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지금 여기 과학과 사회의 현실과 분리될 수 없다. 과학적 성과를 추구하고 기념하는 일이 윤리적, 사회적 가치 평가와 분리될 수도 없다. 과학은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발전해온 제도이며, 또 과학자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존재, 즉 시민이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과학 저널 <네이처>의 9월7일치 사설을 두고 크게 논란이 일었다. ‘역사적 인물의 동상을 철거하는 것은 역사를 덮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제목의 사설이었다. 사설이 인용한 중요한 사례는 미국 뉴욕 센트럴 파크에 있는 19세기의 부인과 의사 제임스 매리언 심스의 동상이었다. 심스는 “미국 부인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의사지만, 역사학자들은 새로운 수술방법을 실험하기 위해 여성 노예들을 마취 없이 시술했던 그의 행위를 지적해왔다. 실험 대상이 노예였으니 당사자의 동의를 받는 일도 없었다. <네이처> 사설은 논란이 되는 과학자들의 동상을 철거하는 대신 그런 논란이 있다는 안내판을 덧붙이거나 피해자를 위한 기념물을 따로 세워서 역사를 기억하자고 제안했다. 사설이 출판되자마자 많은 과학자와 역사학자가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심스의 동상을 그냥 두는 것은 그의 비윤리적인 연구와 의료 행위로 피해를 본 흑인 여성 노예들의 존재를 지우고, 그에게 합당하지 않은 명예를 부여한다는 지적이었다. 조지아텍의 킴 코브는 <네이처>에 보낸 독자 편지에서 그 사설이 “과학에, 또 권위 있는 기관들의 지원이 필요한 과학 주변부의 소수자 과학자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고 성토했다. 캘거리 대학의 헤일리 베키아렐리는 <네이처>가 사설을 철회하고, 대신 왜 그 사설이 과학계와 사회 전반의 백인 우월주의를 심화시키는지 설명하는 글을 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 저널이 역사, 인종, 젠더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불과 한달 전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벌인 폭력시위가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의 동상 철거 문제에서 촉발되었다는 사실도 <네이처> 사설에 대한 격렬한 반응에 일조했다. 온라인 과학언론 <언다크>가 인용보도한 트위터에서 한 천체물리학자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사람들을 죽이고 협박하고 있는 때에 왜 꼭 이 사설을 써야만 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신경과학 전공 박사과정 학생은 “내가 사람들에게 과학에 구조적인 인종주의가 있다고 말하면 이제는 아마 믿을 것이다”라고 했다. <네이처> 사설은 과학의 과거와 현재, 안과 밖을 연결하는 뿌리 깊은 문제를 건드렸던 것이다. <네이처>는 이 논란을 쉽게 덮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사설이 나간 직후인 9월14일치와 21일치 잡지에서 <네이처>는 독자들의 비판을 소개했다. 필립 캠벨 편집장은 자신의 이름으로 해당 사설의 오류를 사과했다. 편집장은 그 사설이 과학에서 여성과 흑인 등 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생각을 고착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는 잘못된 관념이다”라고 덧붙였다. 또 <네이처>는 사설의 온라인판 제목을 ‘과학은 과거의 실수와 범죄를 인정해야 한다’로 바꾸고, 동상 철거에 대한 문장 하나를 수정했다. <네이처>가 모든 비판에 응답한 것도 아니고 모든 상처가 아물 수도 없겠지만, 이 사설에 대한 논란 자체가 <네이처>와 과학의 역사에 남아 오래 기억될 것이다. 과학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지금 여기 과학과 사회의 현실과 분리될 수 없다. 과학적 성과를 추구하고 기념하는 일이 윤리적, 사회적 가치 평가와 분리될 수도 없다. 과학은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발전해온 제도이며, 또 과학자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존재, 즉 시민이기 때문이다. 사설을 내보낸 편집진과 그것을 읽고 비판한 과학자들 모두 인종과 젠더 등 여러 사회적 조건을 안고 씨름하며 과학에 종사하는 시민들이다. 문제가 된 <네이처> 사설이 나온 그 무렵,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가 정부의 과학기술 인식에 대한 논평을 내면서 강조한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과학기술자는 역사관도 필요 없는 도구적 존재가 아닙니다. 과학기술자이기 전에 우리는 모두 민주 사회의 시민입니다.” 과학기술자가 “경제발전의 도구”에 머물지 않고 과학기술자인 시민으로 사는 것은 그들의 일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과거의 실수와 오류에 대한 비판에 응답해야 하고, 현재 활동의 의미를 윤리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에서 배우고 현재를 고찰하여 그다음을 설계하는 것은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과학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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