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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26 13:38 수정 : 2018.07.26 20:33

[한겨레TV] 세상의 한 조각 ‘원:피스’
5년마다 ‘법대로’ 쫓겨나는 자영업자의 눈물 <1부>
“남은 생 여기서 정리하게 해주세요” 간곡한 부탁에도
‘가게를 비우라’는 건물주의 명도소송장이 날아들었다

홍대 두리반, 서촌 궁중족발, 그리고 556만 자영업자들. 영세 자영업자를 보호하려고 만든 ‘상가임대차보호법’은 5년 동안 임차인의 영업 기간을 보장하는 것이 뼈대입니다. 그러나 이법에 따라 자영업자들은 5년이 지나면 합법적으로 상가를 비워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두리반과 궁중족발 사태는 재개발과 임대료 인상 등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한겨레TV> 세상의 한조각 ‘원:피스’팀은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라 5년마다 ‘법대로’ 쫓겨날 처지에 내몰리는 자영업자들의 사연을 밀착 취재했습니다. 사연의 주인공은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매운탕집을 운영하는 40년차 자영업자 이연식(72)씨 부부입니다. 먼저 이씨 부부 사연을 담은 영상을 소개합니다.

# 43년 전통 자랑하는 매운탕집, 어김없이 돌아온 말 “5년 됐으니 비워달라”

“1972년 종로6가에서 시작하여 종로1가 피맛골을 거쳐 현재 필운동에 왔습니다.”

서울 종로구 필운동 골목길. 동강민물매운탕집은 43년 전통을 자랑합니다. 식당 출입문에 거쳐 온 이력을 적어놓았습니다. 식당은 여느 식당과 다르지 않습니다. 손님이 들면 ‘어서 오세요’라고 주인이 인사를 하고, 물과 밑반찬에 이어 팔팔 끓은 매운탕이 차례로 식탁에 오릅니다. 사장인 이씨가 주방을 맡고, 아내 임기덕씨가 홀에서 손님을 맞습니다. 때론 둘의 역할이 바뀔 때도 있습니다.

노 부부는 40년 넘게 서울 이곳저곳을 떠돌며 음식 장사로 먹고 살았습니다. 출입문에 걸린 식당 소개 글귀는 필운동이 마지막일 것이라 생각한 노 부부의 다짐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김없이 5년이 돌아왔습니다.

40년차 식당 자영업자 동강민물매운탕집 사장 이연식씨.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재개발을 피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왔던 필운동에서도 5년이 지나자 건물주는 가게를 바우라고 했다.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올해 3월6일이 5년째거든요. 가게를 비우라는 거지. 5년 됐으니까.” 이씨가 건물로 들어올 당시 건물주는 나갈 때까지 해도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2년 전 건물이 팔리면서 새 건물주는 재계약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이씨는 주인이 별 말이 없어서 자동으로 재계약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이씨의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새 건물주가 ‘법대로’ 건물을 비워달라는 말에 40년 경력의 매운탕집 사장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 5년 동안 집에 가본 적이 없어요

이씨에게 식당은 곧 집입니다. 손님을 받는 방 한켠에 홑이불을 덮고 잡니다. 아침 일찍 손님을 받으려면 집에 가는 시간도 아깝습니다. “퇴근을 해본 적이 없어요. 여기 와서 5년 동안 집에 가본 적이 없어요. 이 동네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요. 아침에 불만 켜면 손님을 받습니다. 아침에 두 세명 올 때가 있거든요.”

퇴근이 없다는 동강민물매운탕 사장 이연식씨. 식당 방 한켠에 홑이불을 덥고 잔다.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새벽 5시에 영업을 시작해 얼추 저녁 11시에 문을 닫습니다. 술 손님들의 자리가 길어지면 날을 넘기는 일도 흔합니다. 부지런함이 성공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이 자영업의 현실입니다. 이씨 부부는 손님을 끌기 위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7천원 밥값을 유지하면서 맨밥 대신 철솥밥을 내놓습니다. 이씨는 맥락없이 ‘박리다매’라고 설명했지만, 손님을 잃지 않으려는 이씨의 몸부림입니다. 기대는 노력을 배반합니다. 그 또한 자영업자들에게 흔한 일입니다. 40~50개 팔았던 매운탕은 요새 30개도 나가지 않습니다.

장사는 안 돼도 임대료가 밀린 적은 없었습니다. “힘들고 할 때는 대출을 신한은행에서 1500만원 받았죠. 그래서 부족할 때 얼마씩 임대료로 넣어주고…. 지금도 은행에 돈을 갚고 있어요.” 아내 임씨의 설명입니다. 빚 내서 장사하지 않겠다는 이씨의 영업 철칙은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이씨가 내민 통장 사본에는 매달 빠져나간 3,096,500원 내역이 빼곡합니다. 한 달 임대료입니다. 빚까지 내서 임대료를 막았지만, 돌아온 것은 가게를 비우라는 독촉입니다.

동강민물매운탕 사장 이연식씨의 통장 사본. 매월 임대료로 3,096,500원이 나가고 있다.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 40년 동안 10번 이사, 재개발과 치솟는 임대료

“제가 가는 곳마다 재개발 때문에…. 처음에 들어갈 때는 재개발이 없었는데, 2~3년 지나면 재개발이 되더라고요.”

40년 식당 인생, 가는 곳마다 재개발과 치솟는 임대료가 문제였습니다. 이씨가 운이 없는지, 자영업자들의 삶이 그런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다시 강북으로 옮겨 다니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80년대엔 한일철강 본사 건물(현 중구 퇴계로)을 짓는다고 해서 철거를 당했습니다. 90년대엔 강남구청 근처 남경빌딩으로 옮겨 순댓국집을 했습니다. 부동산 열풍으로 임대료가 치솟았습니다. 다시 종로 청진동으로 식당을 옮긴 것이 2008년의 일입니다.

“청진동 재개발 때는 너무 비참하더라고요. 거기서 투쟁을 했죠. 한 5년 했나요? 용역 회사가 하루 저녁이 지나면 한 500~600명씩 와요. 우리 쫓아내려고. 장사 자체를 못하고 그러니깐 비참한 거죠. 그때 있는 것까지 홀딱 다 털어 먹은 거예요. 그때 5년 싸우면서….”

동강민물매운탕집 사장 이연식씨가 청진동 재개발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그렇게 40년 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메뚜기처럼 10번 넘게 가게를 옮겼습니다. 재개발에 염증을 느껴 재개발이 안 될 만한 곳을 고르고 골라 이사를 했습니다. 43년 전통의 매운탕집이 종로구 필운동을 택한 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기는 절대로 재개발 없을 줄 알고 들어왔죠. 일단 건물이 재개발 구역이 아니잖아요. 4~5층 고시원은 이번에 (건물주가) 계약해줬어요. 3층은 20년 전에 들어온 사람이 다시 재계약하고 있고….”

# ‘선처 호소’ 편지에 날아온 명도 소송장

지금 이씨 부부의 앞을 막는 것은 재개발도, 높은 임대료도 아닙니다. 막무가내로 나가라는 건물주의 독촉입니다. 이씨의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월세 얘기 한 번도 해본 적도 없다니까. 월세 올린다는 말도 없고 무조건 비우라는 거지.”

이씨는 건물주한테 전화도 하고 편지도 보냈습니다. 이씨가 사장한테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재개발에 지쳐 몸서리치는 우리 부부입니다 . 청진동 재개발과 용산 사건의 현장에 치를 떠는 나에게 다시는 그 짓은 생각조차 하기 싫어요 . 사장님, 간곡히 애원합니다 . 72살 다 쉬는 나인데 , 오죽하면 이렇게 장사를 하겠습니까 ? 남은 생 여기서 정리하게 해주세요 . 사장님 간곡히 부탁드리옵니다 .”

동강민물매운탕 사장 이연식씨가 건물주에게 보낸 손 편지.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건물주가 보낸 명도소송장.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동강민물매운탕 사장 이연식씨가 가게를 비워달라는 건물주에게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이씨의 편지에 건물주는 처음에 ‘사정을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게를 비워달라’는 안내문과 통고서, 명도 소송장이 차례로 날아왔습니다. “사정을 알겠다고 한 사람이 이렇게 법적으로 한다고 하니까….” 이씨가 끝내 말을 잊지 못합니다.

# ‘무조건 비우라’는 건물주, 선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법에서 정한 5년의 보호기간이 지났습니다. 이씨 부부는 가게를 비워야 할까요? 답답한 마음에 이씨가 변호사를 찾았습니다. 박현정 법무법인 도담 상가임차인소송센터장입니다. “지금 계약 기간이 5년이 딱 경과한 시점이에요. 임차인이 건물주한테 ‘더 있게 해주세요’라고 요청할 권리가 없습니다. 근데 재건축이나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고, 다른 층에 신규 임차인을 들이는 상황이기 때문에 합의의 여지는 조금 있지는 않을까 싶기는 한데, 이것도 사실은 건물주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동강민물매운탕 사장 이연식씨가 박현정 법무법인 도담 상가임차인소송센터장에게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원:피스’ 화면 갈무리. 조성욱 피디

변호사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건물주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 이씨만의 일일까요? 지금 대한민국의 자영업자는 556만 명에 이릅니다. 이씨는 받지 않는 건물주의 전화에 음성 메시지를 남깁니다.

“최 사장님, 여기 동강매운탕 집인데요. 아니 재판까지 뭐 가야 하겠습니까? 이 노인네들 쫓아내서 뭐 하겠습니까? 제가 가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갈 데도 없는데 여기서 있다가 마무리하게 해주십쇼. 사장님 부탁합니다.”

40년차 식당 자영업자 이씨 부부의 자산은 임대아파트와 동강매물매운탕집 임대 보증금 3500만원이 전부입니다. 임차인 영업보호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계류 중입니다.

기획·연출 조성욱 피디 chopd@hani.co.kr
내레이션 김포그니 기자

※ 5년마다 법대로 쫓겨나는 ‘자영업자들의 눈물’ 2부에서는 홍대 두리반과 서촌 궁중족발 사건의 당사자들이 출연해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문제점과 당시 철거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 시사다큐 원:피스 더보기 https://goo.gl/jBPK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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