한 기후변화에 관해 과학계의 “절대적인 의견일치”가 있다는 콕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콕스에게 과학자라면 “의견일치”를 들먹이지 말고 증거를 대야 한다고 공격했다. 그러자 콕스는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그래프를 가져왔습니다.” 그 순간 청중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래프에는 지구 온도 변화 추이를 보여주는 데이터들이 잔뜩 찍혀 있었다. 콕스는 지구 전체가 내려앉은 종이 한 장을 손에 들고서 정치인의 현란한 말과 겨루고 있었다. 마치 “지구의 말을 들어라”라고 호소하는 듯했다. 과학자와 피아니스트에게는 비슷한 힘이 있다. 멀리 있는 것들이 내는 작은 신호를 감지하고 증폭하여 우리 앞에 가져다주는 능력이다. 우리의 눈과 귀를 북극해에 붙들어 둔 에이나우디의 피아노는 북극을 위한 엘레지이면서 또 웅변이었다. 콕스가 꺼내든 그래프는 곧 과학자들의 성명서였다. 과학자들은 거기에 관측값을 표시하는 점을 하나 찍는 것으로 서명을 대신했다. 고작 그래프 하나가 억지 부리는 정치인을 머쓱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그 점 하나마다 고단한 관측과 모델링과 계산과 검증의 무게가 얹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학자와 피아니스트는 각자의 방식으로 ‘지구 민심’을 수집해서 전달한다. 말 못하는 지구를 대신해서 이들이 들려주는 지구의 민심은 흉흉하다. 북극의 얼음이 무너지듯 한국에서는 4대강이 무너지고 있다. 올 추석에도 ‘4대강 민심’은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변화의 조짐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짙은 녹색의 강물 사진은 익숙해졌고, 식수원 오염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스쳐지나갈 뿐이다. 이것이 4대강 사업 때문은 아니라는 일부 정치인들의 주장도 여전하다. 북극보다 더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금강과 낙동강을 눈앞으로 당겨 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말 못하는 강들을 누가 대신해서 말할 것인가? 유명한 음악가가 초록빛 금강에 투명 카약을 타고 들어가 엘레지를 연주할 수도 있겠다. 인기 아이돌 그룹이 초록빛 낙동강에 두 발을 담근 채 노래하고 춤추면 효과가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더 절실히 필요한 건 과학의 힘이다. ‘녹조라떼’와 함께 한 장의 그래프를 들이밀며 4대강 민심을 전할 수 있는 과학자들이다. 다행히도 소수의 과학자들이 강들과 강의 생물들을 고단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4대강의 데이터로 서명한 그래프 성명서를 준비하는 셈이다. <오마이뉴스>, 환경운동연합, 대한하천학회, 불교환경연대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4대강 청문회’가 성사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청문회가 열린다면 이 과학자들이 제일 중요한 진술을 맡아야 한다. 청문회와 별도로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중앙과학관에서 ‘4대강 전시회’를 열어 과학자들이 예술가들과 함께 4대강을 우리 눈앞에 펼쳐보여주어도 좋겠다. 엘레지와 데이터의 결합, 우리가 그토록 찾던 과학과 예술 융합의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과학에는 국경이 있다. 4대강 과학은 한국에 가장 필요하고, 여기 있는 과학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과학이다. 상실의 현장을 감싸는 엘레지 연주처럼 지금, 여기를 놓치면 할 수 없는 과학이다. 아마도 노벨상과는 관계가 없고 4차 산업혁명에도 기여하지 못하겠지만, 이곳의 공기와 물과 땅(속)을 보고 듣고 지키는 과학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미세먼지, 녹조, 지진을 겪으며 모두 온몸으로 느끼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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