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TV] 세상의 한 조각 ‘원:피스’
쌍용차 국가폭력 2부 피해자와 가족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
<한겨레TV> 세상의 한 조각 ‘원:피스’팀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김주중씨의 죽음을 계기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삶을 추적했습니다. 국가폭력의 실태를 다룬 ‘1부: 쌍용차 ‘국가폭력’ 9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에 이어 2부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육체적 고통과 치유 과정을 담았습니다.
공권력의 먹잇감이었던 사람들, 스스로 목숨을 내놓은 피해자들
“노동자들이 경찰 컨테이너에 실려 연행되는 과정에서 당한 폭력을 표현하자면 분풀이죠. 공권력이 그래서는 안되잖아요.”
김정욱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사무국장은 9년 전 파업을 떠올리는 것이 여전히 끔찍하다고 했습니다. 경찰 특공대에 폭행당했던 동료 노동자의 이야기를 전하며 참았던 울음이 터졌습니다. “정말 처참했겠구나. 정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존심까지 뭉게버릴 정도인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분들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공권력에게 저희는 나쁘게 표현하면 먹잇감이었던 거죠.”
지난달 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김주중씨.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로 목숨을 잃은 서른번째 희생자입니다. 그는 2009년 8월5일 경찰 특공대에 폭행당한 노동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쌍용차 조립공장 옥상 위에서 벌어진 폭력 진압은 국가 폭력의 실태를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 됐습니다. 김씨는 숨지기 한 달여 전 쌍용차 폭력 진압의 진상 규명을 위해 꾸려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에 출석해 당시 상황을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그날의 끔찍했던 기억에서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저도 경찰만 보면 화가 나고 몸이 긴장하고 이런 증상이 나타나거든요. 김주중 조합원은 더했을 거예요. 경찰 특공대에 맞아 실신했던 사람이 맞고 있다가 정신이 드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인 상황이었으니까.”
김정욱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사무국장이 9년 전 파업 당시 경찰 진압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원:피스’ 화면 갈무리. 위준영 <한겨레TV> 피디
쌍용차 해고 노동자 김주중씨가 6월 19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실에서 2009년 8월 경찰의 진압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원:피스’ 화면 갈무리. 위준영 <한겨레TV> 피디
9년의 세월 동안 끔찍했던 폭력, 지워지지 않은 상처를 감당해야 했던 것은 오로지 피해자의 몫이었습니다. 김 사무국장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도 그 부분입니다. “그것을 선뜻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치료 받지도 못하고. 실은 (최근 증언 전까진) 잘 몰랐죠. 서로 그 이야기를 안 하니까. 이야기하기가 두려웠던 거죠.”
파업 이후 김씨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활달하고 의협심이 강해 사수대를 자처했던 김씨였지만, 수 년 뒤 다시 만났을 때는 풀이 죽어 있었다고 김 사무국장은 전합니다. “살이 홀쭉하게 빠져 있었고, 목소리에 힘도 없었어요. (김씨가) 2009년에 구속됐다 출소하고 나오니까 엄청난 범법자로 낙인찍혀 있었고, 손배·가압류가 걸려 있었어요. 주변 분들 말을 들어보면 자살 시도도 하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범법자·빨갱이라는 낙인, 손배·가압류의 압박, 점점 희미해지는 복직에 대한 희망,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 그렇게 공권력에 희생당한 피해자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렸습니다.
고통의 전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가족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심리 치료 센터인 ‘와락’의 권지영 대표는 다른 해고자들과 그 가족 역시 김주중씨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해고자들이 아주 강도 높은 우울감을 느끼고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되고, ‘도망갈 수 없구나. 이 상황이 회복될 수 없구나’, 이런 것에서 가장 많은 절망을 느끼시죠.”
파업 참여 노동자의 아이들 이야기를 전하는 권지영 심리치유센터 ‘와락’ 대표. ‘원:피스’ 화면 갈무리. 위준영 <한겨레TV> 피디
‘정신적 외상’을 뜻하는 트라우마는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었다고 합니다. “(평택 미군기지에서) 훈련하는 헬기들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굉장히 시끄럽거든요. (해고자들이) 그 소리 듣고 깜짝깜짝 놀라고 순간적으로 공포스럽다고 해요.” 9년 전 파업 때 경찰은 낮에는 물론 한밤에도 헬기 저공비행으로 굉음을 일으켰습니다. 공포와 수면을 방해하는 고도의 심리전이었습니다. 경기경찰청은 ‘쌍용자동차 사태 백서’에서 이런 헬기 작전이 ‘노조원의 사기를 꺾는데 효과적이었다’고 자평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이 자평한 고도의 심리전이 해고 노동자들의 마음을 병들게 한 원인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트라우마는 아이들에게도 전이된 것으로 보입니다. 권 대표는 파업 참여 노동자의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깊은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어떤 애들은 학교에서 미술시간에 그림 그리는데 순전히 경찰, 전투경찰 나오는 그림만 그린다고 해요.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경찰 놀이만 한다는 거예요. 또래 친구들은 레고나 자동차, 블록 갖고 노는데. 또 하나 공통점은 부모 걱정을 너무 많이 하는 거예요. 4살, 5살짜리 아이들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헬기 소리만 들어도 놀라고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원:피스’ 화면 갈무리. 위준영 <한겨레TV> 피디
국가폭력 치유의 과제들, 진상규명과 국가손해배상은?
해고자와 가족의 단란한 삶을 송두리째 빼앗은 국가의 폭력. 진상규명과 치유 과정은 아직 갈길이 멀어 보입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경찰의 손해배상 소송철회와 국가의 진심어린 사과를 제시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는 폭력적으로 (노동자들을) 진압 해놓고 또 경제적으로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목을 졸라가는 방법을 취했잖아요. 회사는 나중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취하했는데, 경찰은 장비와 헬기가 파손됐다고 손해배상을 걸고 22명은 부동산 압류까지 해놓은 상태예요. 이건 괴롭히는 소송이거든요.” 경찰이 노조원 등에게 16억7000여만 원을 청구한 이 소송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입니다. 해고 노동자들의 실질적 고통인 손해배상을 국가(경찰)가 철회하는 것에서 매듭을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만들어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는 쌍용차 사태 재조사 결과를 7월 안에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쌍용차 사태의 진상을 밝히는데 단초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박 상임이사는 한발 더 나아가 국가폭력에 희생된 쌍용차 해고자들과 그 가족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경찰의 강경진압에 대한 진상규명 과정이 종료가 되면 그 결과를 보고 국가가 사과를 해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과정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원:피스’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원:피스’ 화면 갈무리. 위준영 <한겨레TV> 피디
‘원:피스’ 11회 2부 ‘그날의 상처, 누가 치유해야하나’. ‘원:피스’ 화면 갈무리. 위준영 <한겨레TV>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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