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로 사진 찍어드리고 있으니까 사진 찍고 가세요.”
9차 촛불집회가 열린 12월24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세종대왕 동상 뒤편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한 손에는 촛불을 다른 한 손에는 ‘박근혜 탄핵’ 따위의 손팻말을 든 사람들이 일렁이는 촛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옆으로 가족과 연인, 친구들, 혼자 나온 사람들까지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료로 사진 찍어 드립니다. 한겨레포커스 당신의 사진가. 한겨레TV
“여기 보세요. 여기. 하나, 둘, 셋. 자 찍습니다.”
찰칵 셔터 소리가 터지고, 사진사는 시민들에게 카메라 액정에 담긴 사진을 내밀었다. “잘 나왔네.”, “고맙습니다.” 찍은 사람도 찍힌 사람도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은 사진전문 기업 ‘당신의 사진가’라고 소개했다. 당신의 사진가들이 붙인 알림판에는 “박근혜 탄핵을 바라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 모두에게 무료로 사진을 찍어드린다”고 적혀 있었다.
당신의 사진가 전상진(33)씨는 “생업을 위해 웨딩 포토 등 상업 사진을 찍고 있는데, 촛불집회에 의미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시작한 일”이라고 말했다.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셀카’나 ‘인증샷’을 활발하게 찍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진 찍는 거 아이처럼 되게 좋아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사진가로서 재능을 살려 촛불 기념 가족사진을 찍어주자고 친구들 끼리 뜻을 모았다. 전씨는 “역사적 현장을 다른 방식으로 기록하고 싶은 생각”도 한몫을 했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셀카를 찍는 사람들. 한겨레포커스 한겨레TV
촛불 시민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때론 투쟁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카메라 앞에 섰다. 양현선(23)씨는 “촛불집회에 항상 혼자 나와서 사진 남겨보고 싶고 얼굴 사진이 없어서 찍게 됐다”며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서 굉장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사드 문제로 시끄러운 경북 김천에서 올라왔다는 박성숙(55)씨도 “우리 이아들한테 엄마 아빠가 너희들을 위해서 이곳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은영(45)씨는 “가족끼리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나왔는데,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촛불 시민 사진 찍어주는 당신의 사진가. 한겨레포커스. 한겨레TV
전씨는 “모르는 사람이 찍는데 (찍히는 사람들이) 거부감이 전혀 없다”며 “찍는 사람이든, 찍히는 사람이든 우리가 왜 이 광장에 나왔는지를 다 알고, 서로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신의 사진사 오준석(39)씨도 “사람들이 흔적을 남긴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걸 저희가 도와줄 수 있어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당신의 사진가들은 촬영한 사진을 페이스북 페이지(facebook.com/yourphotographer.kr)에 올려 모두에게 공유하고 있다. 페이지에는 역사의 광장에 선 촛불 시민 1500여 명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먼 훗날 ‘2016년 탄핵의 추억’으로 남을 당신의 사진들이 말이다.
연출 이규호 정주용 피디,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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